영화 <아이리시맨> 포스터

영화 <아이리시맨> 포스터 ⓒ 넷플릭스

 
넷플릭스가 거장과의 협업을 진행했다. 최근 아카데미 수상을 염두에 둔 듯 퀄리티 높은 영화들을 쏟아내고 있다. 마틴 스콜세지의 <아이리시맨>은 그 정점을 찍은 작품이다.

마틴 스콜세지가 누구인가.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할리우드 상업영화계의 입김에 당당히 맞서며 당대를 상징할 만한 작품들을 내놓은 거장이다. 80세를 바라보는 나이이지만 2020년대에도 대표작을 내놓을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는 <아이리시맨>으로 영화가 평단뿐 아니라 대중들을 끌어당길 수 있다는 걸 확인시켰다. 

<아이리시맨>은 공개가 되기 전부터 수많은 화제를 뿌렸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중 역대 가장 많은 제작비가 투여된 걸로도 유명하지만, 마틴 스콜세지의 1970~1990년대 페르소나 로버트 드 니로와 오랜 만에 상봉했다는 점이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거기에 전설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의 첫 합작이라는 점까지.

평범한 노동자가 마피아 암살자가 되어가는 과정

영화는 세 가지 시간대로 나뉘어 진행된다. 가장 먼저 2000년대 초 양로원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80대 프랭크 시런(로버트 드 니로 분)이 있다. 또 1970년대 러셀 버팔리노(조 페시 분)의 조카 결혼식에 초대 받아 차를 타고 가는 시런 부부와 러셀 부부가 나온다. 그리고 1950년대 시런이 트럭 노동자로 일하며 주유소에서 우연히 러셀을 만나 도움을 받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시런은 소고기 운송 일을 하던 중 절도로 걸려 고소를 당한다. 그때 러셀의 조카인 변호사 윌리엄이 변호해줘 혐의 없이 풀려날 수 있었다. 이후 러셀의 버팔리노 패밀리에 합류해 본격적으로 마피아 범죄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그리고 러셀의 살인 명령이라면 그게 누구든 상관하지 않고 충직하게 암살하는 '페인트공(피로 벽을 물들인다는 은유적 표현)'으로 활동한다. 

시런이 페인트공으로서 일을 잘 처리하자 그를 버팔리노 패밀리가 은밀히 뒤를 봐주고 있던 전미운수노조 위원장 지미 호파(알 파치노 분)에게 붙여준다. 호파는 당시 대통령 버금 가는 인기와 권력을 거머쥐고 있었는데, 시런은 호파를 충실히 따르는 한편 모든 걸 러셀에게 말하고는 결국 러셀의 말을 따른다. 한편, 살인도 마다하지 않은 건 모두 가족을 위해서였다고 자평하는 시런과 알고도 묵인하는 그의 대다수 가족과는 달리 딸 페기는 그를 두려워하다가 멀리하게 된다. 

개인과 마피아와 미국 현대사

영화 <아이리시맨>은 세 방면의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 프랭크 시런으로 대표되는 개인 이야기, 러셀의 버팔리노 패밀리로 대표되는 마피아 이야기, 지미 호파로 대표되는 미국 현대사 이야기. 우선, 시런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의 삶을 컨트롤하지 못한 수동적 인간의 자화상이 보인다. 그는 가족들을 위해 많은 돈을 벌고자 트럭 운전사에서 암살자가 되었다고 했지만 실상은 그냥저냥 살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일 뿐이었다. 

시런의 뒤를 봐주는 한편 철저히 이용해먹는 버팔리노 패밀리를 들여다 보면, 마피아의 환상이 깨지는 걸 느낀다. 그들은 먼 곳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와 의리로 똘똘 뭉쳐 협업을 하며 서로가 서로를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실상은 파렴치한 협잡에 불과한 일을 하고 있다. 철저히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여 한 발 먼저 협박하고 달려들어 죽여버리는 것뿐이다. 

전국 운수업자들을 대변한다는 지미 호파는 실상 누구보다 권력욕이 강한, 아니 권력욕에 사로잡힌 욕망의 화신일 뿐이다. 노동자를 위한 삶이 목적이어야 하지만 본인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어, 마피아와 비열한 협잡을 이어가는 것이다. 띄엄띄엄 언급되는 미국 현대사의 비열한 뒷이야기가 그와 연관되어 은밀히 돌아가는 걸 보고 있노라면, 화려한 겉모습 이면의 추잡한 미국의 진실이 눈앞으로 다가온다. 

그런가 하면, 시런과 러셀과 호파의 공통분모들이 보인다. 마틴 스콜세지가 그들을 통해 던지는 질문일지 모른다. 세 명 모두 본인 나름의 신념이랄까 삶의 방향이랄까 하고자 하는 게 있다. 가족을 위해, 의리를 위해, 욕망을 위해. 그렇게 살아가는 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이어서, 그런 식의 삶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 영화 중반 지미 호파가 죽고, 후반 러셀은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노인이 되며, 마지막 시런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양로원에서 쓸쓸히 크리스마스를 맞는다. 

비전형적인 대서사시가 말하고자 하는 것

영화는 선언한다. 마피아 시대는 끝났고 그 시대의 폭력은 허무하다고. 마피아 장르판 <풀 메탈 자켓>이라 할 만한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전쟁 장르 영화인 <풀 메탈 자켓>은 베트남 전쟁을 그리면서 전쟁영화다운 액션 하나 제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참혹하고 애처롭고 허무한 전쟁의 양상을 보여준다. <풀 메탈 자켓>이 일어나선 안 되는 전쟁을 그린다면, <아이리시맨>은 생겨나선 안 되는 마피아를 그린 게 아닐까. 나아가 그로 인해 파생된 파멸적인 미국 현대사와 한 인간까지 말이다. 

또한 이 영화엔 드라마와 액션과 포인트가 거의 없다. 영화라면, 특히 장르 영화라면 으레 기대하는 것들 말이다. 극적 스토리와 장면이 없고, 아드레날린을 분출시키는 액션이 없으며, 영화 전체가 전환되는 포인트가 없다. 거기에 3시간 30분이 넘는 러닝 타임은 지루할만 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매우 재미있고 인상 깊게 봤다. 영화적 인간이 아닌 현재적 인간과 삶과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었을까. 명감독과 명배우들이 혼신의 힘을 다한 결과가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일까. 

영화는 지나치게 소소하고 불필요해 보이는 일상의 순간을 집요하게 보여준다. 감독이 말하는 거대하고 비장한 마피아적 욕망의 진실이 실상 하찮다고 말하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 그런 순간들이야말로 삶을 구성하는 기본요소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어떤 식으로든 <아이리시맨>은 전형적이지 않은 대서사시이다. 대서사시라면 거대한 무언가에 휘둘리는 인간과 삶이 그려지지 않는가. 이 영화는 달랐다. 

이제 더 이상의 대서사시적 마피아 영화는 보지 못할 것 같다. 한 시대가 아닌 한 세기를 풍미했다고 말할 수 있는 이들 모여 '왕들의 귀환'으로 지난 반 세기의 마피아 장르를 집대성했기 때문이다. 하여, 앞으로의 마피아 영화가 아닌 거꾸로 올라가는 반연대기순의 마피아 영화들을 봐야 할 것 같다. 그것이 이 위대한 영화와 연기의 왕들을 위한 배려이자 헌사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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