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레터> 김수연

<팬레터> 김수연ⓒ 라이브㈜


 
"제가 받은 '팬레터'에는 관객들의 응원이 가득해요. 배우 김수연을 사랑하고, 지지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늘 감사하죠. 매 작품 속, 제가 맡은 인물과 어울리는 꽃을 선물해 주는 분도 계세요. 저를 믿고 차기작을 기다리는 분들의 말씀에 늘 힘을 얻어요. 좋은 작품으로 찾아뵙고 싶은 마음이 늘 들어요."
 
뮤지컬 배우 김수연이 자신이 받은 '팬레터'를 떠올리며 이 같이 말했다. 관객들의 마음이 담긴 '팬레터'를 향한 보답이, 뮤지컬 <팬레터>에 닿은 셈이다. 2016년 초연, 2017년 재연에 이어 세 번째로 관객들을 찾은 <팬레터>는 1930년대 자유를 억압하던 일제강점기 시절을 바탕으로 한다.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문인 이상과 김유정의 에피소드를 모티브로 사실에 상상을 더한 작품이다.
 
길었던 머리를 싹둑 자르고, 히카루가 된 김수연을 지난 10월 25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 카페에서 만났다.
 
"워낙 재밌고 좋은 작품이라, 처음엔 부담도 되고 긴장도 됐어요. 하지만 인물에 빠져들수록 점점 재미를 느끼고 있어요. 히카루는 욕망 덩어리로 보일 수 있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히카루는 글을 쓰고 싶은 세훈의 욕망에서 태어났기 때문이 아닐까요."
 
히카루는 세훈의 필명이자, 그의 또 다른 자아다. 글을 쓰고 싶은 세훈의 욕망이 히카루를 탄생시킨 것이다. 글을 쓰는 것 조차 쉽지 않았던 시절,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글을 써야 했던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히카루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인물로서 표현하는 데에는 오히려 더 자유로워요. 처음 등장에는 여성인지, 남성인지 알 수 없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조금씩 색을 갖기 시작하죠. 2막에 들어서면 '악'(惡)이라고 느낄 수 있고 욕망 덩어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여러 성격을 드러내다 보니 어렵지만, 그만큼 더 재밌어요. 인물의 성격이 정답처럼 정해진 게 아니라, 그만큼 '김수연' 저만의 히카루를 채울 수 있기 때문이죠."
 
자신을 투영해 히카루를 채우고 있다는 김수연. 히카루와 닮았다고 느끼는 지점은 어디일까.
 
"누구에게나 있는 면모일 수 있지만, 저 역시 욕심이 많아요. 하나에 꽂히면 주위가 안 보일 정도로 푹 빠져요. 그런 부분이 히카루와 맞닿아 있어요."
 
이번 시즌 히카루는 초연부터 오르고 있는 김히어라와 소정화가 함께 한다. 이번에 <팬레터>에 합류하게 된 김수연은 "언니들이 엄청 잘 챙겨준다. 언니들이 없었으면 안 됐을 것"이라고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팬레터> 히카루 김수연

<팬레터> 히카루 김수연ⓒ 김진선

 
<팬레터>는 문학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 차 있는 정세훈이 동경하는 작가 김해진에게 보낸 팬레터를 계기로 칠인회라는 문인모임에 들어가며 시작된다.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의 순수한 열정 뿐 이니라, 작품에 힘을 더하는 넘버 또한 작품의 매력으로 꼽힌다. 김수연이 생각하는 <팬레터>의 매력은 '스토리'다.
 
"작품의 '쇼'적인 부분도 좋지만, 잔잔하면서도 마음을 파고드는 스토리가 힘이라고 생각해요. 섬세한 감정 라인 때문인지, 연습할 때 저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라고요. 그냥 보다보면 가사나 장면 등이 마음을 저릿하게 해요. <팬레터>는 문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사랑이 느껴지는 작품이에요. 문학만을 생각하고 사는 칠인회 사람들의 모습이, 작품에서는 '인간적'으로 담겼어요. 우리와 똑같이 무언가를 사랑하고, 지키기 위해 두려움을 느끼고, 또 살아가는 모습이 그렇죠. 작품 안에 사건, 사고가 있지만 결과적으로 동경, 사랑하는 선생님을 만나는 순수한 마음이잖아요. 참 따뜻해요. 그런 마음이 마음을 울리죠."
 
죽음을 앞둔 해진이 글을 쓰는 모습에, 세훈은 그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려고 하지만, 히카루는 이를 제지한다. 이 같은 모습은, 해진을 향한 히카루의 마음에 물음표를 던진다. 김수연은 어떤 마음으로 이 장면을 마주하고 있을까.
 
"히카루는 해진 선생님의 글을 사랑했어요. 글을 계속 쓰게 하려는 마음 역시 해진 선생님을 위한 거고요. 다른 답은 없는 거예요. '이렇게 해야 돼!'라고 마음먹은 거죠. 해진, 세진 등 모두를 위한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세훈은 해진 선생님을 사랑했어요. 그래서 마음속에 부딪힘이 생기고, 그를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는 거죠. 글을 사랑하는 순수한 문학 소년 세훈에게 히카루는 심장 같은 존재예요. 글을 쓰고자 하는 욕망이 꺼내져서, 날 생선처럼 펄떡거리는 듯 생생하죠. 히카루가 나쁜 게 아니라, 글을 향한 집착으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던 거예요. 그런 마음에도 세훈이는 해진 선생님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히카루라는 존재를 없앨 수밖에 없었고요. 더 큰 마음을 마주한 거겠죠?"

김수연의 방향은 또렷했다. 작품과 인물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 흔적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같은 상황 속 히카루가 아닌 김수연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릴지 궁금해졌다. 죽어가는 해진을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일지 말이다.
 
"윤이가 '형 이러다 죽어'라고 하니까, 해진 선생님이 '상관없다'라고 하는 장면이 있어요. '글을 쓰는 게 가치 있고 숨 쉬는 일이다. 숨만 붙어 있다고 살아있는 게 아니라, 영혼이 숨을 쉬려면 글을 써야 한다. 히카루가 도와준다'라고요. 이 말에 윤이가 해진 선생님 손에 다시 펜을 쥐어주죠. 그런 그를 이해한다면, 며칠 더 못살더라도, 영혼을 불태우라고 응원해줄 거 같아요."
 
해진에게 글을 쓰는 게 숨을 쉬는 듯한 '살아있는 것을 느끼게 하는 순간'이라면, '김수연을 숨쉬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무대에 서는 거예요. 인물에 다가가고, 연기하는 과정에서 제 감정이 해소되거든요. 인물의 고민, 장애 등에 저도 온전히 함께 한다는 것에요. 매 작품마다 그러는 것 같아요. 그래서 배우를 한다고 하던데, 그 '맛'을 보려고요."
 
김수연 역시 그 '맛'을 맛보았다고. 히카루와 하나가 된 셈이다. 끝없는 고민과 연습이 가져다준 '달콤함'이다.
 
"머리가 아닌, 연습과 감정을 통해 저도 모르게 '짠'하고 히카루의 행동을 할 때요. 대본이나, 정해진 약속 안에서 습득했던 것들 안에서, 히카루가 '뿅'하고 나타난 거죠. 히카루의 몸으로 행동을 하고, 히카루의 입에서 히카루의 말투로 히카루가 내뱉을 말을 하는 거예요. 김수연이 아닌 거죠. 그렇게 되려면 정말 많은 연습이 필요해요. 잡념이 들면 히카루는 달아나 버리죠."

팬레터를 써본 적 없다는 김수연. 만약 누군가에게 쓴다면 어떤 내용을 담을까. 단번에 배우 조정은을 떠올렸다.
 
"정말 좋아하는 분이에요. 너무 아름다우시잖아요! 목소리가 꽃등심 같아요. 사르르 녹고, 담백하고 고소하고, 푹 빠져들 수밖에 없잖아요. 저도 조정은 선배님처럼 되고 싶어요. 선배님 공연을 보면 계산을 안하게 돼요. 직업상, 무대며, 동선, 넘버 등을 집중하게 되는데, 모든 걸 잊고 빠져들게 하는 힘이 있죠. 정말 행복하고 황홀해져요. 팬레터를 쓰면 '꼭 작품에서 만나고 싶습니다'라고 쓸 거 같아요."
  
 <팬레터>포스터

<팬레터>포스터ⓒ 라이브㈜

 
문학을 사랑하고, 누군가를 동경한 이들의 이야기로 <팬레터>는 많은 이의 공감을 자아내는 작품이다. 누구나 한 번 쯤 느꼈을 순수한 감정을 이끌어내기 때문. 김수연 역시 <팬레터> 속 인물들의 감정을 누구보다 깊게 이해하고 있었다. 이는 히카루의 감정을 힘 있게 담을 수 있는 힘이 됐고, 내년까지 이어지는 <팬레터>에서 김수연을 눈여겨 봐야할 이유가 됐다.
 
"문학이라는 굴레가 아니더라도, 모두에게 사랑하는 게 있을 거예요. 해진 선생님, 세훈에게는 자신이 미칠 정도로 빠져들, 사랑하는 대상이 있었던 거잖아요. 저 역시 무대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어요, 얼마나 소중한 감정인지요. '내일 죽는다면, 난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라고 자문할 때 있어요. 행복한 감정이 무엇일까, 무얼 위해 살아야 할까, 고민도 많이 하죠.

하지만 내일 죽는다고 해도 후회가 될 거 같지 않을 거 같더라고요.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꿈을 이루는 진행 과정에 있는 지금이 너무 좋아요. 저를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고, 제가 사랑할 일이 있으니까요. 그 자체가 원동력이고, 행복이더라고요. 관객들도 <팬레터>를 보고, 마음에 품은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작품에 담긴 뜨거움, 순수함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팬레터>는 7일부터 내년 2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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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전문 프리랜서 기자입니다. 연극, 뮤지컬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 전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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