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과도한 사생활 침해, 근거 없는 비방, 그 안에 담겨진 차별적이고 이중적인 시선의 문제는 여성연예인의 삶 그 자체를 위협하고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무차별적 비난을 쏟아내는 대중들의 악플 폐해 또한 그러하다.

더구나 남성이 아닌 '여성'이라는 이유로 놓이게 되는 차별적 상황은 인권 침해를 더욱 가중시킨다. 비록 직접적인 차별이나 성적인 피해를 입지 않더라도 여성연예인은 양가적인 시선의 굴레와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때문에 같은 문제를 일으키더라도 남성에 비하여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의 잣대가 더욱 가혹하다."


'여성 연예인' 설리와 구하라가 세상을 등진 2019년의 상황이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인 2010년 4월, 고 장자연 사건 1년 후 시점에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발표한 '여성연예인 인권침해 실태조사 결과' 중 '언론과 대중' 부문의 조사 결과 일부다.

작금의 상황과 비교해도 하등 무리가 없다. 아니,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고 보는 것이 틀리지 않을 듯 싶다. 우선 당시 이수연 한국여성정책연구원 평등·사회통합연구실장이 내놓은 실태조사 결과를 좀 더 살펴보자.

10년 전 여성연예인의 인권침해
 
 가수 구하라의 빈소가 25일 오후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이곳은 팬들을 위한 빈소로 가족과 지인을 위한 빈소는 다른 병원에 마련됐다.

가수 구하라의 빈소가 25일 오후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이곳은 팬들을 위한 빈소로 가족과 지인을 위한 빈소는 다른 병원에 마련됐다.ⓒ 사진공동취재단


"여성연예인의 인권침해는 가부장적 문화와 연예산업의 자본주의적 구조와 관련된다. 가부장적 문화 하에서 여성연예인은 성적 대상으로 간주된다. 여성연예인들은 남성의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서 소비되며 남성의 성적 시선을 벗어나기 힘들다. 따라서 이들은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으로서보다 수동적인 대상으로서 효용성을 갖게 된다.

이처럼 여성의 성적 대상화는 대중매체의 속성과도 연관된다. 여배우를 보는 업계 안팎의 시선이 근본적인 성적 대상화라면 여성연예인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구조로 작용한다. 이처럼 가부장적 문화가 관행으로, 관행이 구조로 이어지는 연예계에서 여성연예인의 인권을 지키는 일은 쉽지 않다."


인권위는 '여성연예인 인권침해의 배경과 현실'의 첫 번째로 가부장적 문화를 꼽았다. 2010년의 '가부장적 문화'란 표현이 2019년 '여성혐오'로 진화했다고 보면 어색하지 않을 듯 싶다. 여기에 인권위는 연예인을 노동자(성)로서 인정하지 않는 업계·사회적 분위기와 함께 에이전트 규제법과 연예인 노조 제도의 활성화를 용인하지 않는 연예산업 안의 구조적이고 관행적인 문제들을 원인으로 꼽았다.

이와 관련해 인권위는 "연예인 지망생의 과다 공급, 스타의 희소성, 기획/매니지먼트사의 취약한 수익구조와 영세 기획/매니지먼트사의 난립, 그리고 매니저와 브로커를 자칭하는 사기성 인물과 조직들"이란 연예 산업의 전반적 문제 모두가 여성 연예인들이 "불공정한 계약을 할 수밖에 없게 하고 상습적으로 사기를 당하거나 더 나아가 스폰서의 관계까지 종용받게 되는 원인"이 된다고 꼬집기도 했다.

산업 자체가 거대 기획사 중심으로 강화된 것 외에 지금과 비교해 달라진 것이 과연 무엇인가. 고 장자연 사건을 통해 사회적인 충격을 줬던 스폰서 문화가 음지로 쫓겨난 것을 제외하고, 과연 얼마나 달라졌나.

바뀌지 않는 구조와 혐오 문화

"그 (여성혐오)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결국 남성이 성찰해야 되는 거죠. 보통 여성혐오에 대해서 어디 있느냐고 하는데 남성의 일상이 여성혐오입니다. 여성에 대한 심오한 편견, 여성에 대한 구조적인 차별, 여성에 대한 폭력 이런 것들이 일상에서 일어나는데, 온라인,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이걸 스스로가 남성들이 이게 문제라고 인식하고 그만두지 않는 한, 지금 우리가 얘기한 모든 대책들은 일시적이라는 거예요."

지난 27일 KBS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에 출연한 중앙대 사회학과 이나영 교수의 주장이다. 이 교수는 "댓글 규제 같은 방안은 필요는 하지만 굉장히 단기적인 대책일 뿐"이라며 "본질적인 이야기를 지금부터 하지 않으면 5년 뒤, 10년 뒤에는 어떻게 될 것 같아요?"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적극 공감한다. 인권위가 실태조사에 나선 지 10년, 고 장자연 사건 이후 여성 연예인의 '일상'은 오히려 더 퇴화됐을 뿐이다. 전통적인 가부장 문화에 의한 차별은 여성혐오로 진화했고, 특히 소셜 미디어와 유튜브란 플랫폼이 대세로 자리 잡은 이 1인 미디어 시대는, 그리고 포털에 종속된 언론 지형과 댓글의 일상화는 개개인에게 스피커를 쥐어 주었다. 

그렇다면 본질적인 이야기와 함께 실질적인 '할 일'은 무엇이 있을까. 10년 전, 당시 인권위 역시 개선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강력하게 자리 잡은 미국의 연예 산업 노조의 경우 등을 참고한 예였다.

이 중 표준계약서는 점차 되는 추세다. 하지만 제도화가 가능할 듯 보였던 몇몇 방안은 지난 10년 간 '시도'만 됐을 뿐이다. 연예 매니지먼트사업 관련 법안들이 발의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반짝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이도 잠시 뿐이었다.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여성 연예인의 인권을 위해, 2005년 설립된 한국연예매니지먼트협회가 협의체와 같은 기구를 만들어 제도 개선을 도모한다? 예나 지금이나 요원한 듯 보인다.

허나 인권위의 권고 중 눈여겨 볼 제안도 없진 않다. 당시 인권위는 여성 연기자협회 등을 통해 ▲민원 창구 및 카운슬링 창구 개설 및 운영 ▲멘토 시스템 도입을 통한 선후배의 유대강화 및 협조체계 ▲신인 연예인 대상 오리엔테이션 및 분기별 교육 실시 등을 제안하 바 있다.

인권위는 특히 협회 차원에서 연예인 개개인이 처한 상황을 파악하는 한편 이를 위해 데이터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이러한 방안이야말로 지금, 당장 실현 가능한 개선 노력일 수 있지 않을까. 

현실적 개선 방안들
 
 설리

설리ⓒ SM엔터테인먼트

 
이것들조차 여전히 요원한 일반론일 수 있다. 스스로 '악플 읽기'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나섰던 설리를 보며 최근 <거리의 만찬>에 출연했던 선배 연예인 김동완은 "동물의 왕국을 보는 것 같았다"고 참담해 했다. '동물의 왕국'과 같은 환경에선 일반론을 아무리 반복한다 해도 참담한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 구조와 본질적인 이야기, 그리고 개별 연예인의 고통 사이에서, 2019년 지금, 여기에서 개선책을 도모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우선, 포털사이트 다음에 이어 네이버 연예면의 댓글창부터 폐쇄하자. 혐오 표현의, 악플러들의 놀이터가 된 네이버 댓글 창을 일단 없애고, 이 악플러들이 노는 공간을 개별 매체의 댓글 창으로 이주시킬 필요가 있다. 한 곳으로 쏠린 전 국민의 이목을 분산시키는 것만으로 효과는 클 것이란 얘기다. 깨끗하게 사라진 포털 다음의 댓글 창을 네이버에서도 보고 싶다.

이건 시작이다. 소셜 미디어나 각종 커뮤니티에 창궐한 악플 역시 문제시 될 수 있다. 악플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높이자는 목소리가 여기에서 나온다. 또 다른 표현의 자유 논란을 불러 온 일명 '설리법', 즉 인터넷 준실명제까지 갈 필요도 없다. 새로운 입법이 아니더라도 현행법에 따라 법정에서 엄하게 처벌만 해도 전파력이 큰 악플은 막을 수 있다는 법조계 의견도 적지 않다. 악플과 관련해서도 처벌 만능주의는 경계해야 하지만, 피해자의 고통에 비해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였다는 데 공감하는 이가 다수일 것이다.

포괄적인 측면에서 차별과 혐오를 포함한 관련 입법도 시급하다. 12년 째 표류 중인 이어 차별금지법 제정이 급선무다. 각종 혐오 발언과 혐오 문화의 확산을 막기 위해서라도, 또 논란이 논란을 재생산하는 구조를 제거하기 위해서라도 차별금지법 제정은 필수로 보인다.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있으니 '굳이' 차별금지법이 필요한가에 대한 오래된 질문이 나올 법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차별 피해를 겪은 당사자를 구제하는 중요한 독립기구다. 차별 관련 사건을 진정 받고 접수해 조사할 수 있지만 시정 권고까지가 최선이다. 배상 책임까지 포함한 실질적 구제가 보장되는 차별금지법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사IN> 636호,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지배하는 세상> 중에서)

또 해결이 가장 요원해 보이는 무분별하고 선정적인, 그리고 무차별적인 언론 보도 역시 (매체 스스로 키워내는) 논란 자체를 줄이고 여성 혐오와 차별적인 문화 자체를 줄여 가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좀 더 현실적이리라.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가면서.

구하라의 사망 직후, <가해자 중심적인 성범죄의 양형기준을 재정비해주세요>란 국민청원이 20만을 넘긴 것 역시 같은 맥락일 것이다. 데이트 폭력과 불법 촬영(과 협박)의 피해자라 할 수 있는 구하라의 죽음에 '가해자 중심'의 법원 판결도 책임이 있다고 느낀 이들이 청원에 적극 동참한 것으로 풀이된다. 많은 이들이, 여성들이 비단 추모에 그치지 않고 당장 변화를 위해 '동참'할 곳을 찾은 결과라고 할까.  

연쇄적 살인

"저는 연쇄적인 살인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이 두 여성이 결국은 개인적으로는 우울증을 겪었다고 언론에서도 일각에서도 보도하고 있는데요. 만약에 이렇게 계속해서 여러 사람에게 성적으로 공격을 당하고 모욕을 당하고 그리고 자신의 사생활을 찍은 여러 가지 영상이 돌아다니는 일을 겪었다면 어떤 사람이 아프지 않겠어요?

없는 우울증도 생기겠죠? 그러니까 우울증이라고 환원시키고자 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결국은 자신이 일상 속에서 저질렀을지도 모르는 그런 가해행위에 대한 아주 기본적인 성찰적인 행위도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나영 교수)


없는 우울증도 생길 여성 연예인의 현실에, 한국사회의 "기본적인 성찰" 없이는 변화도, 실천도 뒤따를 수 없다. 허나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개선의 여지는 불투명해 보인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요원한 차별금지법 제정의 현실을 보라.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가부장제와 여성 혐오의 벽이 그렇게나 두텁다. 

생전 청소년과 여성들의 생리대 기부에 앞장섰다는 설리도, '정준영 단톡방' 사건에 도움을 주고자 사건을 취재중이었던 기자에게 연락을 시도했다던 구하라도 10대부터 연예인 생활을 시작했다. 이미 고 장자연 사건 전후로 데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해 온 한국사회에서 이미 그들은 스스로의 위치를 자각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나갔던 걸로 보인다.  ​​​그렇게 이 '성찰 없는' 한국사회가, '동물의 왕국'이 계속해서 값진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사실 10여 년 전 장자연을 잃었던 당시에도 추모는 차고 넘쳤었다. 일회성 추모로는 연쇄적인 사회적 타살을 막을 수도, 또 다른 희생자들을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불투명한 전망 속에서도 안타까운 죽음을 막을 수 있는 길을 '우리'가 적극적으로 모색할 때다.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어제는 영화 기자, 오늘은 프리랜서 글쟁이. 살다보니 시나리오 쓰는 사람.

  •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