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스틸컷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제72회 칸영화제 각본상, 퀴어 종려상 수상,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 2019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개막작인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시대극과 퀴어도 잘 어울릴 수 있음을 확인하는 작업이다.

18세기 결혼을 앞둔 여인의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 '마리안느(노에미 멜랑)'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섬에 도착한다. 몇 번이고 초상화를 퇴짜 놓는 여인 '엘로이드(아델 하에넬)'를 그리라는 주문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초상화는 당시 결혼의 도구로 활용되었다. 엘로이드가 번번이 초상화를 물리는 이유는 결혼을 미루기 위함인데, 마리안느는 자신의 신분을 숨겨서라도 그림을 완성해야 한다. 숨 막힐 듯 대상을 더듬는 마리안느의 시선으로 관객도 엘로이드를 관찰하기에 이른다.

몰래 한 사랑,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어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스틸컷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여성 퀴어의 포인트는 '눈빛 교환'이다. 서로가 서로의 것임을 첫 만남부터 확신한다. 그러나 신분과 결혼이라는 장애물 때문에 직접 확인하지 못하고 망설인다. 주변을 빙빙 돌거나 닿을 듯 말 듯 한 시선 처리로 계속해서 말을 건다. 은근하고 농밀한 분위기는 영화 전반을 지배한다. 귀족이지만 평등함을 주장하는 엘로이드와 여성 화가라는 제약 때문에 이름을 감추고 살아야 하는 마리안느의 욕망이 타오른다. 갖고 싶지만 갖지 못하는 금기는 더욱더 서로를 갈망하게 한다.

둘은 서로 다른 성질을 가졌기에 끌린다. 높은 신분이자 차가운 엘로이드는 물 같다. 첫 산책 나간 해변에서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장면으로 암시한다. 치마폭에 불이 붙었을 때도 마치 꺼질 것을 아는 사람처럼 담담한 모습을 보인다. 반면 마리안느는 불처럼 열정적이지만 타오르지 못하고, 꺼질 듯 위태롭다. 타오를 날을 기대하며 불씨(가능성)를 품고만 있는 사람이다. 성격은 다르지만 비슷한 상황에 처한 여성은 서서히 물들어간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기본적으로 대상을 오래, 깊게 봐야 하는 작업이다. 화가 마리안느는 대상의 외면을 그리지만 관찰을 통해 내면까지 꿰뚫게 된다. 초상화란 두 관점이 존재하는 지극히 주관적인 결과물이다. 그리는 사람에 따라, 보는 사람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다. 슬퍼 보이는 그림은 화가가 느낀 피사체의 슬픔을 포착한 것일 수도, 그림을 보는 사람의 감정 탓일 수도 있다. 때문에 화가와 피사체가 친밀할수록 진심이 그림 속 안에 체화되는 것이다. 결국 마리안느는 자신만의 엘로이드를 완성하기에 이른다.

여성으로 시대를 살아가는 힘, 연대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스틸컷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영화는 두 여인의 사랑 이야기뿐만 아니라, 하녀 '소피(크리스텔 바리스)'를 등장시킴으로써 여성 서사와 연대를 힘주어 말한다.

18세기 상류층 여성들은 결혼이나 남성을 통해 인생이 완성되는 수동적인 삶을 살았다. 앞선 언니의 죽음은 결혼에 회의적인 태도를 부추긴다. 사방이 뚫려 있지만 쉽게 뭍으로 나갈 수 없는 외로움에 답답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공허하고 헛헛한 마음을 마리안느를 통해 채우게 된다. 마리안느는 표면적으로는 자유로운 삶을 사는 듯 보인다. 하지만 아버지의 이름을 빌린 마리안느의 처지도 반쪽짜리일 뿐이다.

소피는 임신한 상태지만 낙태를 원한다. 이를 위해 두 여인은 소피를 지극정성으로 돌봐준다. 세 여성이 처한 현실은 상황만 다를 뿐 같음을 깨닫고, 계급을 넘어 친구가 된다. 사회라는 큰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세 여성은 함께 밥을 먹고 서로의 아픔을 보듬으며 연대하는 것이다. 세심하게 연대의 힘을 천천히 쌓은 영화는 마지막 장면에서 폭발하게 된다.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두 여인의 고혹적인 아름다움과 절제된 표현, 뚜렷한 여성 서사가 푸른 파도와 맞물린다. 여인, 자연, 초상화의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룬다. 반면 영화에 흠뻑 빠지다 보면 호러물이란 착각에 빠지게끔 매혹적인 장면이 곳곳에서 포착된다. 환상인지 실제인지 분간하기 힘든 영적인 부분도 이 영화의 매력이다.

특히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마리안느와 엘로이드는 같은 공간에 있었지만 만나지 못한다. 엘로이드를 관찰하는 마리안느의 시선이 카메라와 관객의 눈으로 대변된다. 보는 시선의 일치를 통해 끝남과 동시에 공감할 수 있다. 관객은 극장 문을 나오며 생각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오직 관객에게 인정받음으로써 충분히 가치를 갖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타오르는여인의초상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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