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더 킹: 헨리 5세> 포스터.

영화 <더 킹: 헨리 5세> 포스터.ⓒ 넷플릭스

 
호주 출신으로 2000년대 들어 단편영화와 다큐멘터리, TV를 오가며 감독과 각본은 물론 배우로까지 종횡무진 활약한 데이비드 미쇼는 정확히 10년 후 장편영화 연출에 성공한다. 그는 <애니멀 킹덤>으로 제26회 선댄스 영화제 월드시네마 부문 심사위원대상을 거머쥔다. 그의 작품에는 훌륭하고 유명한 배우들이 다수 참여했는데, 재키 위버는 골든글로브와 미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여러모로 화제를 모은 데뷔였다. 

이후 미쇼 감독은 주기적으로 영화를 내놓았는데, 나름의 성공을 이뤄왔다. 그의 작품엔 가이 피어스, 앤소니 헤이스, 스쿳 맥네이리, 로버트 패틴슨, 조엘 에저튼, 벤 멘델슨 등 몇몇의 배우들이 얼굴을 비쳐왔다. 유명 배우들이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그의 영화에 다수 출연을 결정한 것으로 보아, 데이비드 미쇼 감독 작품을 향한 신뢰를 가늠할 수 있겠다. 

한편, 2017년작 넷플릭스 오리지널 <워 머신>의 주연과 제작을 맡은 브래드 피트는 최신작이자 역시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킹: 헨리 5세>의 제작까지 연거푸 데이비드 미쇼 감독에게 맡겼다. 작품을 보는 눈이 출중한 제작사 '플랜 B'의 선택인 만큼,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더 킹: 헨리 5세>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동명 희곡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자유인 '할'에서 국왕 '헨리 5세'로

1400년대 초반 잉글랜드, 국왕 헨리 4세의 폭거가 계속되는 와중에 왕자 할(티모시 샬라메 분)은 퇴역해 한물간 전쟁영웅 존 팔스타프(조엘 에저튼 분)와 함께 궁 밖에서 자유분방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하지만 내부 반란 세력의 위협과 죽어가는 헨리 4세 때문에 궁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처지가 된다. 그는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존이 적극적으로 타진한다. 

할은 탁월한 전투 능력으로 반란 세력을 진압하지만, 그의 능력을 시기한 왕위계승자 동생 토마스가 무리한 전진 끝에 죽고 만다. 할은 고뇌에 빠지고, 대법관 윌리엄이 그를 수렁에서 건져올린다. 할은 곧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 헨리 4세의 뒤를 이어 헨리 5세로 즉위한다. 그는 카리스마와 선의를 두루 갖추려 노력하면서, 헨리 4세의 전철을 따르지 않으려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하나둘 오는 조롱과 위협을 그냥 넘기기가 쉽지 않다. 평화를 위해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헨리 5세는 프랑스로의 진격을 명하고 친히 진군한다. 존 팔스타프를 총사령관으로 두고 윌리엄을 총참모격으로 둔다. 무리없는 전투로 시작해 성공을 거두지만, 프랑스 왕자 도팽의 출현으로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간다. 헨리 5세는 도팽 때문이라도 프랑스군을 반드시 격파해야 했지만, 멀리서 온 만큼 병사들도 많이 지쳤고 보급도 많이 밀렸다. 이에 존은 많은 희생이 뒤따르는 필승의 전략을 제안하는데... 

티모시 샬라메에게 빚진, 할과 헨리 5세의 성장

영화 <더 킹: 헨리 5세>는 희곡을 원작으로 한 시대극이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에 예측이 가능하다. 더욱이 역사적으로도 너무나 유명한 왕(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로 칭송받는 한 명)의 이야기이자, '백년 전쟁'이라는 역시 너무나도 유명한 시대를 다루기에, 일부 관객들에겐 매력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흥미진진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건 '헨리 5세' 이전 '할'이라는 인간의 성장을 다루기 때문이다. 

우린 '할'을 통해 지금 우리를 구성하는 한 단면을 들여다보는 한편, '헨리 5세'을 통해 알 수 없는 그 옛날 먼 타국 왕의 한 단면도 들여다본다. 영화는 묵직하게 끌고나가는 서사, 서사를 구성하는 인물, 인물들에 의한 사건으로 우리에게 그의 성장을 표나지 않게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할, 즉 헨리 5세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가 들여다보고 발을 디뎠다가 고뇌하고 중심을 잡으려다가 휘둘리고 희생과 실패를 겪으며 승리한다.  

자유인으로서의 할과 왕으로서의 헨리 5세를 연기한 티모시 샬라메에게 영화가 큰 빚을 졌다고 아니할 수 없는 게, 그의 표정과 말투와 몸가짐과 분위기 등에서 묻어나오는 변화가 매우 자연스러우면서도 알아차릴 수 있는 만큼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유인이었고 어설픈 왕이었으며 진중하면서도 제 몸 사리지 않고 앞장 서기에 믿을 수 있는 왕이었으며 궁극적으로 평화를 가져왔기에 위대한 왕이었다. 

극사실주의라는 장점과 헨리 5세라는 단점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띈 건 아무래도 극사실주의 전투 장면들이다. 수많은 전쟁 영화를 봐온 입장에서, 이 영화의 전투만큼 리얼한 장면을 본 적도 드물다. 할이 참전한 전투에서의 1대1 장면과 헨리 5세가 참전한 전투에서의 진흙탕 장면이 뇌리에 남는데, 앞에 것은 느리고 어설플 수밖에 없는 갑옷 기사들의 대결을 여지없이 보여주었고 뒤에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이 난장판 그 자체였다. 

온몸에 무겁기 짝이 없는 갑옷을 두른 중세 기사들의 전투라고 해도, 영화에서는 훨훨 날아다니는 것으로 표현하기 일쑤인데 이 영화에서는 어기적 어기적 걸어다니며 안 피하기 힘들 만큼 느리게 칼을 휘두른다. 이전 영화 <워 머신>에서도 전쟁을 블랙코미디로 풀어낸 바 있는 데이비드 미쇼 감독이 이를 의도한 것이라면, 그는 천재인 게 분명하다. 역사상 아쟁쿠르 전투로 유명한 후반부 헨리 5세의 진흙탕 전투 장면은 또 어떤가. 제 아무리 '전투의 신'이 와도 진흙탕에선 멋있는 장검을 제대로 휘두를 수도 없을 것이다. 

이 모든 게 오직 헨리 5세를 위한 장치처럼 보이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할이 자유인에서 왕이 되어 위대해지기까지의 서사, 존 팔스타프와 윌리엄과 도팽이라는 뚜렷한 역할의 인물(그들이 서로 간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헨리 5세 사이에만 관계가 형성된다), 완성도 높은 전투 장면들까지 모두 헨리 5세의 성장과 변화라는 목적을 위한 도구였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들다. 

영화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끝까지 어떤 식으로든 헨리 5세의 고뇌와 성장을 보여주려 한다. 지루하게 다가갈지 참신하게 다가갈지, 그냥 그럭저럭 별것 아니게 다가갈지 관객들마다 다르지 않을까. 개인적으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최소한 지루하게 다가오진 않았다. 분위기 연출의 힘인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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