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남자프로농구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와 서울 SK 나이츠의 경기. 2쿼터 전자랜드 선수들이 득점한 뒤 기뻐하며 서로 격려하고 있다.

20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남자프로농구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와 서울 SK 나이츠의 경기. 2쿼터 전자랜드 선수들이 득점한 뒤 기뻐하며 서로 격려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프로농구(KBL)에 출범 초기부터 따라붙은 꼬리표는 바로 '외국인 선수들의 리그'로 전락했다는 비판이다. 신체 조건과 개인 기량에서 우위에 있는 외국인 선수들이 각 팀의 에이스 역할을 독식하면서, 정작 주역이 되어야할 국내 선수들은 외국인 선수들의 들러리로 전락하는 '주객전도' 현상이 일어났다. 이는 국내 선수들의 해결 능력 부재와 차세대 스타 기근 현상으로 이어지며 농구 인기에도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미쳤다.

이번 시즌을 앞두고 KBL은 고심 끝에 다시 외국인 선수 제도에 변화를 줬다. 기존의 4쿼터 중 2개 쿼터 2인 출전에서 모든 쿼터에 1인 출전으로 변경했다. 외국인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워낙 높고 제도 자체가 워낙 자주 바뀌는 KBL의 특성상 비판적인 시선도 있었지만, 이번만큼은 외인 의존도를 줄이고 국내 선수들의 역할을 늘리기 위하여 불가피한 조치였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시즌 초반이지만 국내 선수들의 역할 비중 증가가 확연히 눈에 띈다. 외국인 선수들의 출전 시간과 공격 의존도가 줄어들면서 자연히 그 빈 자리를 메워야하는 국내 선수들의 적극적인 역할이 늘어났다. 사실상 국내 선수들이 얼마나 활약해주느냐에 따라 각 팀의 성적으로도 직결되고 있다.

현재 5연승으로 리그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는 원주 DB 프로미가 대표적이다. DB는 김종규-치나누 오누아쿠-윤호영으로 이어지는 고공농구를 앞세워 당초 2강 후보로 꼽히던 울산 현대모비스-서울 SK를 제치고 강력한 우승후보로 떠올랐다. 과거 김주성-로드 벤슨-윤호영이 주축이었던 '동부산성'의 시즌2라고 할만하다. 원조와 차이가 있다면 국내 선수들이 주로 수비적인 역할에 전념하던 동부 시절과 달리 김종규가 팀내 공격 1옵션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DB는 당초 주전으로 예상했던 외국인 선수 일라이저 토마스가 시즌 개막을 앞두고 부상으로 낙마하면서 대체 선수로 오누아쿠를 데려왔는데 14.8점(전체 16위), 9.8리바운드(6위)로 나쁘지 않은 활약을 보이고 있지만 수비형 선수로서 공격력은 떨어지는 편이다. 그 아쉬움을 바로 김종규가 메우고 있다.

국내 선수들의 활약 유무에서 승부 갈리기도

김종규는 현재 DB에서 17.6점(국내 선수 2위)에 7.8리바운드(국내선수 1위), 2.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지난 시즌 창원 LG유니폼을 입고 기록했던 11.8점에 7.4리바운드, 1.6어시스트를 훨씬 상회하는 성적을 올리고 있다. LG 시절에는 팀사정상 외국인 선수들을 보조하는 궂은 일에 더 치중해야했다면 DB에서는 오누아쿠와 윤호영같은 동료들이 오히려 김종규의 수비 부담을 덜어주면서 그동안 봉인되었던 공격 본능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다.

지난 여름 FA이적을 둘러싼 LG와의 '녹취 공방', 역대 최고인 몸값 12억을 둘러싼 '거품' 논란, 농구월드컵에서의 부진으로 인한 팬들의 비난 등으로 마음고생이 심했지만 현재 DB에서 김종규는 데뷔 이후 가장 편안하고 즐겁게 농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DB도 김종규의 가세와 동시에 우승후보로 발돋움하며 김종규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농구대통령' 허재의 차남으로 유명한 허훈(부산 KT) 역시 올시즌 외국인 선수제 변화의 수혜자로 꼽힌다. 허훈은 최근 2경기 연속 30점 이상을 기록했는데 국내선수로는 무려 3144일 만에 나온 기록이다. 20일 원주 DB와의 홈경기에서는 KBL 역대 4번째로 3점슛 9개를 연속으로 성공시키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비록 허훈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팀은 연패를 당하며 아쉬움을 남겼지만, 국내 선수가 한 경기 30점 이상을 기록하는 것을 보기 힘들어진 현대농구에서 허훈의 활약은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기 충분했다. 허훈은 올시즌 18.9점점(국내 1위), 5.9어시스트(전체 2위)로 지난 시즌(11.4점, 4.1어시스트)보다 확연히 향상된 성적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공격 비중이 늘어난데 비하여 승부처에서의 판단력 부족과 잦은 턴오버는 옥에 티로 지적받는다.

이밖에도 양홍석(부산 KT), 송교창(전주 KCC), 김낙현(인천 전자랜드) 등이 올시즌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는 국내 선수들로 꼽힌다. 김선형(서울 SK), 오세근(안양 KGC), 양동근(울산 현대모비스), 이정현(전주 KCC), 김시래(창원 LG)같은 베테랑들도 여전히 이름값에 걸맞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특히 올시즌 국내 선수들의 활약은 단순히 수치상의 향상을 넘어 승부처에서 더 돋보인다. 종반까지 4-5점차 이내의 접전 양상으로 벌어진 경기일수록 대부분 국내 선수들의 활약 유무에서 승부가 갈리고 있다. 시즌 초반 하위권 전력으로 분류되던 전주 KCC는 외국인 선수들의 득점력이 떨어진다는 평가에도 국내 포워드진의 분전으로 5할 이상의 승률을 올리며 선전하고 있다.

역시 초반 연패의 늪에 빠지며 부진하던 현대모비스는 노장 양동근의 투혼과 김상규-이대성의 복귀 효과에 힘입어 연승을 달렸다. 5연패 늪에 빠져있던 LG는 김시래가 살아나고 캐디 라렌에게 편중되었던 득점 부담을 국내 선수들이 분산하면서 첫 승을 신고할 수 있었다. 국내 선수들이 고비마다 외국인 선수들을 먼저 찾으며 '폭탄 돌리기'를 하는 듯한 모습과 달라진 대목이다. 감독들도 자연히 국내 선수들을 중심으로 한 전술을 구상하는데 더 노력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국내 선수들의 활약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시즌 후반까지 꾸준히 이어지는 게 중요하다. 외국인 선수들의 화려한 득점력이나 기술도 여전히 프로농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지만, 매년 선수들이 물갈이되는 '용병' 시스템의 한계상, 연속성있는 스토리텔링으로 팬들을 사로잡는 데는 한계가 있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선수들 저마다 보유하고 있는 나름의 캐릭터와 화제성을 살리는 것도 중요하다.

허재나 현주엽, 서장훈같은 은퇴 선수들이 방송 출연으로 높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듯이 현역 선수들도 시즌중에라도 미디어 노출에 좀 더 적극적으로 응할 필요가 있다. 지금 세대의 선수들도 과거의 농구대잔치 세대 선배 못지않은 충분한 잠재력과 스타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팬들에게 꾸준히 어필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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