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의 자존심 '손흥민이 차범근의 유럽 통산 최다 골 기록을 넘어서며 한국 축구의 새 역사를 썼다. 손흥민은 7일 오전 5시(현지 시각)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라이코미티히 스타디움에서 열린 츠르베나 즈베즈다와 2019-2020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조별 라운드 4차전에서 멀티 골을 몰아넣으며 4-0 완승을 이끌었다. 한국인 선수로서 유럽 무대에서 넣은 122, 123번째 득점으로, 종전까지 차범근 전 국가대표팀 감독이 보유하고 있던 한국인 유럽 최다 골 기록(121골)을 새로 쓰게 됐다.

손흥민과 그의 성장을 지켜봐온 한국 축구팬들 입장에서 모두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2010-2011시즌 앳된 티가 가시지 않은 18세의 나이로 독일 함부르크 1군 팀을 통하여 처음 프로에 데뷔했던 풋풋한 유망주가 차근차근 성장을 거듭하며, 정확히 10년 만에 한국축구 역사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등극한 것이다.

손흥민은 함부르크에서 78경기 총 20골, 바이어 레버쿠젠에서 87경기 29골을 기록했으며 2015-2016 시즌 현재의 토트넘으로 팀을 옮긴 이후로는 총 202경기에서 74골을 기록 중이다. 대회별로 놓고보면 리그 경기가 역시 85골로 가장 많고, 유럽클럽대항전 22골(챔피언스리그 17골), 그 밖에서 각종 컵대회에서 16골을 기록했다.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맹활약한 차범근은 1978년 다름슈타트를 시작으로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바이어 레버쿠젠을 거치며 1988-1989시즌까지 총 372경기 121골을 기록했다. 차범근은 군복무 문제로 26세였던 1979년부터야 본격적으로 유럽무대에 뛸수 있었다. 10대 유소년 시절부터 유럽무대에서 활약한 손흥민은 아직 27세로 현역으로 뛸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은데다 아시안게임 병역혜택으로 군문제도 해결하며 더 많은 기록을 쌓을 수 있게 됐다. 현재도 손흥민의 경기당 득점 페이스가 차범근 전 감독보다 빠른 것을 감안하면 한국인 선수 최초로 유럽무대 통산 200골 기록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야말로 한국축구 입장에서는 역사적인 날이었지만 정작 주인공인 손흥민은 마음껏 웃지는 못했다. 손흥민은 지난 에버턴과의 리그 경기에서 상대 선수 안드레 고메스에게 백태클을 가했다가 심각한 부상을 입히는 빌미를 제공하고 퇴장당했다. 당시 손흥민은 고메스의 부상 상태를 확인한 이후 눈물을 쏟으며 크게 충격받은 모습을 보였다. 정신적으로 크게 흔들린 손흥민이 과연 3일만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그라운드에서 축구에 집중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시선도 있었다.

다행히 손흥민은 우려를 불식하듯 경쾌한 몸놀림을 선보였다. 분위기 반전이 절실하던 토트넘은 반드시 승리가 필요했던 즈베즈다 원정에서 손흥민에게 휴식 대신 출전을 선택했고 결과적으로는 그 판단이 옳았다. 축구장에서 받은 트라우마는 축구장에서 떨쳐내야 한다는 것을 증명하듯 손흥민은 내내 헌신적인 플레이로 프로다운 집중력을 보여줬다.
 
 7일 오전(한국시간) 열린 츠르베나 즈베즈다(세르비아)와의 2019-2020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조별리그 B조 4차전 원정 경기에서 손흥민이 득점에 성공한 뒤 두손을 모아 잠시 기도하는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7일 오전(한국시간) 열린 츠르베나 즈베즈다(세르비아)와의 2019-2020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조별리그 B조 4차전 원정 경기에서 손흥민이 득점에 성공한 뒤 두손을 모아 잠시 기도하는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눈에 띄는 것은 득점 이후 손흥민이 보여준 세리머니였다. 평소 골을 넣고 역동적인 세리머니로 기쁨을 표현하던 손흥민이었지만 이날은 자신의 첫 번째 득점 이후 차분한 표정으로 중계 카메라를 향해 손을 모으며 마치 기도하는 듯한 동작을 선보였다. 지난 경기에서 자신의 태클로 인해 큰 부상을 입은 고메스를 향한 사과의 뜻이 담겨 있었다는 분석이다. 손흥민의 신기록 달성에 환호하던 국내 팬들도 절로 숙연해지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고메스는 부상 직후 무사히 수술을 마치고 현재는 퇴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몇일간은 손흥민에게는 굉장히 힘든 순간이었겠지만, 한편으로는 성찰의 계기가 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고메스의 부상은 고의성이 없는 불운한 사고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감정적이고 미숙한 백태클로 상대 선수의 커리어를 망가뜨릴만한 위험한 장면을 초래한 것은, 앞으로도 평생 '마음의 빚'으로 손흥민이 짊어지고 가야할 몫이다.

또다른 관점에서 이번 사건을 통하여 확인할수 있었던 것은, 손흥민이라는 선수가 주변으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에서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손흥민을 비난하는 목소리는 거의 찾을 수 없었다. 고메스의 부상은 불운한 사고였지만, 누구도 손흥민의 고의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팀 동료는 물론이고 상대팀 선수와 언론, 전문가들까지도 "손흥민은 그런 식의 행동을 저지를 선수가 아니다"라는 것이 보편적인 반응이었다. 

차범근 전 감독이 오늘날까지도 한국축구의 영웅으로 존경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세운 빛나는 업적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벌써 30년도 넘은 옛날 일이고, 요즘 젊은 팬들은 차범근의 현역 시절을 보지도 못한 사람이 대다수다.

하지만 차범근은 한국축구에 대한 변함없는 헌신과 애정, 성실하고 너그러운 인품, 심지어 과거의 상처까지 포용해내는 대인배 기질 등이 시간이 흐를수록 재조명되며 환갑이 넘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전설'로 남아있다. 현역 시절 겔스도프에게 척추를 다치는 큰 부상을 당하고도 보복하지 않고 용서한 일화는 지금도 유명하다. 

오늘날 국민들이 누구보다 손흥민을 열렬히 응원하고 있는 것도, 단지 골이나 기록에만 열광해서가 아니다. 깨끗한 사생활과 철저한 자기관리, 겸손한 인품과 태도 등 모든 면에서 현역 시절의 차범근에 견줄만한 '모범적인 슈퍼스타의 정석'을 걸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손흥민이 지난 몇일간 힘든 시간을 겪고 있는 중에도 많은 팬들은 손흥민의 인성과 진심을 의심하지 않고 변함없는 응원을 보냈다.

어느 때보다 희비가 극명하게 교차한 지난 한 주는 손흥민에게 자신의 축구인생을 한번 되돌아보게 만드는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손흥민의 축구는 앞으로도 계속 되어야한다. 손흥민이 순수한 '초심'을 잊지않고 묵묵히 최선을 다한다면 팬들도 항상 변함없이 손흥민을 응원하고 지지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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