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박열> 포스터.

영화 <박열> 포스터.ⓒ 메가박스(주)플러스엠

 
1923년 관동대지진 후 퍼진 소문으로 조선인이 일본인 자경단에 의해 대학살 당한다. 일제 내각은 사건을 은폐하고 집중되는 시선을 돌리기 위해 방도를 구상한다. 닥치는대로 불령선인들을 검거해선 관동대지진 중 폭동을 선동했다고 조작하는 것이었다. 와중, 박열을 위시한 '불령사'라는 반일운동조직의 조직원들도 검거된다. 일본인이지만 박열과 사랑에 빠진 가네코 후미코도 자진 검거된다. 

불령사 조직원이 일본 경찰에 의해 취조받는 와중 폭탄 구매 계획을 발설한다. 본인이 폭탄을 가져오면 박열이 던진다고 말이다. 이에 내각대신은 보다 큰 그림을 그린다. 취조 중에 나온 연관이 전혀 없는 말들을 박열의 폭탄 구매 계획에 짜맞춰 황태자 살인 미수 사건으로 확대 조작한 것이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는 죽음을 각오하고 조선 민중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대역사건 조작에 발맞춰준다. 

하지만 그들을 직접 심문한 예심판사는 전말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상사의 지시에 따라야 했지만,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가 실제로 그런 일을 저지르려 하지 않을 사람들이라는 걸 알게 된다. 그래서 그들을 정신이상자로 판단하지만 내각대신은 그들을 정상이라고 밀어붙인다. 그러면 그럴수록 그들은 자신들의 목표에 다다르게 된다. 결국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는 대역죄로 재판에 넘겨지게 되고, 이 사건은 일본은 물론 조선 전토의 관심을 받게 된다. 일제와 박열, 가네코 후미코의 대결은 어떻게 흘러가는가?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영화 <박열>은 이준익 감독의 12번째 작품으로 비평과 흥행 양면에서 성과를 거두었다.  2013년 <소원>부터 <사도> <동주>로 이어지는 두 글자 제목 성공사를 이어갔다. 2000년대 후반부의 침체기 후 상업영화에서 은퇴했다가 재기에 성공한 그의 2010년 중후반 시대극 성공기 중 하나이기도 하다. 찾아보기 힘든, '철저한 고증의 실화입니다'라는 시작이 이채롭다. 

일제의 비열하기 짝이 없는 조작에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가 슬프지만 대범한 역발상으로 대응하는 게 영화의 중심인 듯하지만, 두 사람이 보이는 여유 속에서 꽃 피는 사랑이 더 와닿는다. 그들의 사랑이 아나키즘에 기반을 둔 민중에의 절대적 사랑과 동일선상에 있다는 점이 이런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게 한몫 한다. 

하여 우리는 힘 없고 약한 식민지 국민의 대범한 여유 그리고 동지적 사랑과 세계를 호령하는 제국 내각의 비열하고 쪼잔한 조작 그리고 계속해서 빚어지는 누워서 침 뱉기 식의 내부 분열이 충돌하는, 외면으론 장엄과는 거리가 먼 듯하지만 내면으론 이보다 더 이상 장대할 수 없는 대결을 한껏 즐길 수 있다. 그 모든 걸 짊어지고 가는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를 향한 선망과 갈채는 영원과 닿아 있다. 실제와 철저히 가까운 고증에의 영화 속 캐릭터라는 점이 보다 더 열린 마음으로 그들을 대하게 한다. 

여유로운 모습으로 위로를

영화 속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를 위시한 불령사 조직원들은 우리네와 다를 바 없는 20대 초반의 청년들이다. 그들의 겉모습은 한창인 나이에 맞다. 서로 장난 치고 욕 하면서 세상에 대한 불만과 불평을 쏟아내는 모습들. 하지만 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말들에는 목숨을 내놓을 만한 활동의 계획이 있고 행동은 일제의 눈과 귀가 유심히 살펴볼 만한 모양새이다. 대단하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여유를 잃지 않는다. 특히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가 감옥에 갇혀 생활하면서 재판에 불려가서도 당당하고 단단한 모습을 보이는 것에 우린 위로를 받는다.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지만 우리는 괜찮다고, 당신 민중들의 삶이 훨씬 더 피폐하고 힘들지 않느냐고, 우리를 보고 힘을 내고 우리의 여유로운 모습에서 위로를 받으라고. 

여유롭거니와 코믹하기까지 한 그들의 모습, 즉 실제 모습을 옮긴 영화 속 모습은 <박열>이라는 영화가 가진 상업적 성격과 맞닿아 있다. 영화는 나아가 일제 내각 수뇌부가 모인 회의 장면에 심각성과 반대되는 OST와 과도함을 불어넣은 연기를 배치하면서 블랙 코미디적 아이러니를 강조했다. 심각성에 갇힌 모습이 우스꽝스러워 보이게 하는 연출 방식이라 하겠다. 

개인에 천착한 미시 시대극

영화 자체는 판단하기 애매한 소품적 성격이 강하다. 매우 한정적인 공간과 인물과 사건으로 이끌어가는 영화인 만큼, 영화적으로 판단할 만한 근거나 요소가 부족한 것이다. 애초에 영화를 잘 만들었다, 잘 못 만들었다 식으로 대할 수 없게 만들어 놓은 듯하다. 대신, 영화 속으로 들어가 내용에 천착해주라고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정작 내용을 보면 의외인 점이 눈에 띈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는 아나키스트로 민족주의자와는 거리가 먼 만큼, 일제와 일본 민중을 구분하는 모양새를 명확히 한다. 그런 사상은 곧 조선에게도 투영되어, 그들의 퍼포먼스와 메시지는 조선이 아닌 조선 민중을 향한다는 걸 명확히 한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무수히 많은 영화가 다분히 민족주의적인 시각에 천착해 '국뽕'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하게 하였던 데 반해 이 영화는 그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하여, 이준익 감독은 개인을 중심으로 그 또는 그들이 처한 상황에만 천착한 미시적 역사에 관심이 많다는 데 결론이 다다른다. 그의 필모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시대극들이 하나같이 그러하다. 지나간 역사의 스펙터클하고 첨예한 단면을 그리곤 하는 시대극의 특성과는 거리가 멀다. 설령 이준익 감독 시대극이 그런 단면을 그려도 주가 아닌 부가 될 뿐이다. 그에겐 언제나 지극한 개인으로서의 캐릭터가 영화의 주다. 

그가 앞으로도 계속 개인에 천착한 미시 시대극을 우리 앞에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듯하지만 사실 잘 모르는 인물 또는 우리가 잘 모르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인물들. 내년에 <자산어보>가 대기 중인 걸로 아는데, 정약용의 형 정약전을 어떻게 극화해 내보일지 심히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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