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추어 선수들로 구성된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이 최근 막을 내린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서 4위에 그쳤다. 특히 야구 불모지 취급을 받던 중국에 두 차례나 연속 패한 것은 국내 야구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한국 아마추어 야구의 허약한 경쟁력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평가다.

후유증은 단순히 하나의 대회에서 부진한데서 끝나지 않는다. 이번 대회에는 '2020 도쿄올림픽' 세계예선 티켓이 걸려있었다. 주최국인 일본을 제회한 상위 두팀에게 티켓이 주어지는데 한국은 4위에 그치며 세계 예선에 나갈 기회 자체를 상실했다. 물론 프로 정예 1군이 출전하는 프리미어12에서 아시아권 국가 중 최고 성적을 올리면 올림픽 티켓을 획득할수 있지만 세계적인 강팀들이 출전하는 만큼 성적을 낙관할 수 없다. 그런데 아시아선수권의 부진으로 세계 예선이라는 만약의 '보험'이 사라지면서 무조건 프리미어12에 사활을 걸어야 하게 됐다. 가뜩이나 부담이 큰 대표팀에게 더 큰 심리적 압박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어쩌다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까. 한국 아마추어 야구의 경쟁력 약화, 국제야구에 대한 한국야구계의 무지와 오만, 대표팀 운영을 책임져야할 대한야구 소프트볼협회의 안일한 행정과 판단착오가 합작으로 빚어낸 결과물이다.

아시아야구선수권은 전통적으로 최정예는 아니지만 프로 1.5군과 대학 선수들을 섞어 대표팀을 구성하곤 했다. 올해 초만 해도 KBO는 이사회를 통하여 프로선수들의 출전에 합의했었다. 그런데 정작 협회 측에서 아마추어 선수들로만 대표팀을 구성하기로 방향을 바꿨다. 사실상의 대학 선발에 고등학생이 2명 포함된 구성이었다. 특히 협회가 이런 결정을 강행한데는 수장인 김응용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명분은 좋았다. 침체된 대학야구를 활성화하고, 국제대회 경험을 쌓을 기회가 많지 않은 아마 선수들에게 국가대표로서 자긍심을 얻게 해주자는 취지는 나름 근거 있는 결단이었다. 그런데 정작 가만히 들여다보면 뭔가 허술하다. 아시아선수권은 야구계에서 비록 메이저 대회는 아니지만 친선경기도 아닌데다 올림픽 예선 티켓까지 걸려있는 대회다. 그런데도 협회 수뇌부가 갑자기 입장을 바꿔서 검증도 안 된 대표팀을 꾸려서 내보낸 것이다. 

사회적 논란에 휩싸였던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대표팀

이번 대표팀 구성을 둘러싼 협회의 행보를 보면 아쉬운 측면이 많다. 한국야구는 지난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대표팀 구성을 둘러싸고 엄청난 사회적 논란에 직면했다.

아시안게임이 프로 선수들의 '합법적 병역혜택을 위한 도구'로 변질되었다는 비판 여론이 급증하면서 대표팀은 금메달을 따고도 웃지 못했다. 전통적인 관행에서 벗어나 대학 선수를 배제하고 전원 프로 선수들로만 대표팀을 구성하면서 대학야구계가 홀대받는다는 지적도 있었다. 앞으로 아마추어 대회에는 프로 선수들이 출전을 금지해야한다는 여론이 팬들 사이에서 높아졌다. 결국 야구대표팀 논란은 국회 국정감사에까지 소환되는 등 큰 홍역을 치러야했다.

물론 아마추어 대회는 원칙적으로 아마추어 선수들이 나가는게 맞다. 하지만 아시안게임의 경우, 논란의 핵심은 병역혜택을 둘러싼 일부 프로 선수들의 이기주의와 무임승차였다. 한국만 유일하게 프로 최정예를 내보낸 아시안게임이 '애들 놀이판에 어른이 끼어들어 과자를 빼앗는' 격이었다면, 아시아선수권은 성적보다 주로 각국의 2진급 전력이나 유망주들이 국제 경험을 쌓는데 비중을 둔 대회였다.

그동안 한국이 프로 1.5군과 대학 선수 혼성으로 팀을 구성했던 것은, 세미 프로에 가까운 수준의 사회인야구 선수들로 구성된 일본이나 프로가 일부 포함된 대만 등 아시아 경쟁국과 비교할 때 그나마 적절한 수준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더구나 올림픽 예선 티켓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걸려있었다면 협회 측에서는 좀 더 냉철하고 현실적인 판단을 내려야했다. 그런데도 아시안게임의 여파와 대학야구의 이해관계라는 외부적 요소로 인하여 멀쩡하게 돌아가던 대표팀 운영 시스템을 한순간에 뒤집었고, 그 결과 또한 씁쓸함만 안겨줬다.  

일본이나 대만은 몰라도 '설마 중국에게까지 지겠어'라고 안이하게 생각한 것이라면 협회 수뇌부가 국제야구 흐름은 고사하고 자국 아마추어 야구의 수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냉정하게 말해 한국 대학야구의 수준이 과거에 비하여 엄청나게 떨어졌다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수준급 고교선수들은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일찍 프로로 진출하는 흐름이 강해지고 있다.

대학 4년을 졸업하고 프로에 나선 선수들도 생존하기가 쉽지 않다. 학원스포츠가 기존의 엘리트주의를 벗어나 공부와 운동을 병행하도록 요구하면서 대학 선수들의 기량 향상은 더욱 어려워졌다. 대학야구를 활성화하자는 취지는 좋지만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것이 시대의 흐름이기 때문이다.

안일하고 무책임한 발상

무엇보다 애초부터 경쟁력이 부족한 팀을 준비나 검증 없이 무작정 국제대회에 내던져놓고 경험을 쌓게 해주려 한다는 발상 자체가 얼마나 안일하고 무책임한 것인가. 만에 하나 김경문 감독이 이끄는 성인대표팀마저 프리미어 12에서 부진하여 자칫 도쿄올림픽 티켓 자체가 좌절되는 최악의 사태가 오기라도 한다면, 아시아선수권 참사는 두고 두고 한국야구계의 흑역사로 남을 수도 있다.

김응용 회장은 2016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으로 취임한 이후 3년간 이렇다할 실적을 남가지 못한 채 각종 자격 논란에 직면해 있다. 과거 언론 보도에 따르면,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 명단에 아마추어 선수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 선동열 감독은 "금메달을 따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라며 "김응용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님과도 상의한 결과"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번 아시아선수권에서는 별다른 설명도 없이 입장을 180도 바꿔서 대학 선수들 위주로만 대표팀을 구성했다가 또 다른 참사를 초래했다. 정책의 일관성도, 장기적인 비전도 찾아볼 수 없는 주먹구구식 행정의 전형이다.

김응용 회장은 아직까지 아시아선수권의 부진에 대해 어떤 언급도 하지 않고 있다. 아시아선수권이 프로야구나 지난 아시안게임만큼 대중의 관심이 높지 않은 게 김 회장에게는 그나마 다행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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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아시아선수권 김응용 프리미어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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