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머니' 정지영 감독 영화 <블랙머니>의 정지영 감독이 8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블랙머니' 정지영 감독영화 <블랙머니>의 정지영 감독이 8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민

 
묵직하면서도 둔탁한 파열음. 2010년 이후 정지영 감독의 영화가 그랬다. 마땅히 정의로워야 할 사법부가 이권에 따라 부화뇌동하는 현실을 <부러진 화살>로 포착했고, 민주화 혁명 당시 국가가 쉬쉬했던 국가로부터의 폭력을 <남영동 1985>를 통해 고발했다.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난 2019년, 그는 모피아를 화두로 들고 나왔다. 

경제관료들의 금융계 진출, 그리고 기득권의 재생산. 70대의 그가 바라본 대한민국 사회는 금융자본주의와 정치 권력자들이 다수의 대중을 협잡하는 곳이었다. 오는 13일 개봉하는 <블랙머니>는 2003년 국가가 외환은행을 외국계 사모펀드에 헐값에 팔아넘긴, 일명 '론스타 먹튀 사건'을 소재로 한다. 
 
"우리가 지금 금융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 노동의 가치가 더 인정받는 게 아니라 돈이 돈을 버는 시대지. 보통사람은 잘 모른다. 소수 엘리트가 그걸 알아보고 우릴 농단하고 있다는 게 <블랙머니>가 하고 있는 이야기다. 그 작동 기제를 다 알 순 없어도 눈치는 채자는 게 핵심이지. 모피아들이 공모하며 기득권을 키우는 데 모른 채 당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모피아와 검찰 개혁
 
 영화 <블랙머니>의 한 장면.

영화 <블랙머니>의 한 장면.ⓒ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 <블랙머니>의 한 장면.

영화 <블랙머니>의 한 장면.ⓒ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물론 접근이 쉽진 않았다. 수십 년 영화를 해온 관록의 그라도 경제용어가 난무하고 복잡한 셈법이 얽힌 사건을 관통하는 게 녹록지 않았던 것. 제작자이자 스크린 독과점 반대 운동을 꾸준히 해온 영화적 동지인 양기환 대표가 론스타 사건을 제안한 뒤로 시나리오 작업에만 6년이 걸렸다. 지금의 영화는 2012년 양 대표의 첫 제안 이후 정지영 감독이 나름 소화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정지영 감독의 선택은 검사의 눈이었다. 영화에서 양민혁 검사(조진웅)는 조직에서 좌충우돌 막 수사하기에 '막 프로'(보통 검사의 성을 따서 프로라는 말을 붙임)라는 별명이 붙은 인물. 사건 수사 중 석연치 않게 '성추행 검사'라는 오명을 쓰게 되고 그걸 벗기 위해 애쓰다가 모피아 사건의 실체에 다가간다는 게 영화의 발단이다. 

"론스타가 어떻게 외환은행을 사들였나 그건 일단 무시하기로 했다. BIS(자기자본비율), 징벌매각 등 일단 정확히 몰라도 되고, 이게 낮으면 안 좋은 거구나 정도만 알게끔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봤던 자료만 해도 한아름이 된다. 할리우드 SF 영화에도 낯선 용어들이 많지만, 영화를 보는 데 어려움은 없잖나. 팩스 5장으로 70조 원짜리 은행이 1조에 넘어가는 일이 벌어졌는데 하나하나 설명할 수는 없었다. 이 사건을 규탄한 시민단체가 있었고, (허술하게 수사했던) 수사기관이 있었다. 여기에 집중하려 했다. 

물론 조마조마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이 의외로 잘 이해하셔서 지금은 좀 자신감이 생겼다. 배우들에게도 따로 그 사건을 공부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실제와 픽션 사이에서 중심 잡기 힘들 거거든. 시나리오 힘을 믿고 가자 다만 시나리오에서 의문이 있는 걸 물어보라고 했다. 주인공이 신문 기자일 수도 있고, 은행원이거나 경찰 혹은 변호사일 수도 있는데 제일 중요한 건 전문가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경제를 모르는 친구가 파헤쳐야 하는데 이 역할을 하려면 일반 검사가 맞다고 생각했다."


이 지점에서 <블랙머니>가 최근 불거지고 있는 사법 개혁 및 검찰개혁 이슈와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양민혁 검사가 사건의 진실에 극적으로 다가갔을 무렵 검찰총장이 돌연 수사 대상이 돼 자리에서 물러나기 때문. 정지영 감독은 "영화가 요즘 검찰개혁과 맞물렸다고들 하는데 일부러 뭘 알고 그런 게 아니라 타이밍이 맞아 떨어진 것"이라며 "그것 때문에 관객분들이 재밌게 볼 수 있다면 좋은 일"이라 말했다.

금융자본주의의 민낯
 
'블랙머니' 정지영 감독 영화 <블랙머니>의 정지영 감독이 8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지영 감독.ⓒ 이정민

 
"양 검사가 그렇게 외치고 뛰어다녔는데 검찰이든 외부든 잘 바뀌지 않는 걸 보고 분노하신다면 가만히 있지 않으면 된다. 청원도 하고, 재수사 하자고도 말해야지. 영화에서 양 검사가 성공했다면 영웅이겠지만 현실에 그런 영웅은 없다. 그걸 보고 가슴이 아프다면 이 영화는 나름 성공한 셈이다.

우리 사회는 금융자본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소수 엘리트들이 장난치면 당할 수밖에 없다. 온 인류가 직면한 문제라고 본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건이 미국 경제를 흔들었잖나. 당시 금융회사는 망했지만 거기 임직원들은 엄청난 퇴직금을 받고 물러났다." 


정지영 감독은 "지나간 일이 아닌 현재 진행형인 사건"임을 강조했다. "또한 젊은 세대 등 많은 구성원이 정체 모를 불안함에 떨고 있는데 이 영화에 그 정체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70대의 그는 그렇게 한국사회 변화를 바라보며 영화에 꾸준히 반영하고 있었다. 언제부턴가 한국 상업영화계에 연륜의 감독이 아닌 신인 감독 중심으로 돌아가는 형국에 대해 그는 "1980년, 1990년에 한창 활동했던 내 동료들이 은퇴한 게 아닌데도 영화를 찍지 못하고 있다"며 "투자자들은 그들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노하우가 있는데 왜 썩히는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현재 흐름에 그는 할 말이 있었다.

"한국영화가 위험한 상황에 와 있다. 대기업들이 가진 오만함이 이런 상황을 만들었는데 정신 차려야 한다. 영화인들이 머리 맞대서 해결해야 한다. 자본 검열 금지, 스크린 독과점, 겸영 금지 등을 해결해서 영화가 더욱 다양해지고 풍부해져야지. 지금처럼 쏠림 현상이 있으면 힘들어진다. 스타 감독, 스타 배우 아니면 제작 자체를 기피하는데 이걸 극복하지 못하면 아마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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