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싶었던 그런 순간 말이다. 아이를 낳고 '독박육아'를 한창 하고 있을 때 나는 종종 숨이 막힌다고 느끼곤 했다. 내가 아닌 빈껍데기로 하루하루 버텨내는 이 삶에 영원히 출구가 없을 것만 같았다. 그날따라 자꾸만 보채는 아이를 2시간 넘게 안아 재우면서 이런 생각들이 사정없이 나를 침잠해 들어왔다.

마침내 아이의 울음소리가 그치고 사방이 고요해졌다. 가만히 잠든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내 안에서 이런 소리가 들렸다.

'지금 네가 포기하고 싶은 건, 그 만큼 원하는 게 있었다는 거야. 진짜 잘 살고 싶기 때문에 오히려 포기하고 싶은 거 아닐까?'

이 목소리의 존재를 알아챈 순간, 나는 '포기하고 싶은 마음'에 몰두하는 대신 '진짜 내가 원했던 게 무엇인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내면에서 들려온 이 목소리는 다시 살아갈 용기를 불어 넣어주었다.

따사로운 햇볕과 스산한 찬 기운이 어우러졌던 며칠 전, 나는 이 목소리를 다시 들었다. 조용히 음미하며 들은 아이유의 신곡 'Love Poem' (아이유 작사, 이종훈 작곡). 아이유의 음성은 '진짜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봐. 다시 일어설 수 있어'라고 이야기해주는 것만 같았다.

 기도와 사랑시
 
 아이유가 11월 발표한 신곡 'Love poem'

아이유가 11월 발표한 신곡 'Love poem'ⓒ 카카오M


노래는 이렇게 시작한다.

'누구를 위해 누군가 기도하고 있나 봐. 숨죽여 쓴 사랑시가 낮게 들리는 듯해'

여기서 '기도'와 '사랑시'는 무엇을 의미할까? 매슬로우와 칼 로저스 등 현대를 대표하는 인본주의 심리학자들은 모든 유기체, 즉 생명을 가진 존재들은 보다 나은 삶을 추구하는 '자기실현경향성' 혹은 '유기체적 성장경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이런 성장경향성은 사회화 과정을 통해 더욱 강화되기도 하고, 때로는 마음 깊은 곳으로 숨어들기도 한다. 

아이유가 첫 소절에서 표현한 '기도'와 '사랑시'는 성장경향성을 응원해주는 목소리다. 성장과정에서 부모를 비롯한 친밀한 관계의 사람으로부터 '네가 원하는 삶을 살기를 바라'라는 '기도'와 '너는 지금 모습 그대로 충분히 사랑스러워'라는 '사랑시'를 자주 들어온 사람은 자신 안의 성장경향성을 신뢰하게 된다.

반복되는 '기도'와 '사랑시'의 메시지는 한 개인의 마음속에 내면화된다. 내면화된 메시지는 이제 다른 이의 목소리가 아닌 나 자신의 목소리로 말을 한다. '나는 소중한 사람이야. 나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자격이 충분해'라고 말이다. 자기 자신의 목소리가 된 '기도'와 '사랑시'는 한 사람이 스스로를 믿고 원하는 삶을 추구해가는 힘이 되어준다. 

별이 지는 세상

하지만, 세상은 '너에게로 선명히 날아가 늦지 않게 자리에 닿기를' 바라는 이 간절한 마음, 즉 내면에서 말을 거는 성장경향성의 목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곤 한다.

우리 사회에는 있는 여러 가지 조건부적 가치들이 널리 퍼져 있다. 주로 '~다워야 한다' 나 '~해야 된다(혹은 안 된다)'로 표현되는 세상의 가치들은 이런 조건을 충족시켰을 때만 사랑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강화한다. '학생은 공부를 잘해야 한다', '여자는 조신하고 집에서 살림과 육아를 해야 한다', '남자는 슬픈 감정을 표현하면 안 된다' 등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조건부적 가치'들이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이런 '조건부적 가치'에 점차 익숙해지게 되고, 이를 받아들이면서 본래 자신이 실현하고자 했던 모습과는 점차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자신이 원했던 삶의 모습과 현재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모습의 간격이 점차 벌어질 때, 사람들은 우울, 공허, 불안 등 여러 가지 심리적 증상들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더 이상 나 자신을 실현해갈 수 없다고 느낄 때 때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아이유는 이런 순간들을 '또 한 번 너의 세상에 별이 지고 있나봐'로 표현했다. 내가 원하는 삶, 내가 되고자 하는 나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별이 지는 듯한' 상실감과 절망을 경험한다. 이는 잃어버린 나 자신에 대한 애도이기에 깊은 슬픔으로 다가온다. 이런 순간은 살아가면서 여러 차례 경험되기도 한다. 그래서 아이유는 '또 한 번' 이라고 노래한다.

문제는 나의 성장경향성에 맞는 삶과, 현실이 요구하는 삶의 간격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도 쉽게 보이는 직접적인 이별이나 상실을 겪었다면 소리 내어 울며 위로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내면에서 발생한 이 간극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도 잘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더라도 홀로 고통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아이유는 이런 고통을 '홀로 걷는 너' 그리고 '숨죽여 삼킨 눈물이 여기 흐르는 듯해'라고 표현한다. 보이지 않게 찾아오는 우울과 절망, 슬픔은 내면 깊이 자리 잡아 오래도록 지속된다. 아이유가 '유난히 긴 밤을 걷는 너' '너의 긴 밤' 이라고 노래하듯 말이다.

삶을 붙잡아주는 그 목소리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이토록 긴 밤을 보내게 하는 심리적 고통은 내가 원하는 나와 지금 살고 있는 나의 모습의 간격이 큰 데서 비롯된다. 여기서 관점을 조금만 바꿔보자. 거꾸로 말하면 이는 '간절히 원하는 어떤 삶이 있기에 지금 고통을 겪는다'는 의미다. 즉, 더 잘 살고 싶어서 지금 아픈 것이다. 너무나 힘들어 삶을 포기하고 싶어지는 그 순간, 사실 내면 깊은 곳에서 진실로 원하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진짜 원하는 그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이 때 기억해야 할 것이 아이유가 노래하는 '기억처럼 들려오는 그 목소리' 그러니까 첫 소절의 '기도'와 '사랑시'다. 나는 성장하고자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누군가는 이런 나를 사랑하고 응원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는 것이다. 꼭 사람의 메시지가 아니어도 좋다. 신이 지켜주고 있는 느낌, 나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반려동물을 떠올리는 것도 괜찮다. 이왕이면, 다른 사람보다는 자기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더욱 좋다. 생명이 있는 존재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다 나은 존재로 성장하고자 하는 본능, 잘살고자 하는 그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귀를 기울이기 위해 필요한 태도 역시 아이유는 노래로 표현해준다. 먼저 생각을 멈추고 '아주 잠시만 귀 기울여' 보자. 절망에 빠져 있을 때는 부정적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마련이다. 이런 생각에 사로 잡혀 있기에 내면에서 울려나오는 잘살고자 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다.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고요한 마음'상태를 만들어보자. 그러면 아이유가 노래하듯 '기억처럼 들려오는 목소리' 내면 깊숙한 곳의 진심이 들려올 것이다.

다음으로 '아주 커다란 숨을 쉬어'보자.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 뱉다 보면, 나의 진정한 삶을 방해해온 것들에 대한 분노와 슬픔으로 아마도 눈물이 쏟아질 것이다. 이럴 땐 소리 내어 울어보자. '소리 내 우는 법을 잊은 널 위해 부를게'라는 소절은 한바탕 울어내고 감정을 표현하라는 응원이기도 하다. 슬픔을 토해낸 그 자리엔 아마도 새로운 삶에 대한 의욕이 깃들 것이다.

아이유는 후렴구를 통해 반복해서 약속한다. 이 노래는 '그치지 않을 노래'라고. 그리고 '난 절대 Singing till the end 멈추지 않아 이 노래'라고. 이 약속을 믿어보자. 지금 다 포기하고 싶다면, 내 안에 있는 살고자하는 목소리, 더 잘 살고자하는 강력한 본성에 귀 기울여보자. 그 마음에 더 집중한다면 '긴 밤이 끝나는 그 날' '고개를 들어 바라본 그 곳에'서 한층 성장한 나 자신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나 뿐 만이 아니었다. 포기하고 싶었던 그 순간을 겪어낸 후 나는 다시 상담실에 나가 내담자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딱 포기하고 싶은 그 순간'을 이야기했다. 이런 순간이 너무 오래 지속돼 한없이 괴로워하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난 알 수 있었다. 괴로워하는 마음이 클수록, 더 간절히 원하는 게 있다는 것을. 상담실에서 나는 나를 찾아오는 이들과 함께 포기하고 싶은 마음의 뒷면에 있는 '간절히 원하는 삶'을 찾아 나서곤 한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내가 들은 그 목소리를 발견한 순간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는 모습을 보아왔다. 때문에 나는 확신한다. 아이유가 부르는 'Love poem'이 진실임을. 이 노래 속 약속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필자의 개인블로그(https://blog.naver.com/serene_joo)와 브런치(https://brunch.co.kr/)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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