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모리스> 포스터.

영화 <모리스> 포스터.ⓒ 알토미디어㈜

 
지난해 전 세계를 사랑의 물결로 물들였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하, '콜바넴'), 주인공으로 분한 티모시 샬라메를 최고의 라이징 스타로 만들어주었지만 영화계의 시선은 또 다른 곳으로 향했다. 원작 소설 <그해, 여름 손님>을 훌륭하게 각색한 제임스 아이보리에게 말이다. 그는, 1928년생으로 90세의 연세에도 감각적이고 섬세한 영화를 내놓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는 누구인가. 1960년대 초에 장편 연출로 데뷔해 많은 걸작 소설을 원작으로 걸작 영화를 내놓은 바 있다. 특히 20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문호 E. M. 포스터의 걸작들을 다수 영화로 옮겼는데, <전망 좋은 방> <모리스> <하워드 엔즈>가 그것이다. 문학 작품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데 있어 자타공인 최고의 제임스 아이보리이기에, 하나같이 원작 못지 않은 걸작 영화로 정평이 나 있다. 

주지한 세 작품 중 두 작품은 제작 당시 즈음에 한국에도 소개되었지만, <모리스>만은 정식으로 소개된 적이 없다. 이번에 32년 만에 한국에 정식으로 개봉한다. 원작자 E. M. 포스터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하는데, 소설을 완성한 1914년 당시 사회통념 상 받아들일 수 없는 소재와 주제인 바 "내가 죽거나 영국이 죽기 전엔 출간할 수 없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하여 그가 죽은 이듬해인 1971년에야 출간될 수 있었다. 

영화 <모리스>는 제44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3관왕을 차지한 사실로도 유명하다. 제임스 아이보리 감독이 은사자상(감독상)을 수상하고, 두 주연배우인 휴 그랜트와 제임스 윌비가 볼피컵 남우주연상을 공동수상했으며, 음악상까지 수상했다. 참고로 당시 볼피컵 여우주연상은 <씨받이>의 강수연이 차지해 우리나라 영화계에도 깊이 각인된 해이다. 

서로가 서로를 원하는 그들
 
 영화 <모리스> 스틸 컷

영화 <모리스> 스틸 컷ⓒ 알토미디어

 
20세기 초 영국의 케임브리지 대학교 킹스 칼리지,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의 모리스가 지주 집안의 귀족 클라이브를 만난다. 여타 친구들처럼 함께 문학, 철학, 음악 할 것 없이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는 대화들로 한껏 대학생활을 만끽한다. 그런데, 그들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

클라이브의 반대로 육체적인 관계까지는 가지 않지만 서로가 서로를 원하고 사랑하는 건 아는 그들, 어느 날 터진 사건으로 클라이브가 돌아선다. 클라이브가 속했던 사교모임을 이끌던 학우가 동성애로 재판을 받아 모든 것을 잃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을 잃는 게 두려웠다. 반면 클라이브를 잃는 게 두려웠던 모리스는 전에 없이 힘들어 한다. 

모리스는 의사를 찾아가 병을 치료해달라고도 하고 최면술사를 찾아가 여성을 사랑하게 해달라고도 하지만 실패한다. 그는 병에 걸리지 않았고 여성을 사랑할 수도 없었다. 혼란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던 찰나, 클라이브의 하인 알렉이 그를 알아보고 접근해온다. 육체적 관계도 마다하지 않는 그들, 하지만 순탄하지만은 않다. 

비윤리적, 비합법적 사랑

영화는 '모리스'를 통해 동성애를 정면으로 다루며 그에 엮인 영국의 당시 시대상까지 곁들인다. 명확히 나뉘어져 있진 않지만 사실상 1부와 2부로 나뉘는데, 모리스와 클라이브가 1부를 주요하게 구성한다면 모리스와 알렉이 2부를 주요하게 구성한다고 할 수 있겠다. 진정한 사랑을 찾아가는 동시에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에 따라 자신을 알아가며 시대를 거스르는 모리스의 성장 서사도 엿보인다.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 출신의 두 사람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의 보수적인 수업을 받지만 자신도 모르게 상대에게 끌리는 걸 어찌할 수 없다. 모리스도 클라이브도 마찬가지다. 다만 육체적 관계로의 발전을 저어하는 건 클라이브다. 그런 가운데 영국의 법 체계가 그들 사이를 결정적으로 갈라놓는다.

안으로 천착할 수밖에 없는 그들, 잃을 게 많은 클라이브는 한때의 치부로 넘어가려 하지만 모리스는 자신의 문제로 치환시켜 본다. 그에겐 남성이 남성을 사랑하는 게 병이어야만 하고, 병이 아니라면 억지로라도 남성 아닌 여성을 사랑하게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혼란 속에서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다. 그때 그 앞에 이르른 알렉은 천사 아니면 악마인 것이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이전에 <모리스>
 
 영화 <모리스> 스틸 컷

영화 <모리스> 스틸 컷ⓒ 알토미디어

 
<모리스> 개봉 35년 만에 <콜바넴>이 개봉했다. 두 작품 다 제임스 아이보리가 각본을 쓰고 제작에 참여했다는 것 외에도 작품 내적으로도 공통점이 많았다. 아름답기 그지 없는 풍광과 두 주인공 청년은 설정상의 공통점이다. 피아노와 풀밭, 사과·복숭아는 둘 사이의 관계를 상징하는 매개다. 그 자체론 특별하지만 기시감을 유발하는 공통점이라 할 만하다. 

<모리스>는 <콜바넴>에 비하면 조금 더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들을 남기는 작품이다. 극의 배경이 되는 100여 년 전 영국에서 동성애가 넘어야 할 산은 무수히 많았다. 윤리와 법이라는 엄청난 산 앞에서 한낱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모리스가 가는 길은 단순히 현실 아닌 이상의 길이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모든 면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건 사투와 다름 아니다. 목숨과 명예와 재력 등 사람을 구성하는 모든 것을 말이다.  시간이 흘러 당연한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상식적인 세상이 만들어지고 있다. 누군가는 이제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단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제대로 영위하기 위해선 과거를 들여다보고 역사를 알아야 한다. <콜바넴> 이전에 <모리스>가 있었고, <콜바넴>의 아름다움이 아름답게 받아들여지기까지 <모리스>가 한 역할을 지나쳐선 안 된다는 것이다. 단순히 영화로서가 아닌, 영화 속 시간과 공간 배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이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당연한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아름다운 걸 아름답다고 말하는 걸 인지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 개인 블로그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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