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갈리아의 딸들> 김수정 연출

<이갈리아의 딸들> 김수정 연출ⓒ 두산아트센터

 
소년 페트로니우스는 잠수부가 되고 싶다. 하지만 잠수부는 여자만이 할 수 있는 직업이다. 사회복지부 장관인 엄마 루스는 이런 아들이 너무나 걱정된다. 페트로니우스가 '소년들의 무도회'에서 여자의 선택을 받고, 모성 보호를 받으며 아이를 키우며 안정적이게 살길 바란다.
 
이들이 사는 '이갈리아'는 출산을 성스럽게 여긴다. 여성이 사회생활을 하고, 육아는 남성의 몫이다. 우리가 사는 곳과는 전혀 다르다. 생리축제가 있고, 여성은 속옷을 착용하지 않는다. 오히려 남성이 보정속옷을 입는다. 의상도, 걸음걸이, 행동거지도 마찬가지다. 바지를 입고 '쩍벌' 자세를 한 여성, 치마를 입고 하이힐을 신은 채 조신하게 걷는 남성이 무대를 활보한다.

집 안에서 모든 것을 결정짓는 자도 바로 '엄마'. '가모장제'인 이갈리에서는 엄마의 목소리가 그 무엇보다 크다. 눈을 부릅뜨고 걸걸한 목소리를 내뱉는 여성들은, "수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남자가 어딜 감히 여자들이 대화하는 데 끼어들어?" "남자가 집구석에서 아이나 볼 것이지"라고 큰 소리 친다. 남성들은 머리를 조용히 쓸어 넘기고, 짙은 화장을 하고 거울을 본다.
 
연극 <이갈리아의 딸들>은 1977년 출간된 노르웨이 작가 게르드 브란튼베르그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1996년에 국내에 출간됐고, 젠더 문제가 대두되며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광인일기> <공주들> <파란나라> <보이체크> <그러므로 포르노> 등의 작품으로 관객을 찾은 김수정 연출(극단 신세계 대표)의 작품이다.
 
"나는 늘 내 무지함이 부끄럽다.
나를 불편하게 만들고, 내 주변을 불편하게 만들어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새로운 세상은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새롭게 사는 방법이 있을 뿐이다.
나는 나로 살고 싶다." -김수정 연출의 연출노트 중에서.

 
지난 9월 30일 김수정 연출을 두산아트센터에서 만나 작품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갈리아의 딸들> 공연 모습

<이갈리아의 딸들> 공연 모습ⓒ 두산아트센터

 
1, 2부로 나누어진 <이갈리아의 딸들>. 색이 극명하게 다르다. 남녀의 역할이 바뀌고, 목소리가 바뀌면서 튀어나오던 1막의 웃음은, 2막으로 가면 수많은 생각으로 바뀐다.
 
"아마 제가 소설을 보면서 받은 느낌 때문일 거예요. 1부는 통쾌하고 기분이 좋았는데, 2부에서는 결국 현실과 똑같더라고요, 제가 느낀 감각이 고스란히 드러난 거 같아요."
 

관객들이 보기에는 마냥 재밌을 수도 있고, 또 불편할 수도 있다. 치마를 입은 남성과 바지를 입은 여성. 목소리에 힘이 잔뜩 들어간 여성, 가냘픈 목소리와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남성의 행동 등이 말이다. 이를 무대에서 '표현'하는 배우들 역시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다. 김 연출이 그리고자 한 방향은 무엇이었을까.
 
"인물의 모습을, 입체적이지 않고 '전형적'이게 그려달라고 했어요. 좀 더 '극대화'된 모습을 바랐죠. 남자 배우들은 구두를 신어서 발에 물집 잡히고 고생 중이에요. 각자의 길들여진 근육이 달라서 자세도 힘들어 해요. 극 중 여자 배우들은 다리를 벌리고 앉는데, 골반에 통증이 온다고 하고요. 뿐만 아니라, 여자와 남자는 사고 체계부터 다르다고 하잖아요. 한 가지 사물을 봐도 접근 방식이 다르다고요. 표현법에도 신경이 쓰였어요. 여자들은 공감을 나타내고, 또 공감 받기를 원하죠. 남자와 달라요. 화술에도 차이나 나고요."
 

무대 위에서 남녀 간의 사랑을 표현하는 장면도 사실적이다. 이미 전작에서도 내보인 김 연출의 색이지만, 그 안에는 깊은 뜻이 담겨있다. 색 안경 끼고 불편하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안경을 벗고 직시해야 하는 이유다.
 
"'성폭력 당해도 괜찮다'라는 중요한 대사가 있어요. '밤늦게 다니면 안 된다' '단정하게 입어라'라고만 교육 받았어요. 정작 성폭력 가해자가 '나쁘다'라는 인식이 우선 아닌가요? 이런 말들을 남자 배우들이 한다면, 한 번 더 드러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제가 생각하는 성교육을 공연에 담고 있어요. 포르노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정확하게 알려줘야 한다는 거죠. 성폭력을 당했을 때 피해 당사자가 느끼는 감정을 전하기 위해서는, 애정을 드러내는 장면부터 보여줘야지, 그렇지 않으면 상상과 피해자 밖에 안 남을 거 같기 때문이에요"
 
성폭력, 성희롱 하는 장면에서 배우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다. 아무렇지 않게 내뱉고, 발끈했더라도 '예민한' 반응으로 치부돼 버린 감각들이 작품을 통해 새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오늘 예쁘네?"라는 말과, 괴롭힘을 당하는 남자아이에게 "(쟤가)좋아해서 그래. 네가 이해하렴"이라고, 피해자를 설득(?)하려는 행동 등도 마찬가지다.
 
"남자들은 이해하지 못하는데 여자들은 아니더라고요. 억눌렸던 감정 때문에 울음을 터뜨린 배우도 있었어요. 미투 사건이 있을 때 극단원들에게 '잠재적 가해자'라고 말했어요. 남자 배우들이 장면을 받아들이는 데는 시간이 꽤 걸렸어요. 처음에는 불편해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알 거 같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뼛속까지 이해하지는 못하겠지만요. 사람은 누구나 단순하지 않으니까요."
 

여자는 남자의 행동을 표현하고, 남자는 여성을 그리기에 잠시도 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그들의 '표현 방식'은 또 다른 숙제였다. '조절'에 따라 극을 잘 못 받아들일 수 있기에 그렇다. 김 연출이 중점을 둔 곳은 '템포'였다.
 
"템포를 놓치는 순간 여자는 여자가 되고, 남자는 남자가 돼 버려요. 오버를 해도 안 되고요. 수위 조절이 필요했어요. 너무 위험한 공연이 되는 게 아닌가 싶었죠. 남성과 여성, 여성성과 남성성을 공격하고, 젠더 크로스 등으로 자칫 코드를 잘못 가면 남성이나 여성 희화화로 그려질까, 지점을 찾는 부분이 어려웠어요"
  
 <이갈리아의 딸들> 공연 모습

<이갈리아의 딸들> 공연 모습ⓒ 두산아트센터

 
극 중 여성은 목소리를 높이고 권위적이다. 자기 멋대로 행동하기도 하고, 남성을 '묵사발'로 만들어 버리는 등. 남성은 여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 꾸미고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다. 김 연출은 "여성, 남성의 면모가 아닌, 개인적인 이질감으로 느끼길 바랐어요. 젠더 구분이 아니라,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고요"라고 설명했다.
 
페트로니우스는 바다에 나가는 노동자 그로의 도움을 받고, 그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강요'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그로의 모습에 그는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런 그는 친구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지만, 자신 역시 모순에 빠져 있음을 깨닫는다.
 
"페트로니우스가 꼭 저 자신 같았어요. 모순 덩어리라는 점에서요. 저도 젠더 이슈, 권력 등을 다룬 사회성 짙은 작품을 올리지만, 정작 페미니즘에 대해 질문해도 대답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미 사회화 돼 있거든요. 저 역시 미투 피해자예요. 그 때 제 행동이 모순적이었어요. 부끄러웠어요."
 

<이갈리아의 딸들>을 본 관객들은 분명 많은 감정을 느낄 것이다. '남녀'라는 성별 안에 자기도 모르게 스며든 '당연'한 감정에 '반기'를 들 수도 있고, '아니다'라는 목소리도 낼 법 하다.
 
"'피해자'라는 단어를 정말 싫어해요. 단지 상황에 놓였을 뿐인데, 정체성을 확립시켜 버리잖아요. 그 사람이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방점이에요.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작품을 통해 그리고 싶었어요. 때문에 이 작품이 '페미니즘 연극'으로 알려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많은 분들이 다양한 피드백을 해주길 바라요. 비난 받을 용기도 있어요. 그분의 젠더 감수성이니까요."
 

극이 이끌어 가는 힘을 따라 가다보면. '가부장적'의 반대는 '가모장적'이 아니라 '평등한 세상'이다. 남자와 여자, 권력자와 노동자, 이성애자와 성소수자들, 비정상과 정상이라는 대립되는 표현이 이어지지만, 그 내면엔 '평등'이 담겨있다.
 
"결국은 권력의 힘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정하는 거죠. 작품 안에서 엮어서 드러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어요. 화나서 시작했어요. 내가 여성이라 그런가? 라는 피해의식이 심했지만,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여자는 이래야 한다, 남자는 이래야 한다'라고 알게 모르게 '성'이 갖는 색에 따라 맞춰왔고, '그 틀' 안에서 성장했다. 분홍색은 여자아이, 푸른색은 남자아이처럼. 여자아이들은 고무줄놀이와 공기놀이를 했고, 남자아이들은 운동장에서 땀을 흘리며 뛰어놀았다. <이갈리아의 딸들>은 이처럼 당연하고, 답답했던 '틀'을 뒤집었다. 성별과 그 안에 녹아든 권력이란 힘은 결코 정답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면 된다는 김 연출의 의도는 이분법적으로 나누어진 세계를 다시 바라보게 했다. 김 연출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살았는데, 뭔가 바뀔 줄 알았는데, 겉만 조금 바뀌고 속은 그대로더라"라고 털어놓았다.
  
 <이갈리아의 딸들> 김수정 연출

<이갈리아의 딸들> 김수정 연출ⓒ 두산아트센터

 
"<이갈리아의 딸들>1권을 읽고는 유토피아라고 생각했는데, 2부를 읽고는 스스로가 부끄럽더라고요.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제가 왜 공연을 해야 하는지,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결국 든 생각은 '우리가 사는 방법을 바꾸자'예요. 제가 죽어 없어져도, 그런 세계는 오지 않은 거 같아요. 유토피아는 없어요. 유토피아에서 살고 싶다는 희망이 계속 저를 좌절시켰던 거 같아요. 그저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가면 되는 거예요. <이갈리아의 딸들>이 연극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내일, 모레가 돼도 계속 생각났으면 해요."
 
'잘 사는 삶'에 대해 "작품을 하면서 계속 던지는 딱 하나의 질문이에요. 몰라서 계속 공연을 하고 있는 거 같아요"라고 전한 김 연출. 페트로니우스를 만나면 김 연출이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잘 버텨보자."

 
<이갈리아의 딸들>은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19일까지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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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전문 프리랜서 기자입니다. 연극, 뮤지컬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 전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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