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지영의 남편 대현 역을 맡은 배우 공유.

"몰랐던 부분이 많지만 대현은 적어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자세를 가지려 했다. 그 마음이 있냐 없냐가 중요한 것 같다. 저도 딱 그 정도다." ⓒ 매니지먼트 숲

 
100만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 82년생 김지영 >은 포털 사이트 평점 테러에도 개봉 첫날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다. 저마다 이유가 있겠지만 낮은 평점의 주요 이유는 성별 갈등을 조장한다는 데 있다. 

영화에서 대현 역을 맡은 공유는 짐짓 담담했다. 논란이 논란을 만드는 흐름에 말 한마디가 조심스러울 수 있지만 개봉을 앞두고 서울 삼청동 모처에서 만난 그는 솔직하게 그리고 꽤 심사숙고하며 질문에 답했다.

"예상했던 대로 마음에 그렸던 대로 영화가 나와서 만족한다"며 그는 소감부터 전했다. 영화는 촉망받는 기획자였던 지영이 결혼 후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면서 몸과 마음을 다치고 이를 주변 사람들이 함께 자각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어떤 깨달음과 충격

원작과 달리 영화 속 대현은 지영의 상황을 내심 통감하고 함께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그게 온전히 이뤄지진 않는다. 그 역시 가부장적 시스템을 내재화하고 있고, 두 사람을 둘러싼 가족 역시 암묵적으로 거기에 동조하고 있기 때문. 다만 영화는 그를 비롯한 가족의 진심을 가리진 않는다. 공유가 시나리오, 그리고 영화를 본 뒤 "어떤 위로를 받았다"고 고백한 이유다.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본능적으로 가족이 떠올랐다. 그래서 다 읽자마자 바로 엄마에게 날 어떻게 키웠는지 물었었지(웃음). 제가 평소에 자주 연락하는 편이 아니라 좀 놀라신 듯했다. 엄마에게 두서없이 '시나리오를 보다가 울었지 뭐야 날 어떻게 키웠어?' 이러니, 되물으시더라. 그래서 '적어도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가지고 자란 것 같지 않아'라고 답했다. '그럼 내가 잘 키웠나 보네'라고 하시더라(웃음).  

영화를 보고 나서도 남녀 구분 없이 한 사람으로, 그리고 20년 가까이 배우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관계에서 느꼈던 상처를 쳐다보게 됐다. 영화 속 지영이가 받은 상처와 똑같진 않지만 본질적으로 다르진 않다고 본다. 아들로서, 부모로서, 사회에서 등 제가 해야 하는 역할이 있잖나. 분명 그 역할에서 쌓인 상처가 있더라. '다들 잘 넘어가는데 왜 너만 유독 그러냐'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아 속으로 삭이다가 혼자 상처받고 그랬던 것 같다." 

 
 영화 <82년생 김지영> 장면

영화 <82년생 김지영> 장면 ⓒ 롯데엔터테인먼트

 
공유는 보다 넓게 보고 있었다. 성별 갈등이 아닌 우리 사회 전반에 자리한 상처 주는 자와 받는 자들. 그는 "어쩌면 시대와 사회 문제일 수 있다"며 말을 이었다.

"제가 자식을 키워보지 않아 잘 몰랐던 부분이 있던 것 같다. 이전 시대를 살아온 부모가 자식을 키운다는 건 이전 시대의 안 좋은 점과 부당한 가치를 대물림하지 않는 것도 포함되지 않을지. 적어도 제 부모님은 제가 이전 시대보단 나은 선택을 하게끔 키워주신 것 같더라. 감사했다. 그래서 < 82년생 김지영 >은 가족에게 꼭 보여드리고픈 영화다. 김지영을 따라가다 보니 주변 사람들 모습이 보이고, 어디서 많이 본 사람들 같을 것이고, 우리 사회가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제겐 그렇게 자연스럽게 영화가 다가왔다.

이 이야기에 대해 느끼는 건 79년생이나 82년생이나 크게 다르진 않을 거라 생각한다. 제가 부산이 고향이고 아버지 역시 전형적 부산 분인데 생각보다는 가부장적이진 않았다. 어렸을 때 저도 물론 여러 상황을 보며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게 있었지만 권위적인 것에 대한 반감은 있었던 것 같다. 제사 지낼 때 남녀가 따로 밥을 먹는 것이라든지 말이다. 제가 직장생활을 하는 게 아니라 회사 조직의 생리는 정확히 모른다. 다만 충격이었던 건 영화에 '맘충'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그걸 처음 알았다는 사실이다. 감독님께 진짜 사람들이 쓰는 말이냐고 물었는데 그렇다더라. 제가 무지했던 거지."


공유의 속마음

이처럼 소설과 영화를 둘러싼 외적 논란에서 그는 비교적 자유로웠다. 물론 아주 의식을 안 한 건 아니다. 공유는 "그런 (젠더) 갈등이 존재할 수 있다고 본다"며 "다만 일방적인 비난은 제 상식에서는 그리 가치 있어 보이지 않는다"고 나름의 생각을 밝혔다. 

"남성으로서 제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특권을 누렸는지 정확하게 인지하진 못한다. 제가 모르거나 (차별을) 당해보지 않았거나 그 사이겠지. 하지만 특권이 있을 거라고 본다. 콕 집어서 말은 못 하겠지만 말이다. 영화 속 대현이 언뜻 좋은 남자로 보인다. 제 해석이 아니라 보신 분들 이야기다. 저 정도면 훌륭한 남편이다라고 하는데 지영이는 속으로 힘들어하잖나. 제가 딱 그 수준이다. 

몰랐던 부분이 많지만 대현은 적어도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자세를 가지려 했다. 그 마음이 있냐 없냐가 중요한 것 같다. 저도 딱 그 정도다. (성차별, 유리 천장 등에 대해) 몰랐던 부분도 많다. 제가 훌륭한 사람은 아니지만 마냥 후지게 살지만은 않았다. 그간 인지 못했던 걸 이 영화를 하면서 알게 된 부분도 있다. 또 살면서 깨우칠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걸 받아들이느냐 아니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작 < 82년생 김지영 >을 하면서 공유는 다른 걸 걱정했다. 모델로서 이미지, 전작 드라마 <도깨비> 등으로 생긴 판타지성이다. 자칫 일상을 연기하려는 그의 의도와 달리 관객들이 낯설게 느낄 수 있다는 지점을 그도 의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판타지를 주기 위해 이 영화를 하고 싶진 않았다. 감독님은 관객분들이 이 영화를 보러 오게끔 하는 기능적 역할이 제게 있음을 솔직하게 말씀해주셨다. 그것에 대한 노파심이 제겐 있었지. 결과적으론 영화 화면에 일상성이 잘 구현됐더라. 대현이는 아내가 아프기 전 어떤 남편이었을까. 제 이미지 때문에 좀 더 자상해 보일 수는 있는데 그렇다고 마냥 나쁜 남편으로 그려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게 오히려 더 설득력이 떨어질 수 있는 거지.

외부에서 절 어떻게 바라보는지 저도 생각은 하고 있다. 뭐가 좋고 나쁘다는 건 아닌데 적어도 '나에게 이런 면도 있다'며 보이고 싶은 건 있다. 실제로 저는 평범하고 소소한 사람임을 말씀드리고 싶다. 저란 사람은 뭔가 과하거나 센 걸 좋아하기보단 소소하고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는 편이다. 연기할 때도 특별한 이야기에서 장르적 캐릭터가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는 것보다는 주변에 있음직한 그런 사람을 표현하는 걸 좋아한다. 외부에서 보는 저와 진짜 제 모습 사이의 갭이 좀 큰 것 같다. 아무래도 <도깨비> 영향이 있겠지. 그것 역시 제 모습이기에 깨뜨리고 싶진 않지만 제 평소는 좀 다르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지영의 남편 대현 역을 맡은 배우 공유.

""사람들에게 판타지를 주기 위해 이 영화를 하고 싶진 않았다." ⓒ 매니지먼트 숲

 
"일방적 비난 안타깝다"

인터뷰 말미 소설 < 82년생 김지영 >,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까지 이어지는 비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공유는 "논란을 다 떠나 그 책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비판받는 건 좀 아닌 것 같다"며 "제 상식에선 그렇다.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이 모인 사회고, 각각 살던 환경이나 세대에 따라서 기준이 다를 수 있는데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태도에 대해선 안타까움이 든다"고 솔직하게 답했다.

그렇다고 그가 작품을 택할 때 어떤 사회적 정의감이나 어떤 목적 의식을 두는 건 아니라고 한다. 아동 학대를 고발한 <도가니>부터 < 82년생 김지영 >까지 일각에선 공유의 선택에 어떤 운동적 성격을 기대하기도 하는 게 사실이다.

"시나리오에 감동하고 본능적으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드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 이 영화를 택한 건 그 차원이었지 어떤 대의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물론 그런 면을 봐주시는 의견엔 감사하지만 거창한 마음이 있던 건 아니다. <도가니>의 영향이 있긴 하겠지만 그런 시각이 좀 부담스럽다. 전 배우니까 보편적 정서로 자연스럽게 관객들이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내 역할이다. 특별히 사회적 사람이거나 이슈에 들고 일어나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 대범하지도 않고.

어떤 분은 제 필모그래피가 특이하다, 이런 말씀을 하시는데 제 마음이 들쑥날쑥해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예전보단 좀 더 많이 내려놓는 부분은 있다. 물론 대중예술 안에서 전략과 계획은 필요하지. 다만 전 앞으로 좀 덜 구애받고 싶은 것이다."


< 82년생 김지영 > 말미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람들은 왜 남에게 상처주기 위해 애를 쓰는지 모르겠다'는 식이다. 공유는 "그 대사 이후로 이어지는 장면을 참 좋아한다"며 "남녀를 떠나 그 대사에 어떤 통렬함을 느꼈다. 제가 세상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이었다"고 고백했다. 어쩌면 이 대사 자체가 공유가 이 영화를 택한 진짜 이유 중 하나 아니었을까.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지영의 남편 대현 역을 맡은 배우 공유.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지영의 남편 대현 역을 맡은 배우 공유. ⓒ 매니지먼트 숲

82년생 김지영 공유 정유미 젠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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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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