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입장문을 발표하고 집단으로 사임한 전주영화제 김영진, 이상용, 장병원 프로그래머

19일 입장문을 발표하고 집단으로 사임한 전주영화제 김영진, 이상용, 장병원 프로그래머ⓒ 전주영화제

 
'지난 7년 간 전주국제영화제가 내외의 신뢰 속에서 성장해 온 것은 자율성과 독립성을 확고히 보장했기 때문입니다. 저희들은 김영진 수석 프로그래머에 대한 이사회의 반대명분에 납득할 만한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사회의 결정이 전주국제영화제를 일구어 온 지난 7년의 시간에 대한 온당한 평가 없이 영화제의 자율성을 침해한 것으로 유감을 표합니다.'

 
지난 19일 사임을 알린 전주영화제 프로그래머 3인이 발표한 입장문의 핵심은 이사회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전주영화제를 실질적으로 좌우하는 이사회에 공개적인 비판을 가한 것이다(관련기사 : 전주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3인 집단 사직 파문).
 
전주영화제 프로그래머 집단 사직에 대한 파장이 커지며 영화계가 술렁이고 있는 가운데, 예전 전주영화제에서 일했던 관계자들은 "결국 이사회의 문제가 드러난 것"이라며, "전주영화제가 겪었던 각종 파행과 논란의 핵심에는 이사회가 자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주영화제에서 일했던 영화계 한 관계자는 "예전 프로그래머 해임 사태와 이후 역량없는 위원장이 내부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등 모든 논란의 원인을 따지고 들어가면 이사회가 나오게 된다"고 말했다. 각종 논란의 바탕이면서도 아무 책임도 안 지고 오랜시간 계속 이사직을 유지한 채 실권을 행사해오고 있다는 비판이다.
 
전주영화제 내부 관계자들도 이번 프로그래머 집단 사임은 이사회가 촉발시켰다고 봐야 한다는 시각을 드러냈다. 이사회가 분명한 이유도 없이 영화제의 추천을 사실상 거부했기 때문이다.
 
내부 추천 무시 외부인사만 찾아
 
 지난 5월 11일 전주영화제 결산 기자회견에서 영화제 성과를 설명하고 있는 이충직 집행위원장과 김영진 수석 프로그래머

지난 5월 11일 전주영화제 결산 기자회견에서 영화제 성과를 설명하고 있는 이충직 집행위원장과 김영진 수석 프로그래머ⓒ 전주영화제

 
전주영화제의 한 이사는 20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이충직 전 위원장이 그만두면서 김영진 수석프로그래머를 추천을 했지만 그렇다고 결정되는 게 아니지 않냐"며 "이사회의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사회를 거치지 않고 전주영화제 내부에서 추천한 것을 이사회가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였다.
 
그는 "김영진 프로그래머가 훌륭하게 해 왔으나 프로그래머와 집행위원장은 역할이 다르다"라며 "선례가 될 경우 다른 프로그래머들도 집행위원장을 하겠다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사실상 전주영화제가 추천한 김영진 프로그래머는 집행위원장 고려 대상이 아니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이어 이사들이 생각하는 집행위원장 자격 기준을 묻자 "각자 생각이 있겠지만 그것을 따로 논의하거나 공개적으로 이야기 해 본 적은 없다"고 말했다.
 
복수의 전주영화제 관계자들은 "이사들은 내부 추천 말고 외부에서도 찾아보자고 했고, 그래서 후보에 올라온 외부인사들에게 집행위원장 의사 타진을 했으나 다들 고사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사회에 영화제 측의 내부 추천을 받아들이자고 설득도 했으나, 다시 외부인사를 알아보자고 해 대상자를 물색 중"이라며 "11월 안으로 선정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은 또한 "이사회가 영화제의 추천에 대해 절차적 문제를 지적했다"며 불편한 기운이 엿보인 것은 맞다고 전했다. 이어 "정관상 조직위원장(전주시장)이 추천하고 이사회에서 결정하는 거라, 영화제 측에서 추천한 것에 대해 유감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영화제는 전주시장이 마땅한 인물을 추천해보라고 제안해서 내부 논의를 거쳐 김영진 프로그래머를 추천했던 것이었다"고 설명했다. 김 프로그래머는 처음에는 고사했으나 영화제 내부의 설득에 이를 받아들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3인의 프로그래머들이 입장문에서 "결국 이사회의 반대 명분에 납득할만한 이유가 없다"고 한 것은 이런 상황에 대한 항의로 해석된다. 이사들은 프로그래머가 집행위원장이 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인데, 부산영화제의 경우 현재 이사장과 집행위원장 모두 영화제 초기 한국영화와 월드영화프로그래머로 시작했다.
 
영화인보다는 지역인사들로 편중
 
 지난  5월 11일 전주영화제 폐막 리셉션에서 영화제 성공을 축하하고 있는 김승수 조직위원장과 이충직 집행위원장, 조직위원(이사) 및 영화제 관계자들

지난 5월 11일 전주영화제 폐막 리셉션에서 영화제 성공을 축하하고 있는 김승수 조직위원장과 이충직 집행위원장, 조직위원(이사) 및 영화제 관계자들ⓒ 전주영화제

 
현재 전주영화제 이사회는 철저히 지역 중심인사들로 구성돼 있다. 지역 언론계와 전주시의원, 전주시 공무원, 지역 독립영화협회 대표 등이 이사를 맡고 있다. 전주영화제 집행위원장과 부집행위원장은 당연직 이사다.
 
전주영화제 안팎에서는 이 구성 자체가 상당히 문제라는 비판이 나온다. 이사진 중 매번 빠짐없이 이사회에 참석하는 서너 명이 사실상 실질적인 결정을 주도한다는데, 일각에선 이들이 영화 전문가가 아니라는 사실이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 이사의 경우는 초기 운영위원으로 시작해 조직위원을 거쳐 지금까지 이사를 맡고 있을 만큼, 보이지 않는 영화제의 권력이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이는 이사회 다수가 영화인이고, 지역 인사들은 일부만 참여하는 부산영화제 상황과 비교해봤을 때 차이가 크다. 전주영화제처럼 지역 인사들이 다수를 차지할 경우, 영화인들의 목소리가 수렴되기보다는 지역인사들의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영화계의 뜻을 수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어렵다. 
 
지난 2012년 유운성 프로그래머 해임 사태 때는 당시 집행위원장이 "지역 언론이 똘똘 뭉쳐 '(유운성을) 그냥 둬서는 안 된다'했다"라고 밝히며 현재 이사로 있는 당시 영화제 조직위원을 언급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발언 당사자로 지목된 이사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데 너무 당황스러웠고, 당시 집행위원장에게 강력하게 항의해 사과를 받았다"고 밝혔다.
 
수 년 전 사무국장과 팀장들의 연이은 사임 논란과 영화제 집행위원장 외에 다른 행사 책임까지 맡았다가 결국 물러난 고석만 전 집행위원장을 영입한 데 역할을 한 것도 현재 이사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고석만 전 집행위원장 재임기간 내내 논란이 끊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사진들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았다.
 
이번 프로그래머 3인의 집단 사직과 관련, 지난 7년의 성과를 잘 이어가기 위한 연속성을 고민했던 영화제 측의 내부 논의의 결과를 이사회가 걷어차면서 혼란스럽게 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에 대해 위에서 언급된 전주영화제 한 이사는 '이사들은 책임을 안 지냐?'는 질문에 "개인적인 의견을 말할 수없고, 현재 집행위원장 논의가 진행 중이기에 어떤 언급을 하는 것도 조심스럽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이어 "집행위원장을 먼저 선임하고 프로그래머 문제는 그 다음이었는데, 그런 이야기들이 밖으로 새어 나가다보니 프로그래머들이 집단행동을 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집행위원장 선임보다는 이사진 사퇴가 우선
 
 지난 5월 열렸던 20회 전주국제영화제에 몰린 관객들

지난 5월 열렸던 20회 전주국제영화제에 몰린 관객들ⓒ 전주영화제

 
영화계 인사들은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해야 할 시점에 전주영화제가 흔들리게 된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전양준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집행위원장이 공석인 상황 자체가 길어져서 걱정했는데, 프로그래머 집단사퇴라는 상황이 벌어지니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국내 영화제의 한 프로그래머는 "영화제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 속에서 불안정하게 일하는 상황이다보니 안타까운 사태가 발생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영화계 인사들은 소셜미디어에 "지역 토호 세력에 의해 영화제가 망가지고 있다"라며 비판하고 나서기도 했다. 
 
현재 상황에서는 누군가가 집행위원장으로 선임돼도 부담이 클 수밖에 없고, 영화인들의 환영을 받기 힘들 것이라는 게 영화계의 반응이다. 영화인들의 뜻을 무시한 채 프로그래머 집단사퇴 파행을 야기시킨 이사들이 오롯이 책임을 지고 물러난 후, 새 이사진을 구성해서 집행위원장 문제를 재논의해야 파장이 최소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사들 중 일부는 사퇴 의사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주영화제의 한 관계자는 "이사 중 한 분은 최근 '더 이상 이사회에 나오지 않겠다'며 사퇴 뜻을 밝혔다"고 전했다. 다만 "공식 절차를 밟은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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