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진아의 두번째 정규 앨범 < 나의 모양 >

권진아의 두번째 정규 앨범 < 나의 모양 >ⓒ 안테나뮤직


 
나는 '취향의 상대성'을 존중한다. 그러나 개인적인 기준을 대입하자면, '좋은 가사'와 '나쁜 가사'는 존재한다고 믿는다. 특히, 요즘 음원 차트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차트용 발라드'는 내 기준에서 나쁜 가사다. 자신이 얼마나 술에 취했는지를 이야기하고, 보고 싶다는 말만을 반복하는 것 말이다.

이별은 누구에게나 커다란 상실이다. 술 한 잔에 무너지고, 지나간 인연을 떠올리게 되는 것 역시 보편적인 감정이다. 그러나, 음악마저 단순히 그 슬픔만을 나열하는 것이라면, 그 미적 게으름일랑 거부하고 싶다. 예술 콘텐츠로써 소비해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대중가요와 사랑 노래의 팬으로서, 이럴 때마다 공들여 만든 사랑 노래들을 찾게 된다.
 
지난 9월 19일, 권진아의 새 앨범 <나의 모양>이 발매되었다. 2016년에 발표한 1집 <웃긴 밤> 이후 3년만의 정규 앨범이다. 레이블 안테나 뮤직을 좋아하는 나에게, 그녀는 '믿고 들을 수 있는' 신뢰의 이름 중 하나다.

신보 <나의 모양>에서 유독 귀를 맴도는 곡은 두 번째 트랙 '운이 좋았지'였다. 권진아가 노랫말과 멜로디를 썼고, 적재가 편곡 작업을 했다.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덕분인지, 뒤늦게 '시계 바늘'과 함께 더블 타이틀곡으로 선정되었다.

긴 터널을 지나가는 중입니다
 
많은 이별 노래들은 옛 연인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 혹은 '혼자 있는 나'는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 집중한다. 그것이 주된 정서다. 그런데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 '운이 좋았지'의 표현법은 꽤 역설적이다. 누군가를 미워하지도 않고, 붙잡으려 애쓰지도 않는다. 전 연인을 '내게 불었던 바람 중 가장 큰 폭풍'이라 말하고,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사랑한 만큼 아파했고, 이제는 그만큼 성숙한 사람이 되었다고 말한다.

"말 한마디로 끝낼 수 있던 사랑을 했으니 운이 좋았지.
서서히 식어간 기억도 내게 없으니 운이 좋았지"
 
"내게 불었던 바람들 중에 너는 가장 큰 폭풍이었기에
그 많던 비바람과 다가올 눈보라도 이제는 봄바람이 됐으니"

 
갑자기 찾아온 이별에 대해 '말 한마디로 끝낼 수 있는 사랑을 했으니 운이 좋았다'고 자조하기도 하지만, 덕분에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었노라 말한다. 긴 터널과 같은 시간을 감내한 끝에, 더 단단한 마음을 갖게 된 '나'의 성장 서사다. 권진아의 '운이 좋았지'는 이별도 자신의 일부라고 받아들이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차분한 얼굴로 과거를 마주하는 그녀의 모습이 이 곡을 더 아련하게 한다.
 
사랑해 본 사람들이라면, 모두 느낄 것이다. '운이 좋았다'고 이별을 대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어른스러운 일인가? 노래의 반전은 마지막에 얼굴을 드러낸다. 차분하게 자신을 다독이던 화자가 말미에 '넌 내게 전부였지'라며 속마음을 토해내는 것이다. 이쯤 되었을 때, 울음은 청자의 몫이다.

겨울과 가까워지고 있는 가을 밤, 이 노래를 들으면서 권진아는 어떤 모양의 사랑을 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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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음악과 공연,영화, 책을 좋아하는 사람, 스물 일곱. http://blog.naver.com/2hyun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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