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환상의 마로나> 포스터

영화 <환상의 마로나> 포스터ⓒ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환상의 마로나>는 견공의 시점을 느껴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개의 내레이션을 주축으로 주마등처럼 스쳐간 일대기를 듣는 시간이다. 곡예사, 건설업자, 소녀라는 세 주인을 거치면서 개의 시선으로 인간의 잔혹하고 어리석음을 깨닫는다. 말 못 하는 짐승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지 짐작해 보는 계기도 된다. 보는 내내 부끄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첫 장면은 마로나가 차에 치여 죽는 사고부터 시작한다. 그 옆에 소녀가 누워 눈물로 위로해 준다. 견생 끝에 다다르자 지난날이 영화처럼 스쳐간다. 한 편의 영화 같은 삶을 산 마로나를 들여다보는 영화다. 사람에 비해 단순하다면 단순하다고 할 수 있는 견공의 일대기를 2D, 3D, 컷 아웃 등 다양한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녹여냈다. 색연필이나 크레파스, 사인펜으로 그린 듯한 손맛과 꿈을 꾸는 듯 환상적인 그림체를 선사한다. 재미와 감동, 성역 없는 표현 기법이 총동원된 작품성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주인에 따라 이름이 바뀌는 견공의 삶
  
 영화 <환상의 마로나> 스틸컷

영화 <환상의 마로나> 스틸컷ⓒ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마로나는 잡종이지만 사람과 뼈다귀 앞에서는 모두 평등하다는 당찬 엄마와 아르헨티나 혈통의 아빠 사이에서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첫 번째 이름은 알기 쉽게 '아홉'이었지만 이내 엄마와 떨어져 홀로 입양된다. 우여곡절 끝에 첫 번째 주인 곡예사 '마눌레'를 만나 '안나'라는 이름을 얻는다.

곡예사는 새끼였던 마로나를 극진히 사랑했고, 마로나 또한 살뜰히 따랐다. 마로나의 삶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나던 시절이다. 때문에 미적 기법이 총동원된 다수의 장면에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마로나는 갑자기 얻게 된 행복을 잃을까 봐 겁을 먹었다. 슬픔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던 탓에 주인 삶에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스스로 집을 나온다.

그 후 건설업자 '이스트반'의 눈에 띄어 '사라'라는 이름으로 길러진다. 건설업자는 곡예사와는 다른 방식의 사랑을 주지만 개를 부속품처럼 여기는 아내가 실증내자 함께 할 수 없게 된다. 사랑받고 버려지는 과정을 반복하던 마로나는 어느덧 인간을 이해하게 된다. 인간은 '꿈'을 빌미로 행복을 모으고 항상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것을 알아간다. 인간이 행복을 위해 자기를 버려야 한다는 현실과 마주한다. 마지막 냄새가 짙어지면 인간에게 버림받기 전에 선택할 줄 아는 개가 되어간다. 하지만 개에게 허락된 삶은 제한적이고 수동적이다. 주인의 말에 따르지 않으면 버려지고 떠돌이 개로 살아야 한다.

견공의 입장에서 우리를 돌아보길
  
 영화 <환상의 마로나> 스틸컷

영화 <환상의 마로나> 스틸컷ⓒ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결국 길거리를 떠돌다 마지막으로 만난 소녀 솔란지의 집에 머물며 '마로나'란 이름을 얻는다. 집에는 어린 솔란지와 싱글맘이자 가장인 엄마, 나이 든 할아버지, 까칠한 고양이가 살고 있다. 잠깐 스쳐간 주인들과 다르게 이 집에서는 오래 지낼 수 있었다. 다만 대소변을 참아야 하고, 가족 구성원의 비위를 맞추며 고양이와도 사이좋게 지내야 하는 고역을 견뎌야만 한다. 그래야 주인 솔란지의 사랑을 조금이라도 얻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솔란지가 소녀에서 여성으로 성장하면서 차츰 자신을 귀찮아하는 것을 느낀다. 슬프지만 어쩔 수 없다. 여러 주인을 거치며 이게 바로 견공의 삶임을 깨달았으니까. 마로나는 때묻지 않은 강아지에서 성견으로 성장하며 많은 것을 보고 들었다. 세상은 아름답지만은 않고 상처를 통해 단단해 짐을 배웠다.

아주 옛날부터 인간 곁에서 동고동락한 개는 주인에게 충성하는 동물이다. 그래서일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많이 키우는 동물이면서도 가장 많이 버려지는 동물이기도 하다. 때로는 주인의 세심한 감정기복에 공감해주고, 기분을 맞춰주려 노력하는 개의 몸짓은 처절하기까지 하다.
 
 영화 <환상의 마로나> 스틸컷

영화 <환상의 마로나> 스틸컷ⓒ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환상의 마로나>는 개가 잦은 환상을 만들 수밖에 없는 각박한 현실과 아름다운 애니메이션이 대조적으로 펼쳐진다. 제21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에서 장편 대상을 수상했다. <나의 저승길 이야기>와 <매직 마운틴>에 이어 BIAF에서 소개된 루마니아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안카 다미안'의 신작이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환상적인 기법으로 단순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매일이 마지막인 것처럼 후회 없이 살아가는 개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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