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 82년생 김지영 >의 한 장면

영화 < 82년생 김지영 >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해 질 녘이 되면 가슴이 툭 내려앉는다. 공허한 눈빛으로 창밖을 바라본다. 종종 다른 사람이 된다. 할머니에서, 어머니 미숙으로, 어머니에서 또 지영으로.

'김지영'은 이름과 목소리를 잃어버린 여성의 이름이다. 영화 속 그녀가 겪는 고통은 결코 맥락 없이 등장한 판타지가 아니라, 지극히 사회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원작의 독자들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긴 '빙의'는 과거와 현재를 매개하는 장치다. '도저히 안 되겠다'며 터져 나온 여성의 목소리다. 지영의 삶은 단순히 개인의 것이 아니라 여성 혐오, 가부장제의 유구한 역사가 만든 결과다.

원작 소설이 그랬듯, 영화는 여성들이 겪는 다양한 사례들을 소개한다. 지영이 겪는 '경력 단절'은 물론, 고정된 성 역할 규범에 막혀 자신의 삶을 펼치지 못 하는 아이 엄마들, '능력자'로 분류되는 김 팀장조차 무릎 꿇게 하는 '유리 천장', 화장실에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불법 촬영에 대한 공포 등을 메인 스토리에 엮어냈다. 첫 장편 영화를 연출한 김도영 감독의 솜씨가 여기서 빛난다. 적절한 타이밍에 '플래시백'을 활용하면서, 단순한 사례 모음집에 그치지 않을 수 있었다. 오히려 지금의 '김지영'이 어떤 경험들을 통해 만들어졌는지를 가까이 다가오게 하면서, 보편성을 획득한다.

포스터만 보아도 알겠지만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김지영이다. 그러나 지영의 남편 '79년생 정대현'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극중의 대현은 꽤 선한 사람으로 보인다. 그는 '회사 일'을 마치고 돌아와 아이를 씻겨 주고, 눈물을 흘리며 아내를 걱정한다. 지영의 짐을 덜어 주겠다며 육아 휴직을 고민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대현은 '아이를 낳으면 많은 것이 바뀔 것'이라고 걱정하는 지영을 이해하지 못 한다. 복직 소식에 들떠 있는 지영에게 웃음으로 화답하지 못 한다. 작은 단어 선택에서도 입장의 차이가 드러난다. 육아를 '함께 하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도우면 되지 않느냐'고 말한다. 대현을 악마화하지 않은 것은, 오히려 이 영화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선한 사람'도 구조의 수혜자 혹은 상대적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원작 소설도 받았던 비판이지만, 이 영화가 중산층-고학력-기혼 여성의 경험에만 국한되지 않았냐는 비판을 보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지영과 다른 삶을 사는 여성을 '지운' 것이 아니다. < 82년생 김지영 >이 '모든 한국 여성'의 동의어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확실한 것이 또 있다면, 중산층을 포함한 어떠한 계층에서나 차별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다양한 층위의 차별을 조명하는 상업 영화들이 등장하기를 기대한다.

현실과 공명하는, '김지영'의 물음.
 
 영화 < 82년생 김지영 >의 한 장면

영화 < 82년생 김지영 >의 한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왜 많은 여성들이 이 영화를 보고 눈물을 흘리고, 연대 의식을 공유하는 것일까. 이 영화 속 지영과 어머니가 나누는 울음은 어디에서 왔는가? <82년생 김지영>은 여러 순간 현실과 공명한다. 현실이 내는 파열음을 고칠 수 있는 것은 '싸우지 말자'와 같은 구호가 아니다. 따뜻한 가슴을 간직한 채, 동시에 날카로운 문제 의식을 갖춰야 한다.

김지영을 연기한 배우 정유미는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정말 용기를 내야 할 일이 따로 있다는 건, 자신의 목소리를 내시는 분들을 향한 말이다"라며 목소리를 내는 이들에 대한 연대와 응원을 보냈다. 이 영화는 각자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작품이며, 동시에 개인의 역할을 고민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최소한, 지영이 학창 시절 버스에서 만난 아주머니(염혜란)처럼 스카프를 내밀 수 있는 사람은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은 300만 관객 돌파를 앞두고 있지만, 이 영화는 개봉을 앞두고 안티 페미니스트에 의해 비상식적으로 매도당했다. 영화의 원작 소설 < 82년생 김지영 >(조남주)은 여성을 세뇌시킬 수 있는 '금서'로 악마화되었다. 한 걸그룹의 멤버가 이 소설을 읽었다고 했을 때, 욕설이 빗발쳤던 광풍은 영화로도 이어졌다. 영화 개봉 전에 가하는 평점 테러가 대단한 유희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50년생이면 몰라도 80년생이 무슨 차별을 겪느냐'며, '고통이라는 것은 다 모아 놓은, 이런 삶이 존재할 수 있느냐'며 비아냥거리는 여론도 있었다. 그런 자들에게 김지영씨는 '맘충'을 운운하는 이들에게 말했듯, 이렇게 일갈하지 않을까.

 "이보세요, 저를 아세요?" 

영화가 시작될 때, 베란다에 서 있었던 지영의 눈빛은 텅 비어 있었다. 그러나 영화의 말미 지영의 얼굴에는 희미한 미소가 서려 있다. 마침내 이름과 목소리를 되찾았기 때문이다. 씁쓸하고 냉소적인 뒷맛을 남긴 소설과 비교하면, 비판의 칼날이 무뎌졌다. 상업 영화로서의 타협을 어느 정도 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역사의 진보'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해보는 것은 어떤가. 그렇게 김지영은 당신에게 걸어온다.

이 세상 모든 김지영의 삶에 봄바람이 불기를,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신이 그린 삶의 그림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는 희망.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이현파 시민기자의 브런치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https://brunch.co.kr/@2hyunpa/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대중 음악과 공연,영화, 책을 좋아하는 사람, 스물 일곱. http://blog.naver.com/2hyunpa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