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시사직격> '동맹의 재발견' 편의 한 장면

KBS <시사직격> '동맹의 재발견' 편의 한 장면 ⓒ KBS

 
'동맹'의 사전적 의미는 "둘 이상의 개인이나 단체, 또는 국가가 서로의 이익이나 목적을 위하여 동일하게 행동하기로 맹세하여 맺는 약속이나 조직체, 또는 그런 관계를 맺음"을 의미한다. 한미 동맹은 그동안 동맹에서 더 나아가 '혈맹'으로 불려왔다. 미국은 6.25 한국 전쟁이 발발했을 때 유엔군을 이끌고 참전하여 3만4000명이 한반도에서 목숨을 잃었고, 우리나라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베트남 전선에서 미국과 함께 피를 흘리며 싸웠다.

그러나 최근 지소미아와 방위비 분담금 공방을 보노라면 한·미동맹이 예전처럼 느껴지질 않는다. 미국과 중국이 본격적인 패권 전쟁에 접어들며 동맹이란 단어 자체가 새롭게 정의되는 상황이다. 지난 11월 29일 방송한 KBS 1TV <시사 직격> '동맹의 재발견' 편은 세계 각국의 외교, 안보, 한반도 전문가들을 만나 동맹의 현 주소를 알아보고, 동북아시아를 둘러싼 패권 경쟁 속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모색한다. 지금 한·미·일에 '동맹'이란 무엇인가?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시사직격> '동맹의 재발견' 편의 한 장면

<시사직격> '동맹의 재발견' 편의 한 장면 ⓒ KBS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미국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미국 우선주의'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7년 사업가 시절엔 <뉴욕타임스>에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나라들을 위한 방위비 지출을 미국이 그만둬야만 하는 이유'라는 신문 광고를 실은 적도 있다고 한다. 대통령 후보 때에는 동맹국의 방위비를 늘리는 공약을 제시했다. 그는 30여 년 동안 일관되게 동맹국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주장해 왔다.

<시사 직격>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후엔 자유와 민주주의를 가치로 삼은 기존의 동맹 개념을 버리고 이해타산을 우선시하는 사업으로서의 새로운 동맹 개념을 앞세웠다.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연구소 부소장은 트럼프가 비즈니스 마인드로 국제 문제를 받아들인다고 설명한다.

"트럼프는 1980년대부터 공개적으로 한국과 일본이 무임승차를 하고 미국을 속인다면서 비판해왔습니다. 그는 동맹이나 안보 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단지 사업 경험만을 토대로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에서 손해를 본다고 생각합니다."

트럼프가 동맹을 공격하기 시작한 것은 유럽이었다. 취임 직후인 2017년 5월 25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참석하여 "28개 NATO 회원국 중 23개국이 여전히 지불해야 할 방위비를 대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은 미국 납세자들에게 공평하지 못한 것입니다"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허리케인 트럼프(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정책이 가져온 기존 국제 질서의 파괴 현상)'는 한국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9년 11월 15일 열린 제51차 한미안보협의회에서 한국의 내년 방위비 분담금으로 5조4000억 원을 제시했다. 올해 1조389억 원보다 5배나 인상한 금액이다.
 
 <시사직격> '동맹의 재발견' 편의 한 장면

<시사직격> '동맹의 재발견' 편의 한 장면 ⓒ KBS

 
우리에게 요구한 방위비 분담금 액수의 규모는 터무니 없다. 더욱 큰 문제는 괌이나 오키나와에 배치한 B52 전략폭격기 등 전략 자산의 전개 비용을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으로 청구한 사실이다. 군 작전 범위를 한반도 이외 지역까지 넓히면 한미상호방위조약에 어긋난다. 미국은 최근 한미연합사의 위기 대응 범위를 '한반도 유사시'에서 '미국 유사시'까지 확대하자고 요구한 적이 있다. 자신들이 벌이는 전쟁에 한국의 파병을 요구할 근거를 마련하거나 비용 일부를 떠넘기겠다는 속셈을 드러낸 것이다. 

주한미군에 관한 협정인 '한미행정협정(SOFA)'에 따르면 주한미군의 주둔에 필요한 모든 경비는 미국이 부담한다. 한·미는 부가협정인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SMA)'을 추가로 맺어 한국은 주한미군 한국인 고용원 임금, 군사건설비, 군수지원비도 부담해 왔다. 트럼프는 이 외에 주한미군의 인건비, 미군의 한반도 순환배치 비용, 역외 훈련비용 청구서까지 우리에게 내밀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은 트럼프 행정부의 논리대로라면 주한미군의 성격까지 달라진다고 설명한다.

"만약에 우리가 주한미군의 인건비까지 부담하게 되면 주한미군은 더 이상 동맹군대가 아닙니다. 용병이죠."

우리나라는 안보 무임승차 국가가 아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해외미군기지인 '캠프 험프리스'를 건설하는 공사비 12조 원 가운데 11조 원을 냈다. 지난 방위비 분담금 협상 때엔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를 대폭 수용해, 처음으로 1조 원을 넘겼다. 우리나라는 세계 4위의 미국 무기 수입국이기도 하다. 우리는 요구를 당당히 말할 권리가 있다.

"동맹국을 비즈니스 관점에서 계속 압박한다면 정말 필요할 때 미국을 돕겠는가?"란 우려의 목소리가 미국 진보와 보수 양쪽 진영에서 들린다. 그레이스 멍 하원 의원은 "트럼프 행정부는 동맹국 간 신뢰와 우의를 훼손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제출한 의회 보고서에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 협상 과정에서 한국의 상당한 기여를 고려하라고 적었다. <뉴욕타임즈>,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의 유력 일간지는 장사꾼식 흥정을 일삼는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를 "동맹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판했다.

미국 우선주의와 고립주의로 대표되는 국익 추구가 트럼프만의 문제가 아니란 분석도 있다. 지난 미국 대선에 뛰어든 20여 명의 후보들 중에 미국이 세계 안보와 무역 질서 유지 역할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은 단 한 명에 불과했다. 또한, 세계 곳곳에 배타적 민족주의가 도래하고 권위주의적 정권이 확대되었다. 트럼프의 극단적인 국익 추구가 예외 현상이 아닌, 세계의 조류란 해석이 가능하다. 우리는 미국의 두 얼굴을 염두에 두고 외교, 안보 정책을 그려야 한다.

'지소미아'의 본질
 
 <시사직격> '동맹의 재발견' 편의 한 장면

<시사직격> '동맹의 재발견' 편의 한 장면 ⓒ KBS

 
지난 11월 29일 한국 정부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의 조건부 연기를 발표했다. 그런데 조건부 연기란 결과를 두고 한·미·일의 반응은 엇갈린다. 한국은 일본이 수출규제조치 해소를 위한 전향적인 대화 진행을 조건으로 내린 결정이라고 말한다. 일본은 종료 유예 이후에도 화이트리스트 제외 등 수출규제 방침에 변화가 없다는 입장이다. 일본이 먼저 협상을 제안했다는 사실은 좀처럼 다뤄지지 않는다. 미국은 조건부 연기가 아니라고 한다. 각국의 입장만 본다면 어정쩡한 봉합에 가깝다.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하였을 때 미국 정부는 연이어 유감을 표명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은 "지소미아를 종료하기로 한 한국 정부의 결정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모건 오테이거스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이것(지소미아 종료)은 한국 방위를 복잡하게 하고 미국 병력에 대한 위험을 증가시킬 수 있다"며 경고 섞인 발언을 남겼다.

미국은 지소미아 중단 철회를 막기 위해 국무부의 차관급 간부 세 명을 한꺼번에 한국에 보냈다. 여기에 합참의장, 국방부 장관까지 방한하여 한국 정부를 압박했다. 분명 한·일 간 협정인데 미국은 왜 이렇게 지소미아에 관심을 구는 걸까? 이유는 미국의 중국 전략에서 찾을 수 있다.

지소미아는 실질적인 정보 교류보단 한·미·일 군사 협력이란 상징성이 크다. 태생부터 그랬다. 중국이 2014년 구매력 기준 국내총생산에서 세계 1위에 오르고 시진핑 주석이 중국 주도의 신실크로드 전략인 '일대일로'에 80여 개국이 참여하자 미국은 중국의 영향력을 경계하기 시작한다. 중국에 확장에 맞서 미국은 새로운 안보 계획인 '인도-태평양 전략'을 세운다.

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각 동맹을 통해 중국을 포위하는 것이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이다. 이들이 형성한 전선을 뒷받침하는 역할은 타이완, 베트남, 싱가포르가 맡았다. 미국은 동아시아의 축을 일본에 두고 한국이 받쳐주기를 원했다. 이렇게 한·미·일 삼각 군사 협력의 연결고리인 지소미아가 태어났다.

한·미·일 삼각 군사 협력이 중국을 가상의 적국으로 상정한다는 점은 우리를 고민스럽게 만든다. 중국은 우리 수출의 27%를 차지하는 최대 수출국이다. 우린 안보는 미국과 가깝지만, 경제는 중국과 밀접한 입장이다. 김준형 국립외교원 원장은 "중국의 무역 의존도가 높은 현실을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한·미동맹만 외치는 사람은 무책임하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8조 원의 경제 피해를 보았다. 그 여파는 지금까지 남아 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지소미아, 사드를 잇는 또 다른 갈등이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다.

미국은 1987년 소련과 맺었던 중거리핵전략조약(INF)을 최근 탈퇴했다. 탈퇴를 선언한 직후, 미국은 아시아 국가에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것은 러시아뿐만 아니라 중국을 겨냥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파터 펠스테드 군사전문지 <제인스 디펜스> 편집장의 설명이다.

"미국이 INF에서 탈퇴하는 건 중국에 영향을 미치는 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새로 개발한 지상발사순항미사일을 배치해 중국을 겨냥할 수도 있을 겁니다."

2017년 정부는 사드 배치로 한·중 관계가 악화하자 미국의 MD체계, 사드 추가배치, 한·미·일 군사동맹을 하지 않겠다는 '3불 정책'을 약속했다. 그러나 국제 정세가 급변하여 미국이 한반도에 미사일 배치를 요구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의 미사일이 한국에 배치될 경우 후폭풍은 사드의 수십 배에 달할 것이라 예상한다. 중국을 완전히 적으로 돌리면 우리 경제는 파국으로 몰린다. 앞으로 중국의 무역 의존도를 낮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지소미아의 다른 축인 일본은 실리 외교를 추구하고 있다. 미국을 돕는다는 명분 하에 독자적인 군사 재무장을 기도하는 중이다. 아베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 밀월 외교를 해나가는 한편 시진핑 주석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미·중이란 두 패권 사이에서 외교적 줄타기를 하며 이익 추구에 몰두하고 있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그리고 북한까지. 오면초가에 놓인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떨까? 우리 앞엔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일본의 보통국가화, 중국의 일대일로 확장,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시험 등 난제가 쌓여있다. 그런데 일부 보수 세력과 언론은 한·미동맹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마법의 주문이라며 되뇌인다. 한·미동맹이 국익을 위한 하나의 수단인지, 아니면 한·미동맹 수호가 국익의 최종 목표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다. 외교적 상상력을 발휘한 생각따윈 없다.

이젠 미국이 무조건 우리를 지켜줄 것이란 환상을 깨야 한다. 해묵은 불안 심리에서 벗어나 해법을 찾아야 한다. 세계 각국이 각자도생의 길을 모색하는 흐름을 읽어야 한다. 냉전 종식 이후 30여 년 동안 급격하게 변화한 국제 질서에 발맞춰 동맹의 개념을 재정의하고 그것에 맞추어 외교 전략의 틀을 짜야 한다.

대한민국의 외교와 안보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전쟁, 불확실성의 시대란 시험대에 이미 올랐다. 리영희 선생은 1970년대 한반도 정세를 보며 <전환시대의 논리>를 썼다. 그의 통찰력은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유효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급변하는 국제사회에서 한 국가나 한 국민이 서 있는 위치는 전체적 정세의 변동으로 변하게 마련이다. '객관적인 자기위치의 인식'없이 한 정부나 지도자나 국민이 내일의 생존을 기약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국제사회에서의 '객관적인 자기'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국민에게 '주체적인 자기'가 있을 리 없다."(<전환시대의 논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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