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끝줄소년>손원정 연출

<맨끝줄소년>손원정 연출 ⓒ 예술의전당

 
연극 <맨 끝줄 소년>이 돌아왔다. 무대 위 네 개의 책상은 극의 흐름에 따라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끊어지고, 이어지는 이야기의 '사이'에는 긴장감이 흐른다. 17세 클라우디오가 바라본 동급생 가족 '라파네 식구들'의 모습, 그의 글 안에 담긴 스토리, 클라우디오의 선생님 헤르만과 그의 아내 후아나 등의 행동과 대사는 일상적이지만 또 철학적이다. 허구와 실제를 넘나들면서, 연극 무대와 현실과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연극 <맨 끝줄 소년> 전막 공연이 공개됐다. <맨 끝줄 소년>은 <다윈의 거북이> <천국으로 가는 길> <스탈린에게 보내는 연애편지> 등으로 유명한 스페인 작가 후안 마요르가의 동명 작품을 바탕으로 한다. 2015년 고 김동현 연출과 손원정 드라마터그가 함께 초연을 올렸고, 2017년 재연에 이어 세 번째 관객을 찾은 것이다. 손원정 연출과 배우 전박찬, 안창연, 박윤희, 우미화, 김현영 등이 자리해 작품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현실과 예술에 관한 작품이다. 예술이 현실에 어떻게 반영하고, 우리가 예술을 어떻게 바라보고, 욕망하고, 위안을 받고, 또 배신당하는지 등에 대해서다. 예술과 현실의 긴밀한 관계를 그리고 있다. 더불어, 평범해 보이는, 지극히 보통의 중산층 중년 부부의 일상을 통해 적당한 허위, 갈등, 균열 등을 그리고 있다."(손원정 연출)
 
손 연출은 고 김동현 연출이 만들어 놓은 세계관을 그대로 따랐다. 그는 "작품에 대한 최초의 발상을 충실히 보존하려고 했다"라고 설명했다.
 
"달라진 점은, 두 명의 클라우디오다. 원숙한 클라우디오와 모든 것이 새롭고, 어설픈 클라우디오 두 분을 통해 즐거움을 주고 싶다. 전 시즌에서 작품 안에서 이미지, 그림으로만 남아있는 거 같아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라파의 가족의 리얼리티에 신경을 썼다."
  
 <맨끝줄소년> 전박찬

<맨끝줄소년> 전박찬 ⓒ 예술의전당

 
초연 때부터 클라우디오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는 전박찬과 이번 시즌에 처음 합류한 안창현. 이들은 서로에게 '힘'을 주며 '부담'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다시 무대에 오른다는 게 부담이 되긴 했다. 초연과 다른 힘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트너' 안창현 덕분에 인물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수월했다. 긴장감을 덜 수 있었고, 완급 조절을 할 수 있었다. 불안감도 떨쳐냈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그려내기도 해서, 탐이 나기도 했다." (전박찬)
 
"(세 번째 공연이 오르면서) 그동안 쌓였던 것들이 있어, 쉽지 않았는데, 연습을 통해 충실히 수행하고, 극 중 다른 인물들을 만나면서 불안감을 자연스럽게 덜 수 있었다. 전박찬과 함께 인물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 덕분에 장면에서 느낀 궁금증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더 빨리 찾을 수 있었다." (안창현)
 

두 배우를 바라보는 손원정 연출은 "욕심"이라고 밝혔다. 그는 "배우들은 인물들과 함께, 공연 횟수에 따라 주름이 생기고 인생을 사는 요령을 터득한다. 원숙해지기도 한다. 클라우디오는 단단하고 차가운 인물이다. 문학과 허구 쪽으로 빠지고, 물리적인 세계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모른다. 현실을 사는 법을 모르는 거다. 한 인물을 두 배우가 맡는다는 건, 쉽지 않다.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초연 때부터 클라우디오의 선생님 헤르만으로 등장하는 박윤희가 느낀 두 클라우디오는 어떨까.
 
"두 배우가 클라우디오를 맡는다는 것을 적응하는 데 애를 썼다. 눈빛 보고 느껴야 하는데 매일 달라진다. 안창현을 보면, 전박찬의 2015년을 보는 듯 하다. 햇과일의 상큼하고 시큼한, 그런 기대를 보여주고 있다. 아직 덜 영글어서 그런 거 같다. 전박찬은 깰 수 없는 자갈처럼 능글능글, 원숙해졌다. 상대하는 재미가 있다."(박윤희)
  
 <맨끝줄소년> 우미화

<맨끝줄소년> 우미화 ⓒ 예술의전당

 
2017년에 이어 헤르만의 아내 후아나 역을 맡은 우미화, 초연 이후 다시 관객을 찾은 에스테르 역의 김현영이 다시 임하는 소감을 전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마음가짐도 달라졌다고.
 
"2017년 재연에 이어 다시 무대에 오르게 됐다. 당시엔, 작품 안에 어떻게 들어갈까 고민했다, 라파 부부의 이야기를 보면서 균열을 느끼는 것을 기능적으로 맞추려 했다면, 이번에는 그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어떻게 들어오는지 생생하게 그리려고 했다"(우미화)
 
"2015년에서 시간이 흐른 만큼, 다르게 다가오는 대사가 좀 있더라. '그네가 쇠로 돼 있었는데 바뀌었어'라는 대사가 있는데, 예전에 대한 그리움 사라져 가는 향기 그런 걸 생각하게 되더라. 바뀐 것들에 대해 서글프고. 그런 대사가 새롭게 느껴졌다."(김현영)

<맨 끝줄 소년>은 클라우디오가 소설을 쓰는 과정에 따라 극이 진행된다. 그 안에서 라파 가족이 그려지고, 그 소설을 통해 문학, 예술에 대해 재고하게 만든다. 배우들이 작품 안에서 느낀 점은 무엇일까.
 
"'문학은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고 예술도 마찬가지다' '보는 이들도 공동 창작자가 돼야 한다' '아무것도 없어, 존재하는 거야. 물질성으로 존재하는 거야'라는 대사가 있는데 연극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관객들이 같이 보고 질문하고 느끼는 게 중요하다. 클라우디오가 시를 보고 '그냥 느끼는 거지'라고 말하는 장면도 있는데, 문학, 예술을 바라보는 시점과 통하는 것 같다."(우미화)
 
"내가 내 아내와 이렇게 살고 있구나. 반성했다. 인정 안하면서 인정하고, 적당히 냉소적으로. 분란은 없고. 내가 이렇게 살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우리가 어떤 의도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작품 안에 '스릴러적'인 요소가 있어서 관객들에게 더 사랑받는 거 같다."(박윤희)
 

<맨 끝줄 소년>에는 오케스트라, 무대 음악이 아닌 코러스가 참여한다. 배우들의 목끝에서 나오는 다양한 소리와, 울림으로 극의 흐름에 따라 감정을 더한다. 혀끝을 차기도 하고 숨소리를 곁들이는데, 이는 또 다른 재미로 다가온다.
 
"원작에는 없는, 김동현 연출의 발상이다. 코러스를 노출하는 게 중요하지 않다. 코러스는 특정한 재료를 갖고 있다. 공연을 보면서 일종의 '소리'로 코멘터리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긴장, 나른함 등을 관찰하면서 소리를 만들어주고 있다. 사운드 연출이라고 보면 된다. 녹음으로 할 수 없는 부분이라, 매일 조금씩 다르다. 무언가를 얹어내기도 하고 빼기도 한다. 조율하면서 배우에게 맡기도 있다."(송원정 연출)
 
"라이브로 소리를 내다보니, 어쩔 수 없이 숨소리가 실리기도 하는데, 극과 더 잘 어우러져 관객들도 좋아하더라. 배우들이 바뀌면서 연기 선이 바뀌어 그를 따르는 것이 쉽지 않다. 정해진 사운드여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유옥주)
  
 <맨끝줄소년> 포스터

<맨끝줄소년> 포스터 ⓒ 예술의전당

 
이번 시즌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밝힌 전박찬. 이번 작품에 임하는 마음이 남다르다. <맨 끝줄 소년>을 향한 애정이 묻어나는 대목이 전해졌다.
 
"물론, 욕심나고 재밌다. 하지만 외로워질 수 있는 인물이다. 작품 기획 담당자 분께서 '마지막으로 하는 게 어떤가'라고 물어보셨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클라우디오의 대사처럼, '이제 됐다. 끝이다'라고 생각하게 됐으면 좋겠다."
 
<맨 끝줄 소년>은 24일부터 12월 1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된다.
 
 <맨끝줄소년> 배우들

<맨끝줄소년> 배우들 ⓒ 예술의전당

맨끝줄소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공연 전문 프리랜서 기자입니다. 연극, 뮤지컬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 전해드릴게요~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