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에게> 포스터

<윤희에게> 포스터ⓒ (주)리틀빅픽처스

 
일본 오타루에서 날아든 낯선 편지 한 통을 발견하던 날부터였다. 딸 새봄(김소혜)은 엄마 윤희(김희애)가 엄마이기 전에는 어떤 사람이었을까를 탐문하기 시작한다. 아빠에게 묻자, 엄마는 "사람을 외롭게 하는" 사람이라는 대답을 듣는다. 삼촌을 찾아가 보지만, 신통한 대답이 나올 리 없다. 가부장의 수혜자인 삼촌에게 여동생 윤희는 통제 관리해야 하는 대상이었을 테니, 새봄이 궁금해하는 엄마의 '진짜' 인생에 대해 아는 게 있을 리 없다.
 
시답잖은 어른들 틈에서 철이 들지 않을 수 없었던 <미성년>의 주리와 윤아처럼, 새봄 역시 담담하게 미성년에서 성년으로 넘어서고 있다. 제 딴엔, 부모가 이혼할 때 외로워 보였던 엄마에게 지지대가 돼주고자 엄마를 택해 살았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딸인 자신은 '엄마에게 짐 같은 존재였나' 회한한다. 살맛이라곤 손톱 끝만큼도 없는 얼굴을 하며 살고 있는 엄마가 딱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할 터다. 곧 엄마 곁을 떠날지도 모르는 새봄은 윤희에게 살맛 나는 삶을 회복시킬 궁리를 내보기로 한다.

새봄에겐 취미가 있다. 디지털카메라도 아닌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것. 그 카메라는 윤희가 대학을 가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고 안타까운 나머지 할머니(윤희의 엄마)가 사 준 선물이다. 그러니까 일종의 대속물(代贖物)인 셈이다. 카메라 따위가 죄를 사하는 기능이야 하지도 못했겠지만, 이제 쓸모 없어졌다고 버리기도 쉽지 않을 물건일 터다. 그 오래된 엄마의 필름 카메라로 피사체를 발견하고 응시하며 셔터를 누르는 새봄의 모습에서 관객은, 엄마의 대속물로 그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줄 전령사의 기운을 감지한다.
 
윤희를 사랑했던 사람인 쥰(나카무라 유코)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질 때" 윤희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 편지를 읽는 쥰의 내레이션으로, 둘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관객에게 스며든다.

진실했지만 두고 떠나야만 했던 시간들이 어떤 삶에 있고, 이로 인해 내내 힘들 수 있는 인생도 있다. 먼 땅을 찾아갈 만큼 그리운 사람이어도 그가 살고 있는 집 문을 선뜻 두드리지 못하고 서성대며 머뭇거리는 인생이, 집 문을 열고 나오는 그를 차마 마주하지 못하고 멀어지는 뒷모습을 숨어 훔쳐보며 조바심을 태우는 인생이 있다.

이런 미적거림은 윤희의 옛 시간들, 설레고 아름다웠지만 결국 슬프게 파국을 맞고 만 순간들을 복기시킨다. 그래서 윤희의 오타루행은 그리운 쥰을 만나러 나선 것인 동시에, 윤희의 잃어버린 시절과 부정당했던 진실을 회복하기 위한 여정이기도 하다. 폭설로 하얗게 뒤덮인 오타루의 풍경은 그렇게 차갑고 고요하게 살아왔던 두 연인의 삶에 대한 강렬한 메타포다.
 
새봄과 윤희, 딸과 엄마 
  
 영화 <윤희에게> 스틸컷

영화 <윤희에게> 스틸컷ⓒ (주)리틀빅픽처스

 
일본에서 새봄은 오타루 여행의 진짜 목적인 매파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실행한다. 남자친구인 경수(성유빈)가 새봄과 공조한다는 설정은 엉뚱하지만 귀여움을 자아낸다. 경수는 여친 새봄을 제멋대로 휘두르려 하지 않는다. 내키지 않는데 즐겁게 해주겠다며 억지 데이트를 강요하지도, 대학 진학을 위해 '인 서울'하는 새봄에게 헤어짐의 아쉬움을 가장한 투덜댐으로 부담을 주지도 않는다. 쿨하다. 이토록 멋진 새봄에게 제격인 남친이다.
 
흔히 엄마와 딸의 이야기는 켜켜이 쌓인 애증의 서사로 재현되곤 하지만, <윤희에게>엔 이러한 피로감이 없다. 불행한 엄마의 삶은 뭐라 하지 않아도 딸에게 빚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딸은 "교육받지 못했고 가난한 어머니를 극복하거나 혹은 대신해 자신의 길을 걸어가 마침내 다른 세계에 진입"(백수린, <친애하고 친애하는>)하는 모습으로, 그 채무를 상쇄하는 것으로 재현되곤 한다. 하지만 <윤희에게>에서 딸 새봄은 엄마의 불행에 대한 부담을 자신이 잘 되는 것으로 섣불리 퉁치려 하지 않는다. 대신 새봄은 웃지 않는 엄마가 왜 웃음을 잃어버리게 되었는지 그 연원을 파고든다.
 
엄마가 언제부터 웃지 않는 사람이었을까를 추적하는 새봄의 호기심은 새로운 버전의 효심을 제시한다. 자식이 성공한 모습으로 엄마의 불행을 보상하는 일이 실상 얼마나 허무하고 어리석은 일인가. 새봄은 윤희가 스스로 봉인한 과거를 열어젖혀 무엇을 감추어두었는지 다시 끄집어내도록 고무한다. 엄마의 삶을 존중하는 딸이 보낼 수 있는 가장 갸륵한 진심이 아닐까. 새봄은 엄마의 과거를 파헤치다 맞닥뜨린 비밀의 정원에 살며시 틈입해, 어딘가 두고 잊고 있는 엄마의 비밀 코드로 윤희를 무사히 인도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여행 중 윤희가, 새봄이 담배를 피운다는 것, 그리고 경수와 사귀고 있다는 사실까지 폭로하자, 다분히 맹랑한 딸 새봄은 "엄마, 미안"으로 가볍게 응수한다. 오히려 여행 중 발각된 행운에 놀라며 안도한다. 이런 방식이 엄마의 방식임을, 항상 웃지는 못했지만 늘 곁을 지키고 서있었던 엄마의 사랑임을 확인한다. 새봄과 윤희의 모녀관계는 지난 시절의 방식, 격렬히 갈등하고 죽기 살기로 싸우다 눈물 콧물 짜내며 화해하는, 을 전혀 답습하지 않는다. 덜 다정하고 덜 친근하고 덜 집착하면서도, 이들은 상당히 '의리' 있는 모녀관계를 유지한다.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되는 질퍽대는 '모성'이나 누추한 '효심' 따위로 최루를 자아내지 않으면서, 영화 <윤희에게>는 그 본령에 충만히 도달한다.
 
윤희는 미루어두었던 과제를 마친 듯이 홀가분하다. 늘 처음 내딛는 한 걸음이 지독히 망설여지는 것이지, 문지방을 넘어선 첫걸음은 내처 큰 길로 나아가지 않던가. 오빠에게 이별을 통고하고 문밖을 나서는 윤희, 어디서 본 듯한 모습이다. 아, 저 윤희는 아득한 옛 드라마 <아들과 딸>에서 배우 김희애가 연기했던 '후남'이지 않은가. 딸이라 차별받던 딸 후남은 악착같이 살아내며 그 오래전 이미 가부장의 집을 부수려 했다. 네가 뭐를 알아서 하겠냐는 오빠의 무시에, 이 도시를 떠나겠다고 선언하는 윤희는 이미 가부장의 집과 차별과 배제의 도시를 훌쩍 벗어나 있다.
 
새봄의 은밀한 조력이 아니었다면 윤희는 오타루로 가지 않았을까? 아닐 것이다. 몇 번을 망설이고라도 결국엔 자기를 닮은 도시 오타루로 떠났을 것이고, 윤희와 쥰은 필연이든 우연이든 조우했을 것이다. 그 만남이 다시 하나 된 시작을 알리는 서막이 아니면 어떠한가. 둘이 다른 길을 한 마음으로 응원하며 걸을 수 있다면, 이 또한 아름답지 아니한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윤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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