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룸메이트> 포스터

<어쩌다 룸메이트> 포스터ⓒ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류가 1994년 발표한 소설에서 처음 등장한 타임 슬립(time slip)이라는 표현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자연스럽게 오고가는 시간 여행을 의미하는 단어다. 한때 판타지나 SF 장르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타임 슬립은 최근 로맨스 장르에서 그 위력을 과시 중이다.

타임 슬립과 로맨스의 장르적 궁합이 좋은 이유는 로맨스가 지닌 아련함과 애절함이 타임 슬립이 지닌 시간 이동을 통해 더욱 극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로맨스 영화중에서도 <동감>, <시월애> 등의 작품들이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통해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감동을 선사한 바 있다.

중국 영화 <어쩌다 룸메이트>는 이런 아이디어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바로 과거와 현재의 공간이 합쳐진 것이다. 2018년을 살아가고 있는 여자 소초(동려아)와 1999년을 사는 남자 육명(뇌가음)은 어느 날 시공간이 꼬이면서 동거를 시작하게 된다. 다른 시대 같은 집에 살던 두 사람의 집이 하나로 합쳐지게 된 것이다.

규칙은 간단하다. 소초가 문을 열면 문 밖의 세계는 2018년이고 육명이 열면 1999년이다. 밖에서의 규칙은 미래 또는 과거의 자신을 만나서는 안 된다는 점과 운명을 거대하게 바꾸려는 행동, 이를 테면 백만장자가 되기 위해 복권 당첨 번호를 미리 알고 과거로 가면 안 된다는 것 정도다.
 
 <어쩌다 룸메이트> 스틸컷

<어쩌다 룸메이트> 스틸컷ⓒ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단순한 플롯을 흥미롭게 만드는 건 기존 타입 슬립 영화들과는 달리 두 주인공을 한 공간에 밀어 넣은 설정이다. 말도 안 되는 동거를 시작하게 된 소초와 육명은 처음부터 티격태격한다. 두 사람의 캐릭터는 정 반대다. 돈 욕심이 많은 소초는 백만장자를 만나 인생 역전을 하는 게 꿈이다. 반면 부동산 거물이 꿈이지만 어리바리한 육명은 순진한 구석이 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시대의 문물, 이를 테면 카세트테이프와 로봇청소기 같은 존재에 시선을 빼앗긴다. 소초에게 카세트테이프는 과거에 대한 추억을, 육명에게 로봇청소기는 미래를 향한 꿈을 상징한다.

또한 소초는 육명을 통해 과거로 갈 수 있게 되면서 어린 시절 죽은 아버지를 회상하게 된다. 소초에게 아버지가 중요한 인물인 이유는 그녀가 돈을 밝히게 된 계기에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죽음이 있기 때문이다. 반면 육명은 소초를 통해 미래의 자신을 그려볼 수 있다. 소초가 문을 열 때 육명은 2018년의 미래로 갈 수 있고 미래에서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소초는 미래의 사람이지만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육명은 과거의 사람이지만 미래만을 바라보고 있다. 이런 상반된 두 사람의 캐릭터는 예상치 못한 매력을 선사하는 건 물론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을 통해 진한 로맨스를 보여준다.
 
 <어쩌다 룸메이트> 스틸컷

<어쩌다 룸메이트> 스틸컷ⓒ 씨네그루(주)키다리이엔티



여기에 중화권 영화가 지닌 사랑을 향한 헌신은 마법과도 같은 향신료라 할 수 있다. 육명은 1990년대 홍콩 영화에서 볼 법한 순애보적인 인물이다. 사랑을 위해 뭐든지 포기할 수 있는 그의 모습은 조금은 촌스럽게 느껴지지만 그 촌스러움이 싫지 않게 다가온다. 소초는 물질적인 욕구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는 점에서 다소 속물처럼 비춰질 수 있으나 그런 성향의 소초가 육명을 자신보다 먼저 생각하는 지점은 반전 매력으로 다가와 애절함을 더한다.

최근 로맨스물의 대세가 현실 공감이라면 중화권의 로맨스는 아직은 판타지에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사랑을 위한 희생과 헌신이 눈물샘을 자극하는 포인트로 작용한다. 하지만 판타지의 감성을 현대적인 장르적 색채에 맞춰 풀어내면 색다른 매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인셉션>의 팽이 장면에 대한 오마주나 두 주인공이 VR을 통해 할리우드 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환상을 보여주는 장면은 현대적인 감각에 맞춘 센스라 할 수 있다.

<어쩌다 룸메이트>는 요즘 극장가에 불고 있는 중화권 로맨스 열풍에 새로운 결을 더해줄 작품이다. 풋풋한 청춘 로맨스와 최루성 짙은 신파에 이어 타임 슬립 로맨틱 코미디는 색다른 재료로 신선한 맛을 보여준다. 로맨스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에게는 세련된 유머를, 1990년대를 추억하는 관객들에겐 홍콩 로맨스 영화의 짙은 감성을 전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김준모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 씨네리와인드에도 게재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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