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편집자말]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 메인 포스터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 메인 포스터ⓒ (주)NEW


01.

사랑의 감정은 그 과정을 지나고 있는 이의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어쩐지 이미 정해져 있는 것들이 있는 것 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 정식으로 만나기 전에는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지, 또 헤어지고 난 다음에는 얼마의 시간이 지나야 다른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지. 결혼 적령기에(그런 것이 정말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들어선 사람들에게는 만나고 얼마가 지나면 미래를 약속하는 말을 서로에게 해야하는지와 같은 것들 말이다. 그래서일까?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에서 선영(공효진 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난 그런 거 누가 정하는지 모르겠어."

김한결 감독의 신작 <가장 보통의 연애>는 술의 힘을 빌려서라도 과거의 상처를 적극적으로 지워보려는 남자 재훈(김래원 분)과 자신의 과거를 완전히 숨겨 아무렇지도 않은 듯 살아가고자 하는 선영의 미묘한 관계를 그리는 작품이다. 두 사람의 비슷하면서도 다른 모습은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이 자신의 것뿐인 줄 알았던 20대의 모습과 달리, 그런 한낱 감정으로는 결코 무너뜨려서는 안 될 사회적 지위와 이미지, 평판과 결부되어야만 하는 것처럼 보이는 30대의 사랑을 표현해낸다.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 스틸컷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 스틸컷ⓒ (주)NEW


02.

영화의 시작과 함께 관객들에게 가장 먼저 주어지는 정보는 선영과 재훈, 두 사람이 현재 연애에 있어 어떤 문제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재훈은 청첩장까지 돌린 여자와 파혼을 한 뒤 그 충격을 잊기 위해 매일 술을 마신다. 술에 취해 주사를 부리는데, 그 주사라는 것이 전 여자친구에게 끊임없는 연락을 시도하는 것과 길가에 보이는 모든 물건을 주워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이다. 이제 막 광고 회사로 이직한 선영 또한 입사 날 아침부터 바람이 난 남자친구와 헤어진 일로 볼썽사나운 상황을 맞이한다. 아침부터 회사로 찾아온 남자가 협박과 용서를 함께 구하며 진상을 부리는 것. 두 사람은 그렇게 처음 만나게 된다.

두 사람에게 차이가 있다면 그 문제를 바라보는 태도에 있다고 해야 할까? 자신에게 남은 감정을 있는 그대로 쏟아내는 재훈과 달리, 선영은 거짓말을 해서라도 자신의 과거를 드러내지 않길 원한다. 완성되지 못한 연애의 조각을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아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람들의 마음이라 하더라도, 그녀의 태도에는 어딘가 모르게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강한 거부감이 느껴진다. 이로 인해 여전히 진짜 사랑을 갈구하는 남자와 사랑에 깊은 의미를 두지 않는 듯 보이는 여자의 이야기가 표면적으로 완성된다.

03.

표면적으로 완성되었다는 표현의 이면에는 실제로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다른 장면이 펼쳐진다는 뜻이 자리한다. 실제로 영화는 자신의 러닝타임을 소비하여 두 사람이 유사한 방향을 지향하고 있었음을 설명해 나간다. 겉으로는 이해를 하지 못하는 척 했지만, 선영 또한 과거에 지나간 사랑에 대해 재훈처럼 행동했던 기억이 있다는 점이 그 부분을 대변한다. 그러니까, 두 사람 가운데 어떤 인물이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지 또 어떤 인물이 감춰두었던 속을 드러내며 진실한 방향으로 나아가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하나의 인물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동안 다른 인물은 곁에서 그 작업을 조력하는 모습 자체가 하나의 로맨스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 영화 또한 그 화학적 작용이 관객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기를 바라는 쪽에 위치해 있다.

그 과정을 위해 설계한, 캐릭터의 대비와 상황의 충돌을 통한 이야기의 전개는 안정적인 장치다. 이 장치를 극대화하는 인물로 병철(강기영 분)을 제시하는 부분은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주인공의 친구, 주인공의 가족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다른 영화나 드라마에서 어떻게 소비되어 왔는지에 대한 설명은 굳이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이전의 다른 작품에서도 많이 활용되어 왔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이 보조적 수단으로서의 인물에게 어떤 무게를 부여할 것인가 하는 일. 코미디 장르의 전체적인 톤은 여기에서 좌우되기도 한다. 물론, 이 작품 <가장 보통의 연애>가 추구하는 방향은 로맨스 코미디와 코미디 사이의 미묘한 결. 그 결에 섹스 코미디를 가져다 입히고자 했던 방향성에 강기영이라는 배우의 캐스팅은 모자람이 없다.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 스틸컷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 스틸컷ⓒ (주)NEW


04.

서로의 명백한 입장 차이와 복잡하게 얽힌 과거의 상황들을 뒤로하고 서로에게 가서 닿으려는 두 사람의 마음을 지켜보는 일은 가슴을 동하게 하는 부분이 있다. 그 의도를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체 하고, 상대의 의중을 떠보기 위해 자신의 상태를 숨기기도 하는 모습들이 누구나 한번쯤 실제 연애의 과정 중에서 겪어봤을 법한 모습들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상대를 해하거나 속이려는 의도가 있다기 보다는 한 발 떨어진 지점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자 하는 의도로 귀엽고 사랑스러운 정도의 경계에서. 이 작품은 물론 이 작품과 유사한 장르에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고 할 것이다.

한편, 두 주인공의 과거에 달라붙게 되는 주변 인물들의 가십(Gossip)은 이 영화가 내포하고 있는 또다른 메시지가 된다. 재훈의 파혼은 물론, 선영에게 따라다니는 꼬리표까지.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정확히 알 수 없는 일들을 유희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이들의 반응이 이번 작품에서 꽤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이를 드러내는 과정은 영화의 결을 따라 유쾌한 듯 보이지만, 실제로 그 내용만 따로 짚어본다면 결코 그럴 수 없는 이야기. 작품의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는 이를 이해하게 되는 두 사람이 관계를 진전시키고 상황을 반전시키는 쪽으로 활용된다. 마침내, 두 사람은 같은 곳을 향해 바라볼 수 있게 된다.

05.

영화를 관람한 후에 다수의 관객들이 작품의 타이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영화 속 두 사람의 상황과 장면들이 어떻게 '가장 보통'의 연애가 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영화의 영문 타이틀에 담겨 있다. 'Crazy Romance'. 그러니까, 이 작품의 타이틀에 쓰인 '가장 보통'이라는 것은 일종의 반어적 표현으로 이들의 사랑이 결코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그런 연애를 통해서도 관객들이 공감하고 사랑의 감정을 떠올리기를 바랐던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이 글의 처음으로 다시 돌아간다. 보통의 연애라는 것이 세상에 있기는 한 걸까? 그 보통의 연애라는 것이 있다면 그 기준을 정하는 것은 과연 누가 되는 것일까?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사랑의 감정과 연애의 과정은 오롯이 그 관계의 주체가 되는 두 사람의 것이니까. 영화의 마지막에서 재훈은 선영에게 또 그렇게 도망칠 것이냐고 묻는다. 연애에 보통의 것이 있다면, 두 사람이 함께 마주서야만 한다는 것. 그것 하나뿐이지 않을까?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는 그렇게 두 사람을 마주 보게 한 뒤에야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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