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반전, 인천 유나이티드 골잡이 무고사가 경남 FC 수비수의 잡기 반칙에도 불구하고 크로스를 따라 뛰는 순간

후반전, 인천 유나이티드 골잡이 무고사가 경남 FC 수비수의 잡기 반칙에도 불구하고 크로스를 따라 뛰는 순간 ⓒ 심재철

 
지난 11월 30일 오후 5시가 훌쩍 넘어버린 창원 축구센터 S석 바로 앞, 종료 휘슬이 울리고 한참이나 지났지만 멀리서 모인 인천 유나이티드 FC 팬들은 관중석을 떠나지 못했다. 그라운드에 남아서 각종 언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선수들을 끝까지 기다렸기 때문이다. 그 자리도 거의 끝날 무렵 김호남이 서포터즈 앞에 확성기를 들고 섰다. 

"제가 이런 분들과 같이 축구를 한다는 게 너무나 영광스럽고. 어디 안 갈 거니까 같이 있는 동안 진짜 미쳐봅시다!"

만감이 교차하는 바로 그 자리, 관중석에 선 수많은 팬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여러 마디 응원과 감사의 목소리를 외쳤지만 김호남은 한 마디 한 마디 귀담아 듣고자 했다. 그리고 대답처럼 내뱉은 저 한 마디에 지금 그들의 진심이 모두 담긴 듯 보였다.

축구라는 스포츠가 만드는 감동은 멋진 골 순간만이 아니라는 것을 이번 시즌 인천 유나이티드 FC 구성원 모두가 보여주었다. 이번 시즌에도 지는 것에 익숙한 꼴찌 팀이었지만 힘겹게 강등권 틈바구니에서 버티며 끝내 1부리그(K리그 1)에 살아남아 또 한 편의 축구 드라마를 보여준 것이다.
 
 인천 유나이티드 김호남이 팬들에게 자신의 유니폼을 벗어 던지는 순간

인천 유나이티드 김호남이 팬들에게 자신의 유니폼을 벗어 던지는 순간 ⓒ 심재철


유상철 감독의 약속... 그리고 인천 팬들의 뜨거운 응원

시민 구단 인천 유나이티드 FC는 시즌 초반 성적이 바닥을 찍고 있었다. 11라운드 종료 시점까지 겨우 1승만 따냈을 뿐 3무 7패를 더해 꼴찌(12위)에 서 있었던 것이다. 이 꼴찌 팀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 5월 14일 유상철 신임 감독이 부임했다. 

인천 유나이티드는 새 감독을 맞이하고 3게임만에 시즌 두 번째 승리를 거뒀다. 그것이 5월 28일 서귀포에서 열린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어웨이 게임이었기 때문에 더 의미가 컸다. 그 게임은 제주 유나이티드가 결과적으로 2부리그로 미끄러지는 결정적인 계기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유상철 감독을 믿고 따른 인천 유나이티드는 단숨에 강등권을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부임 이전(1승/11게임)에 비해 부임 이후(6승/27게임) 승률이 13.1% 포인트나 올랐다는 것을 따져봐도 게임 운영 능력이 탄탄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유상철 감독과 함께 똘똘 뭉친 인천 유나이티드 FC는 최근 9게임을 치르는 동안 단 1게임만 패하며 3승 5무로 귀중한 승점 쌓기에 몰두했고 그 덕분에 시즌 최종 순위 10위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시즌 초반 9게임 1승 3무 5패와 시즌 종반 9게임 3승 5무 1패의 기록이 묘하게 대조된 것만으로도 인천 유나이티드의 생존 의지가 얼마나 강했는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천 유나이티드 구성원들은 파이널 라운드 B그룹(하위 6팀) 일정이 시작되는 첫 게임을 치르며 너무나 가슴 아픈 소식을 들었다. 바로 유상철 감독의 췌장암 투병 소식이었다. 성남 FC와의 어웨이 게임을 통해 귀중한 승점 3점(1-0 승)을 얻어냈지만 선수들은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인천 유나이티드 FC 유상철 감독이 수많은 팬들 앞에 서서 소감을 전하는 순간.

인천 유나이티드 FC 유상철 감독이 수많은 팬들 앞에 서서 소감을 전하는 순간. ⓒ 심재철

 
인천 유나이티드의 유상철 감독은 정밀 검사 결과를 받아든 뒤 두 가지 약속을 말했다. 하나는 K리그 1에 남는다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병마와 끝까지 싸워 이겨내겠다는 것이었다. 이 두 약속 중 하나는 이렇게 멋지게 지켜냈다. 

인천 유나이티드의 시즌 마지막 게임에 힘을 보태기 위해 '파랑 검정' 팬들은 버스 16대를 비롯하여 다양한 교통 수단을 타고 창원 축구센터 S석으로 모여들었다. 그곳이 마치 인천 유나이티드 홈 구장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함성들이 경남 팬들의 그것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이 게임이 득점 없이 끝나는 바람에 승점 1점을 챙겨 승강 플레이오프를 거치지 않고 자력 생존을 확인한 인천 유나이티드 팬들은 유상철 감독의 투병에 힘을 보태고자 '남은 약속 하나도 꼭 지켜줘'라는 문구를 내걸고 감독의 이름을 그 어느 때보다 힘차게 외쳤다. 

김호남, 김도혁 등 선수들처럼 유상철 감독도 확성기를 들고 팬들 앞에 서서 그 약속 지키겠다는 다짐을 전했다. 그라운드 위에서 뛰는 축구 게임도 여러가지 약속이 연계되어야 가능하다. 그러한 축구 게임 약속 이상으로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과 선수들 그리고 팬들이 나눈 약속은 더 아름답게 빛나는 약속으로 2019 K리그 역사에 새겨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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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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