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한 가족에 비상이 걸렸다. 여러 대의 전화기를 주문한 작가 아버지는 많은 이름을 지은 뒤 가족들에게 그 이름들을 기억하라고 한다. 자신이 쓴 작품을 자신의 것이라 말하지도 못하고 스스로 원고 배달하는 것조차 망설이게 되는 이 상황. 이 작가한테는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한편의 영화 같은 이 이야기는 실제 인기 작가 트럼보가 겪은 일에 기반을 두고 만들어졌다. 
 
1943년, 할리우드에서 당시 잘나가던 천재 시나리오 작가 '달튼 트럼보(브라이언 크랜스톤)'는 냉전 시대에 공산주의를 지지하는 입장을 밝힌 터라 한순간에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된다. 명예와 부를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그는 가족을 위해 영리한 생각을 해낸다. 바로 가짜 필명으로 쓰되 글을 이전보다 싼 가격에 팔기로 말이다. 
 
 영화 <트럼보> 속 장면

영화 <트럼보> 속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

 
2016년 제이 로치가 메가폰을 잡은 영화 <트럼보>에서 주목할 점은 몇 가지 있다. 하나는 급변하는 자신의 인생에 굴복하지 않고 유연하게 인생의 전환기에 대처하는 트럼보의 분투기이다. 같은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오른 다른 작가와는 다른 행보를 보이던 트럼보는 영화 관계자들에게 필명으로 쓴 원고를 싸게 팔겠다고 제안한다. 그리고 그런 노력 끝에 영화 관계자들은 그의 원고를 사기 시작한다. 

둘째, 영화는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한 사람을 인생을 무참히 짓이겨 놓은 당시 사회상을 조명한다. <트럼보>에서 이전보다 싼 가격으로 시나리오를 팔게 된 트럼보는 평소보다 많은 양의 시나리오를 써내느라 매일같이 일에 매달리는 통에 가족 간에 대화도 단절되었다.

그는 다른 가족들의 삶을 존중하지 않는 터라 가족들 사이에선 연이어 불화가 일어났다. 결국 그의 아내는 이대로는 살아갈 수 없다고 트럼보를 질타하고 영화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는 트럼보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 <트럼보> 속 장면

영화 <트럼보> 속 장면 ⓒ 그린나래미디어


셋째는 트럼보가 다른 작가들을 위해서도 판을 만드는 장면이다. 트럼보는 영화 관계자들에게 다른 작가들 역시 필명으로 글을 쓰도록 해준다면 마음에 안 드는 시나리오는 자신이 끝까지 책임지고 수정해주겠다고 제안한다. 공산주의를 지지했다는 이유만으로 재능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을 잃어버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신념 하에 벌인 이 일은 블랙리스트에 올라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다른 작가에게도 희망이 되었다.
 
영화 <트럼보>의 각본을 쓴 존 맥나마라는 <로마의 휴일>을 쓴 이안 맥켈란 헌터에게 찬사를 보내지만, 이내 '이 영화는 내가 아닌 트럼보가 썼다'란 답을 듣게 된다. 이후 존 맥나마는 트럼보 일대기에 대해 급격하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난 이후 냉전 시대가 도래했다. 미국에서는 공산당원들을 찾아내기 위해 '반미활동 조사위원회(HUAC)'를 조직했다. 1947년 9월, '반미활동 조사위원회(HUAC)'에서 증언을 거부한 대가로 '할리우드 10'으로 지목되어 작품 활동이 금지되었던 트럼보는 자신의 이름을 감추고 12가지 이름으로 <로마의 휴일>, <빠삐용>, <스파르타쿠스> 등 고전 명작을 써내려가면서도 '신념과 선을 위해 자신의 일을 희생할 수 있는 용기를 지녔다는 점'을 잘 보여주었다.
덧붙이는 글 개인 SNS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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