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이 글은 영화의 주요 내용과 결말을 알 수 있는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신의 한 수: 귀수편>   메인 포스터

▲ <신의 한 수: 귀수편> 메인 포스터ⓒ CJ엔터테인먼트


<신의 한수: 귀수편>은 전작 <신의 한수>의 스핀오프 영화입니다. 스핀오프란 오리지널 영화나 드라마를 바탕으로 새롭게 파생되어 나온 작품을 말합니다. 후속작이 아닌 스핀오프로 돌아온 만큼, 이번 귀수편은 전작과의 스토리 연관성이 없습니다. 그 말은 즉 전작이나 원작 만화 등 기존의 형식에 귀속되지 않고, 뻔한 클리셰를 사용하지 않을 수 있던 여지가 충분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귀수편은 한국영화의 허술한 개연성과 함께 나쁜 클리셰를 답습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오락영화는 내용을 해부해서 이러쿵저러쿵 따져드는 게 무의미하기도 합니다. 가볍게 즐기다가 극장을 나가면 잊어버려도 될 정도의 내용이니까요. 그러나 귀수편은 그저 가벼운 웃음으로 넘길 수 없는 클리셰가 난무하였으며, 그 와중에 개연성마저 부자연스러웠습니다.  

도구적으로 활용되는 여성 인물

<신의 한 수: 귀수편>은 전형적인 남성 중심 서사의 영화입니다. 물론 이 점이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남성 중심 서사의 영화라도 그것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분위기 등과 어울린다면, 표현방식의 하나로써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귀수편의 문제는, 남성중심 서사가 가지고 있는 '나쁜 부분'들을 그대로 답습한다는 데 있습니다.

젠더 이슈가 큰 화두가 되면서 몇 년 사이 영화계에서 가장 많이 지적 받았던 부분은 '대부분의 한국영화가 남성 중심 서사'라는 점과, '남성 중심 서사가 여성 인물을 활용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후자의 예는 여성 인물이 극중 남성 인물의 복수, 각성 등 갈등 촉발을 위한 수단으로 존재하거나, 남성인물의 성격, 특징(잔인함, 다정함 등)을 부각하기 위한 장치로 등장하는 것 등입니다. 꽤 최근까지 남성 중심 범죄 스릴러에서 피해자는 모두 여성이었으며 그 과정에서 피해 여성은, 그 여성을 죽인 남성을 묘사하는(잔인한 사람, 사이코패스 등등) 도구로써 존재했습니다.

결국 여성 인물은 남성 인물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단편적인 역할만 수행한 것이지요. 그리고 이는 자연스레 '남성 중심 서사가 너무 많다'에 대한 지적으로 이어집니다. 남성 중심 서사에서는 여성이 필연적으로 도구화 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신의 한 수: 귀수편>  스틸 이미지

▲ <신의 한 수: 귀수편> 스틸 이미지ⓒ CJ엔터테인먼트


<신의 한 수: 귀수편>은 이러한 비판에 정확하게 일치하는 영화였습니다. 두 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여성 인물의 등장은 단 세 명('귀수'의 누나 '수연', '홍마담', '황덕용'의 딸 '황선희 2단')뿐이었으며, 그마저 남성 중심 서사에서 지적 받아온 남성 인물을 위한 도구로, 수단으로 존재하였습니다.

귀수(권상우)의 누나 수연(신수연)은 영화 속에서 '돌봄과 희생'이라는 전형적인 여성상을 보여줍니다. 동생을 위해 소녀 가장으로 황덕용(정인겸)의 집에서 돈을 벌다, 동생의 미래를 빌미로 접근한 황덕용에게 성폭행을 당합니다. 그리고 이는 주인공 귀수가 각성하는 계기가 됩니다. 수연은 귀수가 각성하고, 복수를 다짐하는 계기를 만들어주기 위해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희생당했으며, 황덕용의 추악함을 보여주기 위해 이용됐습니다.

수연은 두 남성의 서사를 전개하기 위한 매개로, 철저히 도구화 되었습니다. 여성의 성범죄 피해를 주인공이 분노하고 각성하는 계기로, 악인과의 갈등의 계기로 너무나 손쉽게 사용한 것입니다.

이처럼 <신의 한 수: 귀수편>은 한국 영화에서 지적받아 온 문제점들을 구태의연하게 반복합니다. 수연이 남성 인물들 간의 서사 전개를 위해 희생당하는 것 외에도, 황덕용의 딸(황선희 9단)은 악인의 딸이라는 이유로 희생당합니다. 등장의 이유도, 희생의 이유도 귀수와 황덕용 사이의 갈등서사 전개를 위해서였습니다. 유일하게 등장하는 여성 인물 세 명 중 두 명이 남성서사를 위한 희생의 도구로 소모된 것입니다. 나머지 한 명인 홍마담(유선)은 극중 인물 똥선생(김희원)이 없다면 아예 없어도 무방할 만큼 아무런 역할도 주어지지 않은 인물이었습니다.  

<신의 한수: 귀수편>에서 야망, 목표, 욕망을 가지고 살아 숨 쉬는 건 남성 인물들뿐입니다. 이 영화 자체가 복수와 액션에만 초점이 맞춰져, 대부분의 인물들이 평면적이며 빈약한 개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남성 중심 서사를 바탕으로 하기에 주·조연급인 귀수, 똥선생, 잡초 등은 상대적으로 생동감 있는 캐릭터로 남을 수 있었으며, 각 캐릭터가 전형적이긴 하더라도 야망과 목표와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의 한 수: 귀수편>  스틸 이미지

▲ <신의 한 수: 귀수편> 스틸 이미지ⓒ CJ엔터테인먼트


우도환이 연기한 외톨이라는 인물은 홍마담보다 비중만 컸지 마찬가지로 왜 등장하는지 의문이 드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한 빈약한 개연성을 가진 외톨이조차 자신의 분노와 복수라는 욕망과 감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반면 누나 수연은 어떠했나요. 왜 수연은 직접 복수할 수 없었던 걸까요? 왜 수연은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희생당해야 했던 걸까요? 왜 복수를 대신 해주는 건 남동생이며,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도 피해를 당한 수연이 아닌 남동생인 걸까요? 영화는 이러한 질문들을 뒤로한 채 또 다시 여성을 희생시키고, 스스로 분노하고 복수할 기회를 주기 보단 죽음으로 모는 전개를 재생산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이(대개 여성)의 사고, 희생, 죽음(대부분 성범죄가 원인임)이 남자 주인공의 각성 계기가 되고, 복수를 삶의 원동력으로 삼고 나아가는 스토리는 앞서 이야기 했듯 남성 중심 영화에서 여성을 도구화 하는 가장 대표적 서사입니다. 물론 주인공의 각성, 복수의 계기로 가족의 희생만큼 손쉬운 소재는 없습니다. 그러나 왜 희생되는 가족이 여성이어야 했을까요? 또 왜 성범죄 피해여야 했을까요?
 
이 영화가 전작뿐만 아니라 원작인 만화와도 전혀 스토리 연관성이 없는 이상, 남성의 각성을 위해 여성을 죽이고 희생시키는 나쁜 클리셰를 사용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사회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했다면, 예민하게 생각했다면 충분히 어렵지 않게 피해갈 수 있는 정도의 것들이었습니다.

지배적인 남성 중심 서사가 비판받는 이유
 
영화 <신과 함께: 죄와 벌> 스틸 이미지

▲ 영화 <신과 함께: 죄와 벌>스틸 이미지ⓒ 롯데엔터테인먼트


남성 중심 서사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남성 중심 서사의 영화만 너무 많은 것이 문제이며, 앞서 지적하였듯 이러한 남성중심 영화가 여성인물을 수단화하고 도구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영화진흥위원회 산하 한국영화 성평등 소위원회에서 지난 5일 발표한 '한국 영화 산업 성평등 정책 수립을 위한 연구'에 따르면 10년간 전체 흥행 순위 50위 영화 468편 중 여성 주연 영화의 비율은 24.4%이고, 남성주연영화의 비율은 75.6%를 기록했습니다. 앤딩크레디트 등장인물 순서에 따른 주연 1과 주연 2가 모두 여성인 경우는 열 편 중 한 편에도 못 미치는 8.3%에 불과했습니다.

우리나라 영화의 대부분이 이러한 남성 중심 서사이다 보니 여러 성격과 특징을 가진 남성의 모습은 다양하게 만들어지는 반면, 여성은 남성 인물의 서사를 완성하는데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제한된 모습으로 존재해 왔습니다. 가장 보편적인 대중영화라 말할 수 있는 '천만 영화'만 들여다 봐도, 여성 인물은 돌봄과 희생의 역할로 등장하거나 아예 (비중 있는 역할로)등장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현실에는 영화에서처럼 지배적인 하나의 성만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다양한 성이 주체적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지배적인 남성 중심 서사가 비판받고, 최근 여성 서사 영화들이 하나 둘 스크린에 모습을 비추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더 나아가 스크린에서 퀴어 영화도 더 많이 볼 수 있어야 하겠지요. 이렇게 변화해가는 사회에서, <신의 한 수 : 귀수편>은 젠더감수성도, 영화적 상상력도 전부 아쉬운 영화였습니다.

대중영화가 가지는 영향력과 공연성(많은 사람 앞에서 보일 수 있는 성질)등을 생각하며, 우리 영화가 조금 더 예민해 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본인 블로그에도 게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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