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배구 대표팀, 김연경-이재영 선수

여자배구 대표팀, 김연경-이재영 선수 ⓒ 박진철 기자

 
프로배구 V리그의 빡빡한 경기 일정으로 인한 대표팀 선수들의 '혹사·부상' 논란이 뜨거운 쟁점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내년 1월 도쿄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전(대륙별 예선전)이 열리기 때문에 배구계와 팬들의 우려가 더욱 크다.

여자배구 대표팀 주전 센터인 양효진(31세·190cm)은 지난 19일 IBK기업은행과 경기 직후 공식 기자회견에서 극심한 체력 저하에 대해 솔직하게 말했다.

그는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완전히 지쳤다"며 "블로킹 면에서 상대 공격수를 잘 따라다녀야 하는데, 무릎 상태도 좋지 않고 체력적으로 지쳐서 공격수를 몇 차례 놓쳤다"고 말했다.

팬들도 관련 기사 댓글창에서 한국배구연맹(KOVO)을 향한 원망을 쏟아내고 있다. 팬들은 "진짜 살인 일정", "올림픽 예선전도 있는데 꼭 이렇게 경기 일정을 짜야 했나"라며 양효진 선수의 발언에 공감과 안타까움을 표했다.

대표팀 주전 레프트인 이재영(24세·178cm)의 혹사 논란도 도마에 올랐다. 그는 지난 17일 흥국생명-GS칼텍스 경기에서 40득점을 쏟아부으며 맹활약했다. 팀 내 공격점유율이 46.7%에 달했다. 외국인 선수가 부상으로 빠진 가운데, 소위 '몰빵 배구'를 한 셈이다.

팬들은 이재영 선수의 활약에는 박수를 보냈지만, 소속팀 감독을 향해서는 많은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관련 기사 등에서 "감독이 이재영 선수를 혹사시키고 있다. 한 순간도 휴식을 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양효진과 이재영은 올 시즌 현재까지 팀 내에서 공격점유율이 가장 높다. 둘 다 외국인 선수보다도 공격점유율이 높다.

대표팀 선수 중에서 부상자도 발생했다. 이소영은 17일 흥국생명전에서 발 인대 파열 부상을 입어 복귀하는 데 6~7주가 소요될 것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사실상 올림픽 예선전 출전이 어렵게 됐다.

"정말 완전히 지쳤다"... V리그 살인적 일정, '탈진-부상' 경고등

배구계와 팬들은 내년 1월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전 세계의 배구 리그는 대표팀의 도쿄 올림픽 준비에 초점을 맞춰 일정을 운영하고 있다. 터키 리그, 태국 리그 등 도쿄 올림픽 본선 티켓을 아직 획득하지 못한 국가들은 장기간의 리그 중단하거나 연기했으며, 대표팀 훈련 기간 확보와 지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김연경이 활약하는 터키 리그는 도쿄 올림픽 유럽 지역 예선전을 앞두고 무려 50여 일 동안 리그를 중단한다. 태국 여자배구 리그와 중국 남자배구 리그는 아예 올림픽 예선전 이전에는 리그 자체를 열지 않는다. 리그 개막을 올림픽 예선전 이후로 대폭 연기해버렸기 때문이다.

태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이미 정예 멤버들을 전원 소집해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에서 전지훈련까지 했다.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을 대비한 대표팀 소집훈련 기간이 무려 3개월이 넘는다. 3개월 동안 오로지 대표팀 훈련과 한국 선수 분석에만 매진하고 있다. 반드시 한국을 꺾고, 사상 최초로 올림픽에 출전하겠다는 일념으로 '국가적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중국의 올림픽 준비도 상상을 초월한다. 이미 자국 리그를 2개월이나 단축해 버렸고, 대표팀 핵심 선수인 주팅의 소속팀까지 옮겨 버렸다. 그것만으로도 성에 차지 않았다. 오는 12월 초에 열리는 클럽 세계선수권 대회까지 '대표팀 훈련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대표팀 핵심 선수들을 2팀으로 몰아넣고 세계 최강 클럽 팀들과 대결을 통해 경기력과 실전 감각을 끌어올리겠다는 속셈이다.

그런 상황에서 한국 V리그가 살인적인 경기 일정 편성으로 대표팀 선수들에게 오히려 어려움을 준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더군다나 여자배구 대표팀의 소집훈련 기간도 고작 10일밖에 되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경쟁 상대인 태국 대표팀 선수들은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에 사용할 공인구를 가지고 훈련을 하고 있는 반면, 한국 대표팀 선수들은 현재 V리그에서 다른 공으로 경기를 하고 있다.

올림픽 예선 앞두고 빡빡한 경기 연속 '전 세계 유일'
 
 여자배구 대표팀, 이다영(왼쪽)-양효진 선수... 2019-2020시즌 V리그

여자배구 대표팀, 이다영(왼쪽)-양효진 선수... 2019-2020시즌 V리그 ⓒ 박진철 기자

 
올림픽 최종 예선전에서 한국과 태국이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할 것은 당연히 예상되는 상황이다. 경기가 팽팽해지면 결국 체력이 앞선 팀이 승리를 가져갈 가능성도 있다.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프로구단들 사이에도 우려와 함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여자배구 A구단 핵심 관계자는 기자에게 "배구협회와 KOVO가 잘 협의해서 대안을 마련해주면, 우리 구단은 100%가 아니라 120% 적극 협조할 수 있다"고 말했다.

B구단 핵심 관계자는 더 직설적이었다. 그는 21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배구협회와 KOVO가 현 상황을 심각하게 보고 정신을 좀 차려야 한다"며 "두 단체가 적극 협의해서 대안을 내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KOVO가 경기 일정을 무리하게 편성해서 팀과 선수들만 죽어난다"며 "올림픽 본선 티켓 따는 것이 여자배구 흥행에도 매우 중요한 사안인데, 지금이라도 대표팀 선수들을 한 라운드 통째로 빼주고 싶은 심정이다. 그렇게까지 하기에는 이미 늦어버렸고, 10일 정도만이라도 기존 일정보다 대표팀 선수를 더 일찍 소집할 필요가 있다. 그 정도는 구단 입장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대표팀 선수들이 지금처럼 빡빡한 경기를 다 뛰고 가면, 대표팀에서 훈련은 고사하고 체력 회복하는 데만 일주일이 가버릴 수도 있다"며 "그렇게 해서 3개월 동안 한국만 벼르고 준비한 태국을 어떻게 이긴다고 장담할 수 있냐"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대표팀 소집을 10일이라도 더 빨리 하는 게 도움이 된다면, 빨리 소집해야지. 이런 상태로 가서 선수들 지칠 대로 지치고, 추가 부상자까지 나오면 선수 본인, 소속팀, 대표팀 모두에게 큰 손해"라며 "올림픽 티켓 획득에 실패하면 그 책임을 누가 질 거며, 후폭풍을 어떻게 감당하려고 하나"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공인구 문제에 대해서도 "올림픽 예선전까지 바꾸면 바꾼 대로 쓰면 된다. 공인구 문제는 모든 구단이 똑같은 공을 사용하기 때문에 유불리도 없다"고 말했다.

프로구단 "대표팀 소집 앞당겨야, 모두에게 유리"... KOVO "고민 중"

사실 KOVO도 올림픽 예선전 기간에 V리그를 중단하기로 결정한 것은 대표팀이 올림픽 본선 티켓을 딸 수 있도록 지원하려는 목적이 핵심이었다.

그렇다면 올림픽 예선전 전까지만이라도 경기 일정을 각 팀마다 최소 4~5일 간격으로 유지하도록 배려를 했어야 했다. 그러나 올림픽 예선전을 앞두고 리그 경기 일정을 너무 빡빡하게 편성하는 바람에 오히려 시한폭탄을 안겨준 셈이 됐다.

실제로 현대건설은 지난달 31일부터 19일까지 무려 7경기를 연속해서 3일 간격으로 치렀다. 흥국생명도 7일부터 17일까지 11일 동안 3일 간격으로 4경기를 치렀다. KGC인삼공사도 21일부터 12월 3일까지 13일 동안 3일 간격으로 5경기를 치러야 한다. 나머지 팀들도 앞으로 똑같은 일정의 기간이 대기하고 있다. 말 그대로 '살인적인 강행군'이다. 전 세계 어디에도 이렇게 경기 일정을 편성한 리그는 없다. 

쏟아지는 우려에 대해 KOVO 핵심 관계자도 "걱정되고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여자배구가 인기 상승세를 계속 유지하고 흐름이 안 꺾일려면 1월 도쿄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에서 출전권을 따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배구협회와 여러 가지로 대안에 대해 얘기를 하면서 고민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KOVO 입장에서만 확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V리그 타이틀 스폰서, TV 중계권, 광고 등이 묶여 있다 보니 난감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무엇보다 대표팀 선수들이 부상을 당하지 않아야 하는데, 구단에서도 성적을 내려고 감독들이 모든 경기마다 무조건 베스트 멤버로만 전력투구하다 보니 부상자도 나오고, 선수의 체력도 계속 소모된다. 그래서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한민국배구협회도 태국 대표팀의 준비 상황과 한국 대표팀 선수들이 처한 상황이 갈수록 대비가 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배구협회 관계자는 "대표팀 입장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소집훈련을 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방안이 어디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여자배구 V리그 일정, 다른 종목 고려할 단계 넘어섰다"

V리그 중계를 하는 한 방송사 관계자는 KOVO의 무리한 경기 일정 편성에 대해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그는 "지금은 여자배구가 프로야구 등 다른 종목과 경쟁을 고려해서 일정 짜는 데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여자배구 시청률이 올해부터는 그런 한계를 뛰어넘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KOVO도 그런 부분에 대해 고민을 하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혹사 앞에 장사 없다. 이대로 계속 가다 보면, 결국 어느 한 순간에 탈이 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가뜩이나 선수 풀이 적은 판국에 대표팀 선수 한 명이라도 추가 부상자가 나오거나 극심한 체력 저하로 경기력이 떨어지면 모두에게 치명타다. 

탈이 나고 난 뒤에는 아무리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그러기 전에 소속팀의 각별한 선수 관리와 배려가 필요하고, 배구협회와 KOVO도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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