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청부사' 조제 모리뉴 감독은 토트넘 홋스퍼에서 명예회복에 성공할 수 있을까.

모리뉴 감독은 지난 20일 성적부진으로 경질된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의 후임으로 토트넘의 지휘봉을 잡았다. 지난해 12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사령탑에서 물러난 이후 약 1년 만의 EPL 복귀다.

모리뉴 감독은 포르투갈 출신의 세계적 명장이다. 첼시, 포르투, 레알 마드리드, 인터 밀란, 맨유 등 유럽의 명문 클럽을 두루 거치며 지도한 모든 팀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철저한 '실리축구'로 성적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독보적이다. 독설과 달변을 넘나드는 입담과 쇼맨십을 갖춰서 스타성도 풍부한 감독으로 꼽힌다.

모리뉴 감독은 2004년 포르투의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끈 후 첼시 사령탑으로 부임하며 프리미어리그 무대에 첫발을 내딛었다. 당시만 해도 EPL에서 검증되지 않은 , 40대 초반의 젊은 감독을 의구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언론 앞에서 "나는 유럽 챔피언이다. 어디에나 있는 시시한 감독이 아니다. 나는 내가 특별한 존재(스페셜 원)라고 생각한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 모습은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가장 거만하고도 독창적인 출사표로 지금까지 회자된다.

그 명성에 걸맞게 모리뉴 감독은 '스페셜'한 역사를 써내려갔다. 유럽 3대리그로 꼽히는 EPL, 세리에A(이탈리아), 프리메라리가(스페인)에서 모두 정규리그 우승컵을 거머쥔 최초의 감독이 되었고, UEFA 챔피언스리그(2004년 포르투, 2010년 인터밀란)에서도 두 번이나 정상에 올랐다. 아직 현역 감독임에도 유럽축구 연맹이 선정한 '축구 역사상 최고의 감독 10인'에 이름을 올려 라누스 미헬스, 알렉스 퍼거슨, 요한 크루이프 등 전설적인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도 했다.

전임 포체티노 감독은 5년간 토트넘을 이끌며 수많은 성공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우승 트로피가 하나도 없다는 것은 옥에 티였다. 출전 가능했던 유럽의 모든 대회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린 모리뉴 감독은 토트넘이 포체티노 감독에게서 느낀 아쉬움을 메워줄 수 있는 대안이다. 바꿔서 말하면 토트넘은 모리뉴 감독에게 빅리그에서의 명예회복을 노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다. 



사실 모리뉴와 토트넘의 만남은 여러모로 이색적인 조합이다. 모리뉴 감독은 지도자 경력 초기를 제외하면 항상 정상을 노릴 만한 전력에 탄탄한 재정적 지원까지 가능한 빅클럽만 골라 이끌어왔다. 하지만 토트넘은 최근 몇 년간 EPL 상위권으로 도약하기는 했지만 냉정히 말해 리버풀이나 맨시티같은 전통의 명문과는 거리가 있다. 지난 시즌 창단 후 처음으로 챔피언스리그 결승까지 진출했던 토트넘은 올시즌에는 프리미어리그에서 3승 5무 4패 승점 14로 20개 팀 중 불과 14위에 그치고 있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토트넘의 위상은 모리뉴 정도의 감독이 맡기에는 '급'이 안 맞는다는 이야기가 나왔을 것이다. 얼마 전까지 레알 마드리드 복귀설이나 뮌헨-PSG행도 거론될 만큼 유럽 굴지의 구단들과도 루머가 무성했던 모리뉴 감독이 의외로 토트넘행을 결정하자 축구계가 일제히 놀란 이유다.

심지어 시즌중 모리뉴가 소방수로 투입된 것은 지도자 경력 초창기인 2001-02시즌 중 포르투갈 리그에서 중소클럽이던 UD 레이리아를 떠나 후반기 FC 포르투로 자리를 옮긴 이후로는 무려 18년만이다. 어떻게 보면 최근 몇 년간 모리뉴 감독의 위상이 많이 떨어진 게 사실이다. 그래서 토트넘에서의 재기가 더 절실해보이기도 한다.

모리뉴 감독은 부임이후 주로 1~2년 이내에 최고의 성적을 기록했고, 한 팀에서 3년 이상 오래 머문 경우가 드물다. 그는 당장 성적을 만들어내는 감독이지, 시간을 들여 어린 선수를 발굴-육성하고 팀을 리빌딩하는데 능하다고 보기 어렵다. 

반면 토트넘은 EPL 상위권 클럽 중엔 손에 꼽히는 짠돌이 구단의 이미지가 강하다. 포체티노 감독 말기에 구단과 갈등을 빚고 선수단 장악력이 떨어진 가장 큰 이유도, 구단이 몸값이 높아진 주축 선수들을 충분히 대우하거나, 외부에서 대형 선수들을 영입하는데 소극적이었던 것과 무관하지 않다. 모리뉴 감독이 왔다고 해서 다가오는 1월 이적시장에서 다니엘 레비 회장이 대대적인 선수 보강에 나설 것인지도 미지수다.

물론 토트넘의 현재 선수단은 여전히 젊고 경쟁력이 있다. 손흥민을 비롯하여 해리 케인, 크리스티안 에릭센, 델레 알리 등이 포진한 공격진은 최근 다소 기복 있는 모습을 보이지만 분명히 EPL 최정상급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선수층이 두터운 편은 아닌데다 수비는 특히 약한 편이다. 안정적인 수비를 바탕으로 하는 실리축구를 선호하는 모리뉴의 스타일을 만족시킬 만한 스쿼드는 아니다.



천하의 모리뉴 감독이라도 올시즌 당장 토트넘을 우승권에 올려놓기엔 무리가 있다.  리그에서는 다음 시즌 유럽클럽대항전(챔스-유로파) 출전권이 가능한 순위권까지 팀을 반등시키는 것, 또한 단기전인 FA컵이나 챔피언스리그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올리는 것이 모리뉴의 현실적인 목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모리뉴 감독에게는 토트넘 선수단의 지지를 얼마나 끌어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모리뉴 감독이 최근 몇 년간 레알-첼시-맨유에서 불명예스럽게 물러난 데는 선수단과의 불화가 큰 몫을 차지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첼시 1기 시절이나 인터밀란 시절까지만 해도 선수단과의 소통이 오히려 모리뉴 감독의 장점으로 꼽혔다는 점이다. 직설적인 성격의 모리뉴 감독은 당근과 채찍을 곁들여 선수단을 강하게 길들이는 스타일이다.

감독의 권위와 일사분란한 라커룸 통제를 중시하는 모리뉴 감독의 리더십은 미디어와 SNS가 더욱 발달한 지금의 시대에는 뒤떨어진 것 아니냐는 우려를 자아낸다. 특히 첼시 2기나 맨유 시절 막바지에는 팀 분위기가 최악이었다. 폴 포그바, 이케르 카시야스, 에당 아자르 등 라커룸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간판 스타 선수들과 잇달아 등을 돌리게 되면서 모리뉴 감독의 입지도 위축됐다.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확실한 것은 EPL에 확실한 볼거리를 보장하는 감독이 또 한 명 돌아왔다는 사실이다. 모리뉴 감독만큼 스토리텔링과 화제성이 풍부한 감독은 세계적으로도 몇 명 되지 않는다. 현대축구를 이끌어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위르겐 클롭-호셉 과르디올라 감독과의 지략대결은 물론, 모리뉴를 팽했던 친정인 첼시-맨유와의 재회도 벌써부터 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한 모리뉴 감독이 첼시 시절부터 유독 강했던 아스널(엄밀히 말하면 아르센 벵거에게 강했던)은 토트넘의 '북런던 더비' 최대 라이벌이기도 하다. 또한 국내 축구팬들에게는 한국축구의 간판스타 손흥민과의 궁합만으로도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모리뉴 감독은 과거 자신과 앙숙관계이던 아르센 벵거 전 아스널 감독과 설전을 주고받다가 '실패 전문가'라고 조롱한 일이 있다. 벵거가 팀을 장기간 이끌고도 오랫동안 우승을 기록하지 못했던 것을 비꼰 것이다.

그런데 모리뉴 감독이 최근 몇 년간 빅클럽에서 연달아 경질되는 부침을 겪으면서 국내 팬들 사이에서는 당시의 발언을 패러디한 '실패셜 원'이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과연 모리뉴는 지도자 인생에서 '스페셜 원'을 유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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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뉴손흥민 토트넘홋스퍼 스페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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