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의 외국인 선수 테일러 쿡은 V리그 여자부를 대표하는 '트러블 메이커'다. 2015-2016시즌과 2017-2018시즌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에서 활약한 테일러는 오른발 족저근막염과 골반, 허리 부상을 이유로 두 번 모두 시즌을 완주하지 못했다. 특히 지난 2017년에는 한창 동료들과 손발을 맞춰야 할 시기에 한국의 안보가 불안하다는 이유로 미국으로 휴가를 다녀오기도 했다.

테일러의 말썽은 이번 시즌 도로공사에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시즌을 앞두고 무릎을 다친 셰리단 앳킨슨의 대체 선수로 도로공사에 합류한 테일러는 6경기에 출전해 33.46%의 성공률로 99득점을 기록한 후 허리 부상을 이유로 전력에서 제외됐다. 물론 도로공사에는 박정아라는 걸출한 토종거포가 있지만 외국인 선수의 부재는 아무래도 전력에 큰 손실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지난 11월 9일 현대건설 힐스테이트전부터 국내 선수들로만 경기를 치르고 있는 도로공사는 외국인 선수가 빠진 후 7경기에서 3승 4패로 비교적 선전하고 있다. 특히 최근 4경기에서는 3승 1패로 반등에 성공했다. 도로공사의 상승세는 시즌 초반 웜업존을 달구는 시간이 훨씬 많았던 이 선수가 주전으로 출전한 시기와 일치한다. 최근 4경기에서 72득점을 기록하며 박정아의 부담을 크게 덜어주고 있는 도로공사의 윙스파이커 전새얀이 그 주인공이다.

만년 우승후보 기업은행에서 기회 얻지 못한 전새얀
 
 도로공사 이적 후 착실히 성장하던 전새얀은 박정아 영입 이후 두 시즌 동안 많은 경기에 투입되지 못했다.

도로공사 이적 후 착실히 성장하던 전새얀은 박정아 영입 이후 두 시즌 동안 많은 경기에 투입되지 못했다. ⓒ 한국배구연맹

 
대구여고 출신의 전새얀은 2014-2015 V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5순위로 IBK기업은행 알토스에 지명됐다. 2014년 신인 드래프트는 국가대표 쌍둥이 이재영(흥국생명)과 이다영(현대건설)을 비롯해, 남자배구 거포 하종화 전 감독의 딸 하혜진, 190cm의 신장을 가진 센터 유망주 문명화(GS칼텍스 KIXX) 같은 대형 유망주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구여고를 이끌었던 에이스 전새얀이 5순위까지 밀려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기업은행은 쌍포 김희진과 박정아, 국가대표 출신의 세터 김사니(SBS SPORTS 해설위원)를 보유한 만년 우승후보로 전새얀은 쉽게 경기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2014-2015시즌 주로 교체 선수로 12경기에 출전해 8득점을 올린 것이 신인 시절 전새얀의 기록 전부다. 입단 동기인 이재영이 첫 시즌부터 374득점을 올리며 흥국생명의 에이스로 떠올랐던 것과 비교하면 전새얀의 시작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전새얀은 2015-2016시즌 초반 주전 윙스파이커 채선아(인삼공사)의 부진을 틈타 틈틈이 출전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프로 2년 차로 경험도 많지 않고 불규칙한 출전으로 경기 감각도 완전치 않은 상황에서 전새얀이 치열한 주전다툼을 이겨내는 것은 쉽지 않았다. 결국 전새얀은 시즌 중반부터 다시 웜업존을 지키는 시간이 늘어났고 30경기에서 72득점을 올리며 작은 성장과 프로 적응에 만족해야 했다.

한편 2016-2017시즌을 앞두고 도로공사는 고민에 빠졌다. FA로 센터 배유나를 영입한 도로공사는 보상 선수로 황민경(현대건설)을 GS칼텍스에 내주며 윙스파이커 자원이 헐거워지고 말았다. 결국 도로공사는 2016년 6월 기업은행에 김미연(흥국생명)과 이고은(GS칼텍스) 세터를 내주고 전새얀과 최은지(KGC인삼공사)를 영입하는 2:2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그렇게 전새얀은 프로에 진출한 지 2년도 되지 않아 도로공사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도로공사에서는 전새얀에게 비교적 기회가 자주 찾아왔다. 포지션 경쟁자였던 문정원과 하혜진이 차례로 부상을 당하면서 김종민 감독은 전새얀을 주전 레프트로 중용했다. 비록 도로공사는 2016-2017시즌 최하위로 추락했지만 전새얀은 27경기에 출전해 133득점을 기록하며 프로 데뷔 3년 만에 가장 좋은 시즌을 보냈다. 하지만 전새얀의 어중간한(?) 성장은 도로공사 구단의 결심을 더욱 굳히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외국인 선수 부럽지 않은 전새얀의 맹활약, 도로공사 반등 성공
 
 시즌 개막 후 8경기에서 13득점에 그쳤던 전새얀은 최근 4경기에서 72득점을 몰아치고 있다.

시즌 개막 후 8경기에서 13득점에 그쳤던 전새얀은 최근 4경기에서 72득점을 몰아치고 있다. ⓒ 한국배구연맹

 
도로공사는 전새얀, 최은지, 고예림(현대건설)처럼 비슷한 공격력을 가진 윙스파이커들로는 하위권을 벗어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는 도로공사가 2017년 FA시장에서 2억 5000만 원을 투자해 국가대표 거포 박정아를 영입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기업은행을 3번이나 챔프전 우승으로 이끌었던 검증된 거포 박정아가 들어오면서 왼손잡이 오른쪽 공격수 문정원은 임명옥 리베로와 함께 수비에 전념하게 됐다.

도로공사의 '박정아 효과'는 빠르고 확실했다. 2017-2018시즌 꿈에 그리던 통합 우승을 달성한 도로공사는 지난 시즌에도 챔프전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여자부의 강호로 떠올랐다. 하지만 박정아의 가세로 주전 선수들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면서 전새얀을 비롯한 백업 선수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 밖에 없었다. 실제로 2016-2017시즌 133득점을 기록했던 전새얀은 박정아 가세 후 두 시즌 동안 42경기에서 단 47득점을 올리는 데 그쳤다.

도로공사는 이번 시즌에도 테일러의 부상으로 국내 선수들로 경기를 치러야 하는 상황이 일찍 찾아왔지만 김종민 감독은 전새얀보다는 공격력이 좋은 하혜진과 기본기가 탄탄한 유서연을 먼저 활용했다. 하지만 전새얀은 웜업존에서 묵묵히 자신에게 기회가 오기를 기다렸고 시즌 첫 주전 출전 기회를 얻은 11월 23일 기업은행전에서 박정아와 함께 공격을 이끌며 18득점을 기록, 도로공사의 6연패 탈출을 주도했다.

꾸준하게 출전 기회를 얻으면서 전새얀의 성적도 점점 꾸준해졌다. 26일 흥국생명전에서 17득점을 기록한 전새얀은 12월에도 1일 현대건설전 17득점, 4일 GS칼텍스전에서는 20득점으로 도로공사가 최근 4경기에서 3승을 따내는 데 크게 기여했다. 김종민 감독은 전새얀의 공격력을 살리기 위해 박정아와 마찬가지로 서브리시브를 면제해 주고 있는데 전새얀은 최근 4경기에서 평균 18득점을 기록하며 김종민 감독의 기대에 완벽히 부응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수비가 불안한 전새얀은 흥국생명의 이한비나 기업은행의 김주향처럼 공격에 특화된 선수다. 따라서 테일러가 부상에서 돌아오거나 도로공사가 새 외국인 선수로 교체한다면 전새얀은 다시 벤치로 물러날 확률이 높다. 하지만 도로공사가 지난 시즌처럼 시즌 중반부터 상승세를 타 봄 배구 경쟁에 다시 뛰어든다면 침체된 팀 분위기를 바꾸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전새얀의 '깜짝 활약'은 분명 재조명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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