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울산 모비스와 전주 KCC와 2대 4 대형 트레이드가 처음 발표되었을 때만 해도 많은 이들은 모비스의 행보에 의구심을 드러냈다. KCC로 떠난 라건아와 이대성은 모비스의 원투펀치이자 리그 정상급 선수들이었다. 반대로 모비스가 영입한 김국찬, 박지훈, 리온 윌리엄스, 김세창 등은 상대적으로 무게감이 떨어졌다.

유재학 모비스 감독은 "장기적인 리빌딩과 세대 교체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여전히 유력한 우승후보로 거론되던 팀이 스스로 전력을 해체한 경우는 드물었기에 팬들의 의문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막강한 전력을 구축한 KCC가 '슈퍼팀'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은 반면, 모비스는 올 시즌 6강 진출도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도 나왔다.

그런데 불과 열흘 만에 양팀을 둘러싼 평가는 미묘하게 바뀌고 있다. '현재'를 잡았다고 생각했던 KCC가 주축 선수들의 조직력에 엇박자를 드러내며 1승 2패로 주춤한 반면, '미래'를 선택했다고 생각했던 모비스는 오히려 2승 2패로 선전하며 대조를 이루고 있다. 아직은 경기수가 적기에 속단은 이르지만, 적어도 '모비스가 일방적으로 손해본 트레이드'라는 인식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트레이드 직후만 해도 모비스는 2연패를 당하며 후유증을 드러내는 듯 했다. 첫 상대는 최하위 창원 LG였고, 그 다음에는 바로 트레이드 상대였던 KCC에게 일격을 당했다. 하지만 주축 선수들이 대거 바뀐 것을 감안하면 내용상으로는 나쁘지 않았다.

모비스는 17일 고양 오리온을 18점 차로 대파하며 트레이드 이후 첫 승을 신고했고 20일에는 4연승의 상승세를 이어가던 서울 삼성을 물리치고 2연승 행진으로 경기력이 점점 올라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상승세의 원동력은 두 가지다. 모비스 특유의 유기적인 조직력의 농구가 살아나고 있으며, 이적생들이 빠른 속도로 팀에 적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트레이드 전까지 모비스는 6승 7패로 디펜딩 챔피언이라는 명성에 걸맞지않게 저조한 출발을 기록 중이었다. 라건아와 이대성이 기록상으로는 여전히 좋은 활약을 보였지만 실제로는 기복이 심했고 두 선수의 활약에 따라 팀 경기력이 요동치는 경우가 많았다. 유재학 감독이 이대로는 올시즌 플레이오프에 가더라도 우승까지는 힘들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이유다.

트레이드 이후 가장 달라진 부분은 다양한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공수에 가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라건아와 이대성에게 의존하던 경기 운영의 비중을 다른 선수들이 고르게 분담하면서 모비스 특유의 조직력이 살아났다. 찬스에서 동료를 찾으며 머뭇거리던 모습이나, 노장들의 체력 문제로 경기 후반 가만히 서서 수비하는 모습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전통적으로 유재학 농구의 최대 강점은 수비력이었다. 올시즌 모비스는 75.5실점으로 리그 최소실점 1위를 기록중이다. 트레이드 이후만 놓고봐도 4경기에서 평균 74실점으로 이전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리온 윌리엄스가 라건아만큼의 화려함은 없지만 기복없고 건실한 빅맨인데다 트레이드 이후 국내 선수들의 활동량과 도움수비가 향상되며 오히려 수비 조직력으로는 지금이 상대를 더 힘들게 만드는 팀이 됐다.

특히 김국찬은 이적생이 맞나싶을만큼 모비스의 시스템에 빠른 속도로 녹아들었다. 모비스 이적 이후 출전시간이 30분대로 늘어나며 4경기에서 16.5점(시즌 평균 10.2점)의 맹활약으로 단숨에 팀의 주득점원 자리를 꿰찼다. 전창진 감독의 KCC에서 이미 모션오펜스에 적응한 것이 모비스에서도 공간 활용을 극대화하는데 큰 도움이 됐다. 이대성이 KCC 이적후 초반 적응에 애를 먹고 있는 모습과 대조적이다. 모비스 팬들 사이에서는 벌써 이대성의 빈 자리가 그립지 않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박지훈은 수비에서 전술적으로 상대 핵심 선수를 저지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지난 삼성전에서 상대의 강점인 김동욱-델로이 제임스의 장신 포워드 라인을 상대로 박지훈이 신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몸을 사리지않는 수비를 해준 덕에 경기 흐름을 바꿀 수 있었다. 여기에 자신의 올시즌 최다인 17점을 삼성전에서 기록하는 등,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공격에서도 8.3점(시즌 평균 4.9점)으로 KCC 시절보다 더 자신감있는 활약을 선보이고 있다.
 
 지난 12일 전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9-2020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전주 KCC 이지스와 원주 DB 프로미의 경기. KCC 라건아가 공을 사수하고 하고 있다.

지난 12일 전주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9-2020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전주 KCC 이지스와 원주 DB 프로미의 경기. KCC 라건아가 공을 사수하고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밖에도 라건아가 있던 시절 미미했던 존재감으로 퇴출설에 시달리던 외국인 선수 자코리 윌리엄스, 양동근의 백업 가드 역할을 수행하던 서명진 등이 출전시간과 비중이 늘어나자 한결 쏠쏠한 활약을 해주고 있다. 모비스의 심장인 양동근은 어느덧 백전노장이 되었음에도 중요한 순간마다 코트위에서 한방을 터뜨리며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특정 선수에 의존하지 않고 쿼터별로 투입되는 선수들마다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해내고, 모두가 부지런히 움직이며 공간을 만들어내는 움직임은 유재학 감독이 모비스에 갓 부임하여 왕조의 초석을 쌓아가던 2000년대 중반을 연상시킨다.

올시즌 성적에 대한 부담이 크게 없어졌다는 것도 모비스의 상승세에 보이지않는 원동력이 됐다고 할 수 있다. 라건아와 이대성을 보유하며 올시즌 늦어도 다음 시즌까지 우승에 대한 압박감이 크게 높아진 KCC와의 결정적인 차이다. 그런데 정작 모비스는 오히려 빠른 속도로 팀을 정비하며 올시즌 중위권에서 6강 이상을 충분히 노려볼만한 다크호스로 거듭나고 있다. 우승에 대한 중압감을 덜어내며 젊은 선수들에게 과감하게 기회를 주고 전술적인 실험을 시도할수도 있으니, 선수들도 코트 위에서 눈치보지않고 더 자신감넘치는 플레이를 펼치게 된다.

모비스는 22일 선두 서울 SK를 상대한다. 리그 1위팀이자 최다 득점(83.9점)팀이기도 한 SK와 '창과 방패의 대결'은 모비스의 진정한 경쟁력을 가늠할 수 있는 무대가 될 전망이다. 트레이드 전인 지난 2일 시즌 첫 대결에서는 SK가 91-86으로 승리한 바 있다. 앞으로 이 대형 트레이드에 대한 재평가는 어쩌면 이제부터가 진정한 시작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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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 김국찬 슈퍼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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