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김시진 감독의 뒤를 이어 넥센 히어로즈(현 키움)의 3대 감독이 된 염경엽 감독(SK 와이번스)은 2013년 가을야구 진출에 이어 2014년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끌며 돌풍을 일으켰다. 현역 시절 통산 타율이 .195에 불과했던 백업 내야수 출신의 염경엽 감독이 KBO리그 초창기 스타플레이어 출신에 코치와 해설위원으로 명성이 높던 양상문 감독의 LG 트윈스를 꺾은 것은 분명 이변이었다(물론 양상문 감독 역시 2014년이 감독으로서 첫 가을야구였다).

염경엽 감독의 성공 이후 비 스타 출신 감독은 KBO리그에서 '유행'처럼 번져 나갔다. 김경문 감독이 사퇴한 NC 다이노스는 프로 7년 동안 통산 안타가 60개에 불과한 이동욱 감독이 부임해 첫해 가을야구에 복귀했다. 삼성 라이온즈는 골든글러브 6회 수상 경력의 김한수 감독 대신 현역 시절 1군 등판 경기가 4경기에 불과한 허삼영 전력분석팀장을 새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하지만 '무명 선수 출신 감독'의 정점이었던 염경엽 감독의 위상이 올 시즌 크게 흔들리고 말았다. 염경엽 감독의 뒤를 이어 키움 히어로즈의 4대 감독으로 부임했던 장정석 감독이 2014년 이후 5년, 감독 선임 3년 만에 키움을 한국시리즈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특히 플레이오프에서는 전임 염경엽 감독이 이끄는 SK를 꺾으며 올라왔기 때문에 장정석 감독과 키움의 우승 도전에 야구팬들의 더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17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9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 3차전 키움히어로즈와 SK와이번스의 경기. SK를 10 대 1로 꺾고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지은 키움의 장정석 감독이 손가락으로 'K'를 만들며 관중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장정석 감독이 손가락으로 'K'를 만들며 관중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프로 지도자 경력 없는 무명 선수 출신 감독, 2년 만에 가을야구 진출

지난 2016년 염경엽 감독이 이끌던 히어로즈는 정규리그 3위를 차지하며 준플레이오프에서 LG를 만났다. 하지만 간판타자였던 강정호와 박병호가 차례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며 전력이 많이 약해진 히어로즈는 '넥벤저스' 시절의 위력을 보여주지 못하며 시리즈 전적 1승 3패로 탈락했다. 그리고 염경엽 감독은 패장 인터뷰에서 탈락의 책임을 지고 히어로즈의 사령탑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히어로즈를 4년 연속 가을야구로 이끌었던 수장을 잃은 히어로즈는 비상이 걸렸다. 야구팬들은 현대 유니콘스를 4번이나 우승으로 이끌었던 김재박 감독을 비롯해 많은 스타 플레이어 출신의 야구인들을 히어로즈의 차기 감독 후보로 예상했다. 하지만 2016년 10월 히어로즈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이름을 새 감독으로 선임했다. 히어로즈의 운영팀장으로 있던 장정석 감독이었다.

장정석 감독은 1996년부터 2004년까지 현대와 KIA 타이거즈를 오가며 활약했다. 입단 초기에는 백업 외야수로 쏠쏠한 활약을 펼치기도 했지만 이내 경쟁에서 밀려 1군보다 2군이 익숙한 선수로 전락했고 KIA 이적 후에는 너클볼 투수로 변신을 시도하기도 했다(하지만 투수로서 1군 등판 기록은 없다). 프로 9년 동안 580경기에서 타율 .215 7홈런75타점105득점19도루를 기록한 장정석은 '아는 사람만 아는' 무명에 가까운 선수였다.

은퇴 후 현대와 히어로즈에서 기록원과 매니저, 운영팀장으로 현장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던 장정석 감독이 감독에 선임된 것은 파격적인 인사였다. 많은 우려 속에 히어로즈를 지휘한 장정석 감독은 2017년 정규리그 7위에 머물며 팀의 가을야구 탈락을 막지 못했다. 야수에서 이정후, 투수에서 최원태라는 유망주의 잠재력이 폭발했지만 가을야구 단골손님이었던 히어로즈가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며 장정석 감독도 적지 않은 비난을 받았다.
 
 6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9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1차전 키움 히어로즈 대 LG 트윈스의 경기. 9회말 키움 선두타자 박병호가 솔로홈런을 친 뒤 주먹을 쥐어보이고 있다. 2019.10.6

박병호가 솔로홈런을 친 뒤 주먹을 쥐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작년 시즌 팀의 상징과도 같은 박병호가 복귀하면서 히어로즈의 전력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정규리그 4위로 가을야구에 진출한 히어로즈는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KIA, 준플레이오프에서 한화 이글스를 차례로 꺾었고 플레이오프에서도 SK와 5차전까지 가는 명승부 끝에 아쉽게 패했다. 장정석 감독 역시 과감한 투수 교체와 적절한 선수기용으로 가을야구 데뷔전을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류중일-염경엽 감독 차례로 넘은 장정석 감독, 김태형 감독에게 도전장

히어로즈의 젊은 선수들이 가을야구를 통해 부쩍 성장하면서 올해 히어로즈는 우승 후보로 떠올랐다. 그리고 장정석 감독은 팀을 꾸준히 상위권으로 이끌면서 키움의 정규리그 3위를 견인했다. 비록 순위는 작년에 비해 한 계단이 올랐을 뿐이지만 선두 두산 베어스와의 승차가 단 2경기에 불과했을 정도로 대단히 선전한 시즌이었다. 만약 돔구장을 홈으로 쓰며 우천 연기가 없는 불리함(?)을 겪지 않았다면 키움도 시즌 막판까지 선두싸움을 했을 것이다.

장정석 감독의 진가는 가을야구에서 더욱 제대로 발휘되고 있다. 준플레이오프에서 삼성의 왕조를 이끌었던 류중일 감독의 LG를 만난 키움은 4경기 만에 3승 1패로 시리즈를 끝냈다. 장정석 감독은 7일 2차전에서 구위가 좋지 않았던 선발 에릭 요키시를 2.1이닝 만에 마운드에서 내리고 물량 공세에 나섰다. 그리고 키움의 불펜 투수 8명은 3회 1사부터 6.2이닝을 단 1실점으로 막으며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장정석 감독은 난타전을 벌인 10일 4차전에서도 3-5로 뒤진 6회 1사1,3루에서 타격감이 나쁘지 않았던 송성문 대신 박동원을 대타로 투입해 동점 적시 2루타를 이끌어냈다. LG를 4경기 만에 탈락시킨 장정석 감독의 다음 상대는 자신이 히어로즈의 매니저로 있던 시절, 히어로즈의 수장이었던 염경엽 감독이 이끄는 SK. 하지만 장정석 감독은 과거에 모시던(?) 감독의 팀을 상대로 단 1승도 내주지 않는 완벽한 경기로 키움의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끌었다.
 
 17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9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 3차전 키움히어로즈와 SK와이번스의 경기에서 승리한 키움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2019.10.17

17일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9 프로야구 포스트시즌 플레이오프 3차전 키움히어로즈와 SK와이번스의 경기에서 승리한 키움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1차전에서 팽팽한 투수전 끝에 승리를 거둔 키움은 2차전에서 선발 최원태를 4이닝 만에 내리며 승부수를 던졌고 8회에는 대타 작전이 성공하며 짜릿한 역전극을 만들었다. 특히 지난 준플레이오프 4차전에서 대타 박동원으로 교체됐던 송성문이 8회 대타로 등장해 2타점 결승 2루타를 때려내며 더욱 극적인 상황을 연출했다. 그렇게 장정석 감독은 작년 SK에게 당한 2승3패의 아쉬운 패배를 3승 무패로 시원하게 되갚았다.

류중일 감독과 염경엽 감독이라는 산을 넘은 장정석 감독은 감독으로 맞는 첫 한국시리즈에서 한국시리즈 경험만 20경기에 달하는 두산의 김태형 감독을 상대한다. 사실 감독으로서의 경험을 따지만 아직은 초보 감독의 티를 벗지 못한 장정석 감독이 우승 2회, 준우승 2회의 타이틀을 가진 김태형 감독을 따라가기 힘들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부담 없이 두산에 도전할 수 있는 장정석 감독과 히어로즈는 내심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마지막 이변을 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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