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축구연맹 지난달 2일 열린 2019 KEB 하나은행 FA컵 준결승 대전 코레일과 상주 상무 경기에서 승부차기 승을 거둔 대전 코레일 선수들이 기버하고 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지난달 2일 열린 2019 KEB 하나은행 FA컵 준결승 대전 코레일과 상주 상무 경기에서 승부차기 승을 거둔 대전 코레일 선수들이 기버하고 있다. ⓒ 김병윤

 
내셔널리그 실업 축구팀 대전 코레일 FC는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축구단이다. 1943년에 창설한 조선 철도국 축구단을 뿌리로 하여 광복 후 교통부를 거쳐 6·25전쟁 당시 잠시 해체되기도 했으나 1960년대 철도청으로 재창단되었고 한국철도공사에서 현재의 대전 코레일까지 꾸준하게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가장 유명한 선수로는 2002 한일월드컵 국가대표로 유명한 이을용(현 제주 유나이티드 수석코치)을 배출한 구단이기도 하다.

오랜 역사에 비하여 인지도는 낮은 편. 프로팀이 아닌 탓에 80-90년 때까지만 나가는 대회마다 동네북처럼 두들겨 맞는 것이 일상다반사였다. 하지만 2000년대들어 이현창 전 감독(1994-2007)을 비롯해 김승회 현 감독 체제를 거치면서 팀의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2000년 춘계 실업연맹전에서 사상 첫 정상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전국체전 3회 우승(2000, 2001, 2011), 내셔널리그 2회 우승(2005, 2012)을 차지했고, FA컵에서도 종종 프로팀들의 발목을 잡는 다크호스로 부상하며, 오늘날의 코레일은 어느덧 실업 축구계를 대표하는 강팀으로 성장했다.

특히 대전 코레일이 올해 축구계 화제의 중심으로 떠오른 것은 2019 FA컵 결승행 덕분이다. 프로-아마추어-대학팀까지 강호들이 모두 나와 매 경기 토너먼트로 '한국축구 왕중왕'을 가리는 국내 최고 권위의 대회에서 코레일은 쟁쟁한 프로팀들을 잇달아 제치고 결승까지 올라왔다.

프로팀들의 저승사자 코레일

올 시즌 코레일은 그야말로 '프로팀들의 저승사자'로 불린다. 32강에서 K리그1 우승후보라는 울산 현대를 격파했고, 8강에는 강원 FC, 4강에서는 상주 상무를 잇달아 무너뜨렸다. 홈앤드어웨이로 치러지는 결승전 1차전(11월 6일)에서는 FA컵 최다우승(4회)에 빛나는 명문 수원 삼성을 상대로 팽팽한 접전 끝에 0-0으로 비겼다. 선수층의 이름값이나 몸값으로 따지면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정작 1차전을 보면 압도적이어야 할 수원이 오히려 경기 내내 코레일의 투지에 말려 쩔쩔매는 양상이었다. 코레일의 결승 진출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한 장면이었다.
 
 대등한 경기를 펼쳤던 대전코레일과 수원삼성

대등한 경기를 펼쳤던 대전코레일과 수원삼성 ⓒ KFA

 
축구계에서는 '칼레의 기적'이라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1999~2000시즌 프랑스 FA컵에서는 4부 리그 소속의 라싱 유니온 칼레가 결승전까지 올라와 당시 프랑스 사회에서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인구 10만 명이 되지 않은 항구도시 칼레를 연고로 했던 팀은 주축 선수 대부분이 정식 프로가 아닌 별도의 생업을 가지고 있는 동호회 클럽에 가까웠다. 한국으로 치면 조기축구팀이 프로팀을 제치고 결승까지 올라온 셈이었다.

칼레는 비록 결승전에서 프랑스 1부리그 명문 팀이었던 낭트에 1-2로 패해 준우승에 그쳤지만 끝까지 선전했다. 프랑스 팬들은 오히려 우승을 차지한 낭트보다도 칼레의 아름다운 도전에 더 많은 박수를 보냈다. 이후 '칼레의 기적'은 FA컵 같은 단기전에서 약체팀이나 하위 팀의 반란이 발생할 때마다 회자되는 용어가 됐다. 지난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한국이 월드컵 챔피언 독일을 격파하는 이변을 연출했을 때 '카잔의 기적'으로 불리기도 했다.

대중들은 약자가 강자를 상대로 두려움 없이 도전하고 반란을 일으키는 스토리에 열광한다. 칼레의 기적은 아쉽게 정상 문턱에서 멈췄지만 코레일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코레일이 10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2차전에서 이기거나 혹은 골을 넣고 비기기만 해도 '원정 득점 우선' 규정에 따라 우승을 차지하게 된다. FA컵 사상 내셔널리그팀이 우승을 차지한 경우는 아직까지 전무하다. 다음 시즌부터 내셔널리그가 사라지고 코레일이 K3리그에 편입되는 것을 감안하면 코레일의 FA컵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정상에 오른 실업팀'이라는 불멸의 역사로 영원히 남을 수도 있기에 더욱 특별한 도전이다.

또한 코레일의 우승이 가져올 '나비 효과'는 현재 시즌 막바지에 이른 K리그1 상위스플릿의 순위 경쟁에도 미묘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프로팀이 FA컵 우승을 차지하면 다음 시즌 아시아 챔피언스리그(ACL) 본선 진출 티켓이 주어진다. 하지만 내셔널리그 소속의 코레일이나 프로지만 군경팀인 상주 상무는 AFC가 요구하는 자격조건을 갖추지 못하여 우승을 차지하더라도 ACL에는 출전할 수 없다.

대신 K리그 4위팀에게 ACL 플레이오프 진출권이 주어진다. 원래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가지는 3위팀은 1, 2위팀과 함께 본선에 직행할 수 있게 된다. 코레일이 우승하면 K리그1 3, 4위팀이 동시에 수혜를 받게 되는 것이다. 현재 K리그1 3위는 서울(승점 55)이 가장 유력하고, 4위 자리를 놓고 대구(승점 51)를 비롯하여 강원-포항(이상 승점 50) 등이 치열한 막바지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 팀들이 코레일의 우승을 내심 간절히 바랄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면 코레일이 만일 우승할 경우 가장 큰 타격을 받게 될 팀은 수원이다. 올 시즌 전통의 명가라는 체면이 무색하게 8위(승점 45)에 그치고 있는 수원은 이미 3년만에 상위스플릿 진출조차 실패했다. 최소한의 자존심 회복과 다음 시즌 ACL 티켓을 위하여 FA컵 우승에 사활을 걸 수밖에 없는 처지다.

만일 수원이 올해 FA컵을 차지한다면 5회 우승으로 포항(4회)을 제치고 단독 최다우승 기록을 세울 수 있다. 하지만 이번 FA컵은 이미 수원에 '상처뿐인 영광'으로 남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수원은 준결승에서도 4부리그 팀인 화성FC에 0-1로 패하는 망신을 당한 바 있다. 단판 승부였다면 벌써 탈락했을 상황이다.

다행히 홈앤드 어웨이 방식이라서 2차전 홈경기에서 화성을 3-0으로 완파하고 설욕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결승에서는 코레일에 또 졸전 끝에 간신히 무득점 무승부에 그쳤다. 수원 팬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꿀대진'의 행운에도 불구하고 차려준 밥상도 제대로 떠먹지 못하는 모습이 K리그 최고 명가라는 자존심에 상처가 날 수밖에 없다.

최후의 2차전이 수원의 홈에서 열리는 만큼 여전히 객관적 전력에서 크게 앞선 수원의 FA컵 우승 가능성이 절대적으로 더 높은 상황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코레일을 이기지 못하고 이변의 희생양이 된다면 수원의 올 시즌은 그야말로 '역대급 굴욕'으로 남게 될 전망이다. 이미 올 시즌 계속된 성적부진과 외국인 공격수 데얀과의 불화설, 선수단 장악 문제로 비판의 중심에 선 이임생 감독과의 결별을 확정 짓는 결정타가 될 수도 있다. 잃을 게 없는 대전 코레일과, 잃을 게 너무 많은 수원의 얄궂은 처지가 대조를 이루는 FA컵 결승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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