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원 음악감독

양정원 음악감독.ⓒ 개화만발 스튜디오

 
구상부터 완성까지 반년이 넘게 걸렸다. 어지간한 상업 극영화 못지않은 작업 기간. 최근까지 < 1991, 봄 >, <계절과 계절 사이> <파고> 등 100여 편의 영화 음악 작업을 해 온 양정원 감독은 다큐멘터리 <삽질>은 일종의 '확장'이라 고백했다. 이명박 정권의 최대 비리 사업인 4대강 사업의 진실을 추적한 이 건조한 영화에 그는 숨결을 불어넣은 일등 공신 중 한 사람이다. 

단순히 처음 경험한 '저널리즘 다큐'라서가 아니었다. 물론 '저널리즘 다큐'라는 말 자체가 하나의 장르를 뜻하는 건 아니다. <자백>과 <공범자들>처럼 언론사가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지칭하는 것인지 추적 고발성 성격이 있는 또 다른 작품들까지 포함하는 것인지 논의가 더 필요하겠지만, 어떤 이유에서였든 양정원 감독은 <삽질> 음악 작업을 제안받았을 때 망설이지 않고 수락했다.

"그러고 보니 올해 2월이 시작이었다. <공범자들>을 작업했던 정용진 음악 감독님과 친한데 언젠가 나도 정 선배 같은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기자들이 만든 다큐가 궁금했다. 솔직히 처음 <삽질>을 봤을 때 야구에 비유하면 꽉 찬 직구 같은 느낌이었다. 같은 언론인 출신인 이상호 기자 영화는 흥행과 극적 요소를 신경 쓴 변화구 같은데 상당히 다른 느낌이었지." 

예상 못한 장애물
 
 영화 <삽질>의 음악을 맡은 양정원 감독. 현재 멜론, 애플뮤직 등에서 OST 앨범을 들을 수 있다.

영화 <삽질>의 음악을 맡은 양정원 감독. 현재 멜론, 애플뮤직 등에서 OST 앨범을 들을 수 있다.ⓒ 개화만발스튜디오

 
망설임 없이 수락했지만 그게 고생의 시작이었다. 올해 5월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상을 받은 <삽질>이 개봉(2019년 11월 14일) 준비 과정에서 상당 부분 편집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러닝타임도 113분에서 94분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제작진은 바뀐 편집 버전에 맞는 음악을 양정원 감독에게 다시 의뢰했고, 이 때문에 골머리를 꽤 앓았다고 한다.

"사실 전주영화제 버전 때는 저에게 온 특별한 주문은 없었다. 영화에 맞게 잘 만들어 달라는 거였는데 그래서 <공범자들> 음악을 떠올리며 쭉 갔다. 팩트에 기반을 둔 영화니까 음정이 없는 음악으로 작업했지. 근데 다시 제게 의뢰하셨을 땐 분명한 가이드(guide)가 있었다. 록 블루스라니... 아, 이 영화를 이렇게 보시고 있구나. 그때 처음으로 뭔가 새로운 음악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삽질> 제작진이 예시로 든 음악은 제프 버클리(jeff buckley)의 'Forget Her'였다. 다소 음울한 분위기의 노래인데 너무 우울하진 않게 곡을 만들어 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오케스트라 같은 웅장한 음악이 저널리즘 다큐멘터리에 많이 쓰이긴 한다. 근데 <삽질>을 보고 록 블루스 분위기를 떠올려 보니 어울릴 것 같더라. 이명박씨가 록 가수를 좀 닮았잖나(웃음, 마릴린 맨슨을 뜻함-기자 말). 영화 부제에 'secret 6'가 들어가듯 어떤 비밀과 음모가 담겨 있기에 기자분들이 그걸 노린 거라고 생각했다. 비밀의 끝을 음악으로도 보여드리고 싶었고, 관객들이 거기에 분노하면 성공인 거였지. 

이명박이 '삽질'한 돈은 다 어디로 갔지? 이런 물음을 던지게 하고 싶었다. 또 다른 곡이 'The Rat', 말 그대로 쥐인데 전자가 영화의 주제곡이라면 이건 그냥 이명박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영화엔 간주만 나오는데 가사가 있는 노래다. <삽질>의 프로듀서님이 직접 가사를 썼다(웃음)."

 
 영화 <삽질>의 한 장면

영화 <삽질>의 한 장면ⓒ 엣나인필름

 영화 <삽질>의 음악을 맡은 양정원 감독. 현재 멜론, 애플뮤직 등에서 OST 앨범을 들을 수 있다.

영화 <삽질>의 음악을 맡은 양정원 감독. 현재 멜론, 애플뮤직 등에서 OST 앨범을 들을 수 있다.ⓒ 개화만발스튜디오

 
완성된 영화의 재편집, 그에 따른 재 음악 작업은 나름 경력이 쌓인 양정원 음악 감독에게도 큰 벽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이미 영화를 한 번 보고 작업한 상태에서 전혀 다르게 가려 하니 너무 힘들었다"며 그가 한숨부터 쉬었다. 영화를 개봉했으니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다며 그는 말을 이었다.

"솔직히 처음 이 영화를 받았을 때 음악 자체가 어렵겠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공범자들>처럼 탐사 취재의 결과물이라 생각했거든. 근데 두 번째에선 록 블루스라니. 가이드 음악에 안 맞는 건 버리고, 기존 음악 중 쓸 수 있는 건 조금 바꿔서 메꾸고. 그 과정이 힘들긴 했다. 동시에 이 영화가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았을 땐 매우 기뻤다. 저도 일조를 한 것 같아서(웃음). 수상을 통해 이 영화가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려지겠다 싶었다.

제겐 <삽질> 작업이 일종의 확장이었다. 아까 기자들이 만든 다큐를 해보고 싶었다고 했잖나. 휴먼 다큐는 여러 개 해 봤거든. 이번에 오케스트라로 했다면 크게 차별성이 없었을 것 같기도 하다. 근데 굉장히 용감하게 가이드를 제시해주셔서 제 입장에서도 편했다. 역시 음악을 잘 아는 분이 주문을 해주셔야 한다. 음악 감독마다 성향이 다르긴 한데 전 가이드가 있는 걸 선호하는 편이다. 보통 저널리즘 다큐라면 영화를 보기도 전에 음악이 예상이 되고는 하는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확장이 맞지. 결과적으로 <공범자들>과 아주 다른 음악을 했다(웃음)."


점차 완성된 노래가 아닌 효과음과 노래의 경계까지 영화 음악이 확장되는 추세다. 양정원 음악 감독은 "한스 짐머 같은 웅장한 음악의 대명사까지도 요즘 효과음을 많이 쓰시더라"며 최근의 영화 음악 흐름을 전했다. <시카리오> <컨택트> 등의 음악을 해 오다 지난해 사망한 요한 요한슨을 언급하며 그는 "아직 한국영화에선 이런 음악이 쉽게 어울릴 것 같진 않지만 만약 신선한 작품이 나온다면 저 역시 음악적으로 새로운 영역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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