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클로 후리스 광고 화면

유니클로 후리스 광고 화면ⓒ 유니클로

 
최근 한 편의 광고영상이 온라인상에서 물의를 일으켰다. 일본의 패션브랜드 유니클로가 제작한 광고다. 논란이 된 영상의 내용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비아냥거리는 뉘앙스로 해석되는 것 이외에는 다른 여지가 없어보였다. 유니클로가 지난 7월부터 이어지는 한일 간의 무역 분쟁의 여파로 한국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그 저의가 무엇인지 의심이 갔다.
 
현재 여론의 몰매로 슬그머니 광고가 중단되었지만 딱히 경영진이 공식 사과했다는 소식은 전해지지 않는다. 예의 우리나라의 네티즌들은 패러디 영상을 만들어 그 저속한 행태에 일침을 가했다. 피해 할머니의 목소리를 빌려 분명한 어조로, 그들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피멍처럼 남아 있는, 잊을 수 없는 과거임을 다시 한 번 상기 시켰다. 그럼에도 여전히 분한 마음은 가시질 않는다. 필자가 이럴진대 피해 당사자들의 마음은 오죽하겠나 싶다.
 
어느 모로 보나 유니클로 광고는 전쟁 성폭력 피해 여성들에 대한 모욕을 넘어 도발에 가깝다. 일부에선 과도한 해석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으나 광고영상을 톺아보면 그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피해자들을 조롱하고 자극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도대체 왜 지금같이 예민한 시기에 그런 악의적 광고를 내보냈는가라는 사실이다. 분명 한국의 여론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을 텐데 말이다.
 
유니클로 논란 접하며 떠오른 다큐멘터리 한 편

작금의 유니클로 광고 논란을 접하면서 떠오른 다큐멘터리가 있다. 2005년 우리나라 교육방송이 주최하는 국제다큐멘터리페스티벌 EIDF에 소개된 바 있는 자연다큐멘터리인데, 일본 국영방송국NHK에서 해외영화제 출품용으로 기획, 제작한 작품이다. 한국어 제목으론 '물의 정원 사토야마'로 소개되었다. 이후 'MBC 다큐스페셜'에서 한국어 더빙으로 재방영되기도 하였다.
 
다큐멘터리는 1년의 촬영기간을 두고 교토 인근 담수호인 '비와호'에 위치한 '하리에'라는 전통마을의 풍경과 주민들의 일상을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다. '상고로 다나카'라는 이름의 83세의 한 노인의 일상을 쫓아가다보면 어느새 사계절이 바뀌고 한 해가 지나간다. 다큐를 보고 있자면 자연의 주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한 편의 동화와도 같은 기록영상은 매일매일 변하지 않은 듯 변화하는 일상이야말로 감사로 가득한 축제의 장임을 상기시킨다.
 
내러티브는 늦은 겨울에 시작해서 봄, 여름, 가을을 거쳐 다시 겨울로 돌아와 마무리된다. 상고로와 그의 아내, 사실 그들 노부부는 주인공이 아니다. 그저 자연의 일부처럼 그 공간을 넉넉하게 부유한다. 현명한 노인은 호수에서 먹을 만큼만 고기를 잡고 어쩌다 잡힌 작은 고기는 배고픈 새들에게 나눠준다. 호수와 연결된 조그만 운하는 생명수를 마을에 공급하고 주민들은 소중한 물로 채소와 과일들을 가꿔 먹거리를 해결한다. 그리고 남은 음식 찌꺼기는 전통적으로 이어온 자연친화적인 방식으로, 인공수로의 관상용잉어들에 의해 분해되어 다시 순환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노인이 여유분의 물고기들을 겨울 먹거리를 위해 저장하는 장면이다. 오래 묵혀 발효한 생선요리 '후나스시(붕어초밥)'는 오늘날 스시요리의 원조라는 내레이터의 해설이 따른다. 봄에 소금과 밥을 섞어 절인 생선은 눈 쌓인 계절이 돌아와서야 노부부의 저녁상에 오른다. 그들 주변엔 당연하다싶게 이웃들이 함께한다. 그네들의 웃음소리에 겨울바람도 다소곳해지는 호수가 마을, 사람과 사람이 그리고 동물과 인간이 자연 속에 공생하며 지속가능한 대안사회의 모범으로서 '오래된 미래'의 한 전형으로 관객의 마음에 자리 잡게 된다. 이런 마을에 거주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한 번쯤 가보고 싶게 된다. 버킷리스트에 오르기에 충분한 장소임엔 틀림없어 보인다.
 
사실 제목 물의 정원 사토야마의 '사토야마'(里山)는 고유명사가 아니다. '마을 가까이에 있어 그 지역 사람들의 생활과 밀접한 산림지대'를 뜻하는 일반명사이다. 말하자면 일본 전체에 대한 일종의 환유장치로, 고유명사로서 하리에 마을은 일반명사 사토야마가 된다. 다시 말해서 사토야마는 일본 전체를 일컬음이다. 바로 이 점에서부터 다시 출발해 보면 다큐멘터리 '물의 정원, 사토야마'는 매우 이데올로기적 텍스트로 읽혀진다.
 
하얀 분칠 위에 자연스런 누드화장을 덧칠한 형국
 
유니클로 규탄 "우리가 기억한다" 대학생겨레하나, 평화나비네트워크 회원들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유니클로 광화문 매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최근 유니클로의 광고가 강제동원과 위안부 피해자들을 조롱했다며 규탄하고 있다.

▲ 유니클로 규탄 "우리가 기억한다"대학생겨레하나, 평화나비네트워크 회원들이 지난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유니클로 광화문 매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최근 유니클로의 광고가 강제동원과 위안부 피해자들을 조롱했다며 규탄하고 있다.ⓒ 유성호


앞서 기술한 대로, 이 다큐멘터리는 일본 국영방송국 NHK에서 해외영화제용으로 기획된 작품이다. 여러 해외영화제에 출품된 영어버전에서 내레이터의 음성은 노인의 것이다. 어진 목소리를 가진 할아버지가 아이들 옆에 앉아 구연동화를 읽어 주는 듯하다. 현명한 느낌을 주는 목소리는 또박또박 아름다운 마을을 소개하는데, 거기에는 자연친화적인 삶을 실천하는 소박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목가적인 오래된 미래가 펼쳐져 있다. 풍경의 서사엔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 호수, 잉어, 갈대, 장수잠자리, 다이콘(왜무), 유혈목이는 그 자체로 자연친화적인 삶을 사는 일본인과 일본을 은유한다.
 
문제는 '물의 정원 사토야마'가 제작 상영된 시점이 절묘하게도 '교토의정서' 발효 시점과 일치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맥락을 놓쳐서는 안 된다. 숨은 의도는 콘텍스트를 이해함으로써 간파할 수 있다. 전후복구경제로 장기간 제조국의 위상과 풍요를 누렸던 일본은 2005년 2월 16일 교토의정서가 공식 발효된 시점에 온실가스배출에 대한 규제에 앞장선 청정한 국가의 이미지로 포장된다. 하얀 분칠 위에 자연스런 누드화장을 덧칠한 형국이랄 수 있다.
 
물론 일본은 주변 환경이 깨끗하고 정리정돈이 잘 된 나라이다. 국민들의 공중도덕 역시 손꼽히는 나라이다. 옛것이나 전통 역시 잘 보존되었다. 국토의 75%를 차지하는 산악지대는 관리가 잘되어 있고 주변 환경이 청정한 편이다. 이러한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제조업 강국으로 절대적인 위상을 누려온 나라가 마치 탄소배출과는 상관이 없는 듯 짐짓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함이다.
 
EIDF 시사회에 참석한 패널들과 인터뷰하던 미주누마 마수미 감독을 기억한다.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촬영에 대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는 순간에도 그녀는 꿈꾸듯 힘든 제작시기를 상기하며 즐거워하였다. 감독이 진심으로 아름다운 물의정원 사토야마를 그려냈다는 점은 부정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작품 뒤의 스폰서들은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작품을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여야한다.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미디어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어처구니없게도 일본은 자국 산업보호를 이유로 2012년 교토의정서에서 이탈했다(미국은 2001년, 러시아-캐나다는 2012년 이탈). 2020년 만료되는 교토의정서를 대체하기 위해 2016년 발효된 것이 파리협정이다. 2021년 1월부터 적용되는 파리협정은 교토의정서와 달리 개발도상국도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 사이 선진국을 자처하는 '일본을 위시한 선점국'들은 산업체계를 전환하여 개도국을 따돌리고 기득권을 유지하였다. 의도된 기획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유니클로 광고도 맥락을 읽어야만 한다

같은 관점에서 유니클로 광고도 맥락을 읽어야만 그 저의를 해독할 수 있다. 굳이 지금 시점에 하필이면 그와 같은 도발적인 영상을 유포시키고 한국의 반응을 유도하는 숨은 의도는 바로 '한국이 국제협의를 깼다'는 일본의 주장을 쟁점화하고 서구를 상대로 그들이 구축해온 어떤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함이다. 그 이미지란 '피해자성'이다.
 
사실 일본은 오랜 기간에 걸쳐 2차 세계대전의 피해자라는 이미지를 어필하기 위해 애를 써왔다. '피해자성'에 대한 상징을 포기할 수 없기에, 따라서 난징학살을 인정하지 않고, 식민지수탈을 부정하고, 전쟁성노예제도 같은 범죄행위를 국가가 운영했다는 역사적 팩트를 왜곡한다. 그간 일본은 원폭의 피해자라는 인식을 장기간에 걸쳐 서구를 상대로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일본은 원폭으로 수십만 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나라임은 분명하다. 슬픈 역사를 가진 민족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일본군국주의 역사가 희석될 수는 없다. 그간 아시아사회에서 일본은 절대적인 가해자이기에 그 이미지를 탈색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서구를 향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을 경주해 전쟁의 패전국이 아니 피해국으로 스스로를 포장해 왔다. 이와 같은 전략은 세칭 '선택과 집중'이라는 마케팅 전략과 궤를 같이 한다. 지속적인 사과와 신뢰 회복의 노력을 경주하는 독일의 정책과는 정반대로 일본은 입장을 취했다. 그들의 판단엔, 어차피 회복되지 못할 가해자성을 원폭의 피해자성으로 포장하는 편이 더 수월했을지도 모른다.
 
보도에 의하면 유니클로 회장이 일본정부를 향해 볼멘소리를 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 속내는 한국시장의 포기한다는 선언으로 읽혀진다. 기왕에 한국을 포기할 바에, 해외 시장에 국가 간 모든 것을 청산했고 자신들은 더 이상 책임이 없다고 호소하는 편이 낫다는 판단을 한 듯싶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80년도 더 된 일을 어떻게 기억하냐?'는 문제가 된 해당광고의 한국어 번역은 일부 피해자들의 일방적인 기억과 주장일 뿐이라는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함이다.
 
일본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을 여러 매체를 통해 알리고 있는 호사카 유지 세종대학교 교수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영상의 상징성에 대해 자세히 분석을 했는데, '98세 노인의 설정'은 전범기업 미쯔비시로부터 배상판결을 받은 마지막 강제징용피해자 할아버지 연세와 같고, 한국어 자막으로 뜬 '80년도 전의 일'은 위안부동원이 시작된 시점으로부터 1년이 되는 시점과 일치하고, 또한 광고에 같이 출연한 만 13세 소녀는 당시 위안부로 끌려온 여성 중 최연소 나이였음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결코 과한 해석이 아니다. 충분히 그 의도를 잘 읽어냈다고 본다. 일본은 지금 상징게임을 하고 있는 중이다. 아니 상징전쟁이라고 함이 좋을 듯싶다.
 
이와 같은 상징 전쟁에서 우리 역시 우리의 피해 사실을 알리기 위해 피해자성에 숨는 일본의 의도를 간파하고 대응해야 한다. 그리고 피해 당사국인 아시아 여러 나라는 물론 서구를 포함한 세계에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전유의 방식으로 '미러링'한 패러디 영상은 그렇기 때문에 매우 유효한 대응이라고 할 수 있다(관련기사 : 유니클로 패러디 제작자 "너희도 느껴봐, 말하고 싶었다" http://omn.kr/1ldp2).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문화평론가이자 한림대학교 미디어스쿨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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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대학교 미디어스쿨 교수로 재직중이며, 현재 문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문화정치에 관한 칼럼을 아시아투데이에 연재중입니다. 출판한 저서로는 영화로 읽는 우리시회- 역설과 아이러니의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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