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러브 앳> 포스터

영화 <러브 앳> 포스터 ⓒ (주)크리픽쳐스

 
잘 나가는 SF 소설 작가 '라파엘(프랑수아 시빌)'은 바쁜 하루를 마친 후 아내 '올리비아(조세핀 자피)'와 언쟁을 벌인다. 다음날 잠에서 깨어난 라파엘은 같은 듯 다른 세상에서 중학교 문학 교사로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한다. 우여곡절 끝에 라파엘은 올리비아를 만나지만, 평행세계의 그녀는 라파엘을 전혀 모르는 것은 물론, 성공한 에이전트인 '마크(아마우리 드크레양쿠르)'를 애인으로 둔 유명 피아니스트일 뿐이다. 평행세계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믿어주는 친구 '펠릭스(벤자민 라벤르헤)'의 도움으로 '올리비아'의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라파엘. 그는 올리비아의 마음을 사로잡아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기 위한 계획을 실행한다.

<러브 앳>의 완성도는 높지 않다. 우선 스토리의 전개가 상당히 허술하다. 세세한 부분들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라파엘과 올리비아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과정은 영화적 허용이 남발되어서 지나치게 운명적이고 결과론적인 것처럼 보인다. 이는 물론 운명적인 사랑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필수 불가결한 선택이겠지만, 영화의 몰입에 방해를 줄 수 있는 허점인 것도 사실이다.

스토리 전개가 허술한 것은 영화 내에서 상이한 장르의 문법이 충돌한 결과다. <러브 앳>은 운명적인 사랑을 다루는 로맨틱 코미디 문법에 평행세계라는 SF 장르의 상상력을 더해서 만들어진 영화인데, 그 접합이 매끄럽지 못해 불협화음이 생긴다.
 
 영화 <러브 앳> 스틸 컷

영화 <러브 앳> 스틸 컷 ⓒ (주)크리픽쳐스

 
로맨틱 코미디 장르는 기본적으로 관객들과 무언의 합의를 이룬 장르다. 로맨틱 코미디는 다른 장르의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유독 비현실적이고, 우연적이고, 과장된 묘사가 많은데, 이는 유머와 웃음을 만들어내기 위한 장치라는 것을 관객들이 감안해 주기 때문에 가능하다. 따라서 남녀 주인공이 만나는 계기나 사랑에 빠지는 과정 등에 있어서 우연과 운명이 과도하게 활용되더라도 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SF 영화는 다르다. SF는 실제 현실에서는 과학적으로 불가능하더라도 영화 내에서는 나름의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핍진성을 갖추어야 하는 장르다. 그래야만 납득하기 어렵고,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나 현상도 영화 안에서 논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근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브 앳>은 평행세계라는 SF 장르의 대표적인 문법을 차용하면서도 정작 그 평행세계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평행세계로 오게 된 이유나 돌아갈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과학적 지식을 단순히 열거하거나 다른 영화를 인용해 간단히 언급할 뿐이다. 그 결과 영화의 모든 스토리가 명확한 인과관계없이 우연에만 의존해 전개되는 것처럼 보이는 불상사가 야기된다. 로맨틱 코미디의 우연성이 SF 장르의 핍진성을 침해해 장르 간의 균열을 일으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러브 앳>이 스토리텔링 상의 허점을 상상력과 연출로 말끔히 숨기고 있다는 점이다. <러브 앳>은 두 가지 상상으로부터 시작한다. 하나는 '끝난 사랑을 다시 되찾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가정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세상에서 만나도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가정이다. 이 가정들은 결국 '그/그녀와 사랑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봤을 질문으로 귀결된다. 이처럼  <러브 앳>은 개인적 경험에 호소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면서 관객들을 영화 안으로 손쉽게 끌어들인다.
 
 영화 <러브 앳> 스틸 컷

영화 <러브 앳> 스틸 컷 ⓒ (주)크리픽쳐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을 보여주는 방식도 영리하다. 평행세계에 떨어진 라파엘과 그런 그를 돌봐주는 펠릭스의 좌충우돌 에피소드들은 타율 높은 유머로 기능한다. 바다에서 함께 잠수해 있거나 식당에서 함께 식사하는 장면처럼 라파엘을 아무것도 모르는 올리비아와 대비시키면서 묘한 긴장감을 조성하고 영화의 몰입도를 끌어올리는 연출도 효과적이다. 영화 안에서 라파엘이 집필한 소설의 일부 장면이 영상으로 등장하는 액자 식 구조, 작가를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로 설정하고 라파엘과 그의 소설 내 캐릭터를 연결시키는 전개는 기대하지 않은 재미를 주기도 한다.

그리고 예상을 살짝 빗나가는 결말은 영화에 무게감을 더해준다. <러브 앳>의 결말은 과거의 사랑을 다시 하는 것만큼이나 지금을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덕분에 원래 세계로 되돌아가기 위해 발버둥 치는 주인공에게 몰입해 있다가 예상치 못하게 자신의 과거와 현재의 사랑을 되돌아볼 수 있다. 마지막 순간에 평범한 로맨틱 코미디 이상의 감흥을 선사하는 것이다.

프랑스의 느낌이 전반적으로 강한 것도 이 작품 만의 차별화된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피아노라는 소재. 음악이 계기가 된 남녀의 우연한 만남과 운명적인 이끌림. 스타가 된 애인을 둔 여자의 불안함. 파리의 경관 안에서 이러한 설정들이 만들어 내는 서사는 크리스티앙 그르니에가 집필한 <내 남자친구 이야기>와 <내 여자친구 이야기>라는 소설을 연상시킨다. 이에 더해 프랑수아 시빌과 조세핀 자피라는, 프랑스의 미남 미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 조합은 사랑의 시작인 기분 좋은 떨림, 긴장감, 어색함, 권태 등을 다양한 표정으로 잘 보여준다.

<러브 앳>은 분명히 큰 허점을 지닌, 완성도가 결코 높지 않은 영화다. 하지만 로맨틱 코미디로서의 재미를 확실히 챙겨 허점을 효과적으로 가렸다는 점과 사랑의 대상과 시점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기대 이상의 묵직함을 선사하는 사랑스러운 작품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원종빈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 게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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