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12가 개막하면서 한 해외 투수가 국내 야구 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바로 캐나다 대표팀의 필립 오몽이 그 주인공이다. 6일 쿠바와의 경기에 선발등판한 오몽은 8이닝 동안 2피안타 1볼넷 9탈삼진 무실점 역투를 선보이며 캐나다의 3-0 승리를 이끌었다. 빅리그 통산 성적이 1승 6패 평균자책점 6.80에 불과한 오몽이 한 때 세계 최강으로 불리던 쿠바 타선을 완벽히 잠재운 장면은 야구 팬들을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사실 오몽은 지난 2007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시애틀 매리너스의 1라운드 지명(전체11순위)을 받았던 특급 유망주 출신이다. 지난 2009년에는 2008년 사이영상 수상자이자 올스타 4회 출전에 빛나는 '특급 좌완' 클리프 리의 트레이드 상대로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이적하기도 했다(물론 이 트레이드에는 오몽 외 2명의 선수도 함께 포함됐다). 국내 야구팬들에게 알려질 기회가 적었을 뿐 충분히 능력 있는 투수라는 뜻이다.

오몽이 야구팬들의 관심을 얻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쿠바전이 끝난 후 "기회가 된다면 KBO리그에서 뛰고 싶다"는 깜짝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년 시즌 국내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오몽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KBO리그에는 과거에도 국제대회에서의 인상적인 활약을 계기로 KBO리그에 입성했던 외국인 선수들이 종종 있었기 때문에 오몽의 한국 입성(?) 역시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SK 왕조의 시작을 알린 대만 리그 출신 '우승 청부사'

보스턴 레드삭스와 시애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떠돌며 마이너리그 생활을 전전하던 레이번은 2005년 일본 프로야구의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입단했지만 3승 5패를 기록한 후 퇴출 당했다. 하지만 2006년 대만 프로야구의 라뉴 베어스(현 라미고 몽키스)에 입단한 레이번은 그 해 16승 5패 ERA 1.94의 뛰어난 성적으로 라뉴를 우승으로 이끌며 대만리그의 특급 투수로 거듭났다.

레이번이 아시아 전역에서 유명해진 계기는 한국과 일본,대만시리즈의 우승팀끼리 자웅을 겨룬 2006 코나미컵이었다. 레이번은 일본 챔피언 니혼햄 파이터스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해 8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대만 야구를 한 수 아래로 생각하던 한국과 일본의 스카우터들을 놀라게 했다. 코나미컵에 참가했던 삼성 라이온즈의 선동열 감독은 레이번 영입을 구단에 요청했지만 레이번을 잡은 구단은 삼성이 아닌 SK 와이번스였다.

레이번은 2007년 32경기에 등판해 17승 8패 ERA 3.27을 기록하며 SK의 에이스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비록 22승과 함께 정규리그 MVP에 선정된 다니엘 리오스에 가려 상대적으로 크게 빛을 보진 못했지만 SK는 레이번의 대활약 덕분에 창단 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왕조의 시작을 알릴 수 있었다. 레이번은 2008년에도 SK와 재계약에 성공했지만 지독한 불운에 시달리며 5승에 그쳤고 김성근 감독과의 마찰까지 겹치며 SK와 결별했다.

한국을 떠난 레이번은 미국으로 돌아가 독립리그에서 활약하다가 2009년8월 퉁이 라이온스와 계약하며 대만 프로야구로 복귀했다. 그리고 그 해 퉁이 라이온스가 대만 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면서 레이번은 2006년 라뉴 베어스부터 2007~2008년 SK, 2009년 퉁이 라이온즈까지 4년 연속 아시아 리그의 우승을 이끈 투수가 됐다. 비록 SK 시절 한국시리즈에서 승리는 없었지만 SK가 왕조를 건설하는데 레이번의 역할은 결코 작지 않았다.

선수 6년-지도자 4년, 한국 생활 10년을 채운 나이트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미국 대표팀은 괴물 투수 스티븐 스트라스버그(워싱턴 내셔널스)의 참가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한국과의 첫 경기 선발 투수는 스트라스버그가 아닌 뉴욕 메츠의 마이너리그에서 활약하던 브랜든 나이트였다. 나이트는 한국전에서 4.1이닝 6실점으로 부진했지만 대만전에서 6이닝 2실점으로 호투하며 미국의 동메달에 기여했고 이를 눈 여겨 본 삼성에서 2009년 7월 나이트를 영입했다.

하지만 나이트는 삼성에서 2년 동안 단 12승을 올리는 데 그쳤다. 2010 시즌 도중에는 무릎 부상으로 수술을 받고 시즌 아웃되는 불운도 있었다. 삼성팬들은 구위도 썩 좋지 않은 유리몸 투수를 데리고 있느라 아까운 두 시즌을 낭비했다며 구단을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삼성에서 버려진(?) 투수 나이트는 2011년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로 자리를 옮긴 후 전혀 다른 투수로 거듭났다.

2011년 7승 15패 ERA 4.70으로 리그 최다패를 기록할 때만 해도 나이트는 삼성 시절과 별반 달라진 게 없는 듯 했다. 하지만 나이트는 2012년 30경기에 등판해 208.2이닝을 던지며 16승 4패 ERA 2.20으로 다승 2위, 평균자책점 1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도 외국인 선수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 때문에 나이트가 골든글러브를 놓친 2012년은 현재까지도 KBO리그 골든글러브 시상식의 흑역사로 남아 있다.

2013년에도 12승을 거두며 히어로즈의 창단 첫 가을야구 진출을 이끈 나이트는 2014년 1승 2패 ERA 5.52로 부진하며 퇴출됐다. 하지만 2016년부터 화성 히어로즈의 투수 코디네이터로 히어로즈와 다시 인연을 맺은 나이트는 2017년부터 히어로즈의 1군 투수코치로 활약하고 있다. 2009년 우연히 한국땅을 밟았던 외국인 투수 나이트는 선수와 지도자로 10년째 한국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KIA에서 아쉬움 남긴 스프루일, 대만에서 백투백 우승으로 한풀이

지금으로부터 4년 전, 김인식 감독이 이끌던 한국 야구 대표팀은 메이저리거가 한 명도 출전하지 않은 미국에게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2-3으로 패했다. 물론 이미 8강진출이 결정된 상황에서 펼친 부담 없는 경기였지만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리는 김현수(LG트윈스)와 일본에서 활약하는 이대호(롯데 자이언츠)가 포함된 대표팀이 미국의 낯선 선발 투수에게 6이닝 7K 무득점으로 꽁꽁 묶인 것은 굴욕이나 다름 없었다.

당시 한국 타선을 완벽하게 틀어 막은 투수는 바로 지크 스프루일이었다. 빅리그 경력이 12경기에 불과한 스프루일은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강속구를 앞세워 한국타선을 완벽히 틀어 막았다. 빅리그 출신의 헥터 노에시 영입 후 좌완 선발 영입을 고려하던 KIA 타이거즈에서는 급히 계획을 수정해 우완 스프루일와 계약, 헥터, 양현종과 함께 선발 트로이카를 형성했다.

2016 시즌 30경기에 등판한 스프루일은 152이닝을 던지며 10승 13패 ERA 5.27을 기록했다. 비록 승보다 패가 많고 평균자책점도 다소 높았지만 3선발로서 나쁘지 않은 투구 내용을 선보였다. 하지만 많은 안타를 맞으면서도 꾸역꾸역 이닝을 먹어가는 유형의 선발투수인 스프루일을 가을야구에서 불펜으로 활용한 것은 김기태 감독의 판단미스였다. 스프루일은 LG와의 와일드 카드 결정 2차전에서 9회 임창용을 구원해 김용의에게 끝내기 희생플라이를 맞았다.

공교롭게도 KIA의 정규리그와 포스트시즌의 마지막 투수가 된 스프루일은 두 자리 승수를 기록하고도 재계약에 실패했다. 하지만 한국을 떠나 대만의 라미고 몽키스로 이적한 스프루일은 2017년 15승 4패 ERA  2.56 150탈삼진으로 다승 3위, 평균 자책점과 탈삼진 2위에 오르며 최고의 시즌을 만들었다. 비록 한국에서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스프루일은 대만에서 2년 연속 우승반지를 차지하며 아시아에서 좋은 기억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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