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가 유튜브에서 인기라는 동영상을 하나 보내줬다. 나에게는 서태지만이 세상의 중심이던 1990년대 초반에 활동하던 어느 남자가수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영상이었다. 사그라져가는 기억을 붙잡고 끄집어내 보니 기억의 한 끝자락에서 언젠가 본 듯한 그 남자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지드래곤과 닮은 얼굴이었다. '가나다라마바사'라는 다소 요상한 제목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그는 지드래곤 못지않은 세련된 옷차림을 한 채 자유분방한 몸놀림으로 열정적인 무대를 보여주고 있었다.
 
재능과 열정을 갖추고도 뜨지 못하고 어느 순간 사라지는 가수들이 한둘이던가. 이 사람도 그런 부류들 중 하나인가 보다, 그저 짧은 인상만을 남긴 채 바쁘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나의 기억에서 그는 그렇게 또 한 번 사라져갔다. 
 
 JTBC <슈가맨3>에 출연한 양준일의 모습

JTBC <슈가맨3>에 출연한 양준일의 모습 ⓒ JTBC


그런 그를 다시 마주하게 됐다. 그것도 1990년대 20대 청년의 모습이 아닌 2019년 50대를 살아가는 현재의 그를 말이다. <슈가맨3>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 유니크한 몸동작으로 노래를 부르던 그의 이름은 양준일이었다. 결혼을 하고 남편이자 아빠, 50대의 가장으로서 하루하루 평범하게 살아가던 그가 다시 돌아와 무대에 서 노래를 불렀다. 평생에 다시 무대에 설 줄은 생각도 못했다던 그는 "묻어뒀던 꿈을 다시 꿀 수 있게 해주어 감사하다"며 감격해했다. 생전 처음으로 눈과 마음을 기울여 그의 무대를 바라본 나도 3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마음의 문을 활짝 열게 되었다.
 
외면 받고 혹평 받았던, 평탄하지 않았던 삶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중들은 그를 시대를 앞서간 비운의 천재라 부른다. 20세기를 살아간 21세기형 천재. 시대를 앞서간 천재들의 삶이 다 그러했듯이 그 또한 대중에게는 외면 받고, 평단에서는 혹평을 받고, 평탄하지 않은 삶을 살아야만 했다. '뉴잭스윙'이라는 생소한 음악에, 파격적인 무대, 그다지 뛰어나지도 않은 것 같은 가창력에 안무인지 몸짓인지 경계가 불분명한 춤사위는 1990년대 당시에는 인정받기 어려웠다. 생소한 것은 이상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여겨지던 시절에 그는 맑은 개천을 흐리는 미꾸라지처럼 취급되었다.
 
 JTBC <슈가맨3>에 출연한 양준일의 모습

JTBC <슈가맨3>에 출연한 양준일의 모습 ⓒ JTBC

 
'너 같은 사람이 한국에 있는 게 싫다'며 출입국사무소에서 체류를 거부당했을 때의 기분은 어땠을까, '양아치'와 '장아찌'도 헷갈리는 재미교포가 '아무도 나에게 곡을 주지 않아 한글로 직접 작사를 해야 할 때'의 마음은 어땠을까, 노래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관객이 무대 위로 던진 신발과 돌을 피해 노래를 불러야 했던 때의 마음은 어땠을까, 노예 계약서에 발목이 잡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영어를 가르치며 생계를 꾸려가야 했을 때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담담히 풀어내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화도 났다, 착잡하기도 했다 마음이 요동을 친다.
 
그가 음악활동을 접어야 했던 가장 큰 이유가 출입국사무소에서 일하는 어느 찌질한 꼰대의 취향에 그의 음악과 행보가 거슬렸기 때문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20대의 어린 예술가가 그런 불합리한 일을 당할 때 어디에도 한마디 할 수 없던 그 시절의 냉정함과 내 입맛에 맞지 않으면 돌을 던지고 비난을 퍼부어대던 대중의 편협함에 화가 났다. 그러다 문득 나도 냉소와 비아냥으로 그를 대하지는 않았었나 의문이 들었다. 낯설고 다른 게 이상하고 틀린 것만은 아닐 텐데 그를 실패와 좌절의 나락으로 빠뜨린 데에는 그때 그 시절, 그 시절을 살고 있던 우리, 우리에 1명으로 살던 나도 일조한 것은 아니었을까? 천재의 비운은 결국 우리가 만든 것은 아니었나?

조금은 애처로워 보였던 양준일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난해한 글로 거센 반발과 비난을 감수해야 했던 이상, 외로움과 생활고에 허덕여야했던 이중섭, 가난과 싸우며 고통 속에서 살아가다 끝내 삶을 마감하고 말았던 고흐가 떠올랐다. 다들 시대를 앞서간 비운의 천재들, 그리고 천재라는 이유로 힘들고 쓸쓸한 인생을 감내해야 했던 그들과 양준일의 인생이 어느 부분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가 조금은 애처로워 보였다. 이상과 이중섭 그리고 고흐가 살아있다면, 그래서 만약 그들이 중년의 나이에 그들의 인생을 담담히 풀어낸다면, 나는 지금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그 이야기를 듣고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기억에는 없을지언정 어린 시절 그를 냉대했을 나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는 것만 같아 미안함 마음이 들었다.    
 JTBC <슈가맨3>에 출연한 양준일의 모습

JTBC <슈가맨3>에 출연한 양준일의 모습 ⓒ JTBC

 
어느 정도 인생을 살아보니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인생이 야속할 때가 있다. 다른 것, 새로운 것, 하고 싶은 것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미국에 살았던 교포이기에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떠밀려 설 곳이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살아온 인생이 참 야속할 것만 같은데, 어린 예술가의 날개를 꺾은 세상에 원망과 분노를 쏟아내는 대신 그저 본인의 인생을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간다는 그를 보며, 작은 일에도 세상에 투정을 부리던 나를 반성한다.

겸손한 남편과 아빠가 되는 것이 앞으로의 계획이라며 생계를 걱정하는 평범한 가장 양준일의 이면에는, 진짜 예술가들만이 가질 수 있는 순박함을 잃지 않은 채, 예술가의 피를 타고나야만 장착이 가능할 듯한 '필'을 목소리와 몸짓에 담아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있었다. 그는 아직도 천생 예술가였다.
 
미국에서 서빙일을 하고 있는 그가 '슈가맨'에 출연하고 돌아오는 2주 동안 자리를 비워도 계속 일하게 해주겠다는 식당 써니 사장님의 약속이 꼭 지켜지길 바란다. 혹여나 직장을 잃어 월세를 내지 못할까 전전긍긍하는 그의 모습에서 느껴지던 가장의 무게가, 인생의 고단함이 이제부터는 조금은 덜어지고 편해졌으면 한다. 
 
그나저나 '리베카'라는 노래의 중독성이 장난이 아니다. 어젯밤부터 흥얼거리던 그 노래가 하루가 지난 지금까지도 입에서 굴러다니고 있다.

* 천생 예술가 양준일 님, 한눈에도 DNA 마디 마디 마다 예술가의 기질을 타고 난 게 느껴지네요. 아직도 뼛속까지 예술가의 아우라를 뿜어내니 멋지십니다. 30년 전에 30년을 앞서간 시간여행을 하셨다면 이제는 딱 그 시간으로 돌아오신 거네요. 환영합니다. 30년 시간여행자의 현재로의 귀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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