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스틸컷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우여곡절이 많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공식적인 첫 영화임에도 감독 권한을 얻기 위해 최소한의 이익을 가져간 영화다. 1편의 성공 후 액션 영화의 역사를 다시 쓴 <터미네이터2: 심판의 날>이 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그 후 제작사 교체, 감독 사임, 배우 교체 등 여러 구설수 속에서도 3편의 시리즈가 완성됐지만 아성에 도전할 만한 영화는 없었다.

터미네이터의 공식 승계 시리즈-제임스 카메론, 팀 밀러, 텐센트

28년을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3, 4, 5편의 이야기는 논외다. 중국 기업 텐센트가 지분을 인수하며 제임스 카메론 감독에게 트릴로지(3부작)를 제안했고 제작 및 각본 참여를 하며, 연출은 <데드풀>의 '팀 밀러'에게 맡긴다. 텐센트의 자본과 제임스 카메론의 명성, 최근 주가를 올리고 있는 팀 밀러 감독의 연출이란 삼각편대가 시너지를 일으켰다.

그러니까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터미네이터2: 심판의 날> 이후 이야기로 쓴 정통 속편 3부작의 첫 타자다.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신구세대의 완벽한 세대교체를 시도했다. 여성, 다문화 사회를 향한 질문도 던진다. 이를 위해 사라 코너 역의 린다 해밀턴과 또 다른 T-800인 아놀드 슈왈제네거를 소환한다. 과거의 영광과 새로운 시대의 아이콘이 한 영화에 등장하며 협업하기에 이른다. 이 정도의 설정이라면 <터미네이터2: 심판의 날>을 접어버린 아쉬움을 만화할만한 스토리텔링이다.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스틸컷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추억을 소환하는 장면은 곳곳에서 포착된다. 미래에서 온 슈퍼 솔저 그레이스(멕켄지 데이비스)가 알몸으로 왔다가 옷 한 벌을 걸친다. 업그레이드된 인공지능 Rev-9(가브리엘 루나)도 알몸으로 와서 옷 한 벌을 획득하는 장면은 시대 변화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인간과 기계의 결합인 강화 인간 그레이스와 이원화로 효율적인 전투가 가능한 Rev-9의 발전된 행동을 보는 재미도 있다.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드>는 신구세대를 아우르는 스토리와 구성, 메시지가 탁월한 영화다. 심판의 날 이후, 새로운 T-800의 죄책감을 연료 삼아 재구성한다. 인류를 살렸지만 자기 아들은 지키지 못한 '사라 코너(린다 해밀턴)'는 미래에서 온 터미네이터를 처단하는 일로 살아가고 있다. 한 편, 새로운 인류의 희망인 '대니(나탈리아 레이즈)'를 지키기 위해 온 그레이스는 막강한 터미네이터 Rev-9의 추격을 받고 있다.

그동안의 시리즈의 서사를 파괴하지 않으면서 시대의 기류를 적절히 반영한 처사가 반갑다. <터미네이터>에서는 인류의 마지막 희망을 낳을 어머니를 제거하기 위해 터미네이터가 급파되었다. <터미네이터: 심판의 날>에서는 어머니를 제거하지 못하자 아들 존을 죽이기 위한 추적이 계속되었다.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에서는 미래를 구할 리더로 새로운 여성 리더를 세운다.

인류를 구한 희망은 지금의 나-그레이스, 사라 코너, 대니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스틸컷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 속 그레이스는 미래의 리더 대니를 지키기 위해 왔다. 그레이스를 맡은 맥켄지 데이비스는 중성적이며 기계적인 느낌을 제대로 살렸다. 실제 군사 훈련을 받았다고도 알려진 그레이스의 액션은 영화의 모든 것이라고 할 만큼 강력하다. 처음 시작부터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긴박하고 화려하게 진행된다.

그레이스가 대니를 구하기 위한 여정이 계속된다. 하지만 막강한 Rev-9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오로지 죽기 살기로 도망치는 것뿐이란 말에 허탈해진다. 거듭되는 쫓고 쫓기는 액션의 텐션이 커질 때쯤, 사라 코너가 등장한다.

이로써 그레이스와 사라 코너, 대니의 여성 삼각편대가 이루어진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T-800은 추억 팔이를 위한 계륵에 불과했다. 충분히 세 캐릭터가 발휘하는 힘과 연대는 영화를 이끄는 주축이 된다. 신세대 캐릭터 그레이스는 강화 인간으로 전투에 특화된 사이보그다. 상처를 받으면 치유해야 하는 반영구 상태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감정 없이 오로지 명령에만 따라 움직이는 로봇이 아닌, 기계화된 군인인 셈이다. 스스로 운명을 선택하고 조절할 줄 알기에 연민이 생기며 감정이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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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사라 코너는 그동안 쌓아온 분노와 속죄를 스스로 다독이며 세월의 풍파를 맞아왔다. 아들을 구하지 못한 죄책감에 시달리며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캐릭터다. 사라 코너는 평범한 여성에서 운명에 맞서 여전사로 진화한 대표 여성 캐릭터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세상을 등지고 외로운 궤도에서 살아가는 강인한 여성으로 존재감을 과시한다.

사라 코너의 등장으로 영화의 정통성과 새로운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에이리언> 시리즈의 '리플리(시고니 위버) 만큼의 시대를 앞서간 여성 캐릭터다. 한결같이 운명을 개척할 줄 아는 모습이 현대 여성 트렌드, 히어로 캐릭터와 맞물린다.

솔직히 여성 관객으로서 적지 않은 쾌감을 느꼈다. 기존 시리즈가 터미네이터를 없애고 지구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남성이거나 남성을 낳을 수 있는 어머니였다면. 수동적이건 모성본능으로 획일화되던 여성의 이미지를 독립과 자립의 캐릭터로 승화했기 때문이다.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스틸컷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이에 그레이스는 '너는 미래를 구할 영웅의 어머니가 아닌, 미래 그 자체다'라는 말을 남긴다. 그 영웅은 현 미국이 국경 장벽을 세운 '멕시코' 출신 여성이다. 멕시코 공장 직원인 대니는 남동생의 일자리가 하루아침에 기계로 대체되는 상황에 격분한다. 자본주의는 값싼 인건비를 위해 아시아나 남미로 눈을 돌렸고 급기야 기계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어떤 일이든 가만히 있으면 미래는 변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은 해결되지 않아 보이는 움직임일지라도 세상을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는 어두운 미래를 그려보는 상상력,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영화였다. 그렇다. 미래는 정해진 것이 아니다. 언제든 의지로 바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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