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피센트2> 포스터

<말레피센트2> 포스터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말레피센트(안젤리나 졸리)'가 오로라(엘르 패닝)의 저주를 푼 지 어언 5년. 말레피센트는 여전히 저주스러운 마녀로 지내고 있었다. 한편 무어스의 여왕이 된 오로라는 얼스테드 왕국의 필립(해리스 딕킨슨) 왕자의 청혼을 수락하지만, 필립의 어머니인 잉그리스(미셸 파이퍼) 왕비는 둘의 결혼을 계기로 자신의 야욕을 채우려 한다. 말레피센트와 오로라가 잉그리스의 음모로 인해 위험에 빠진 가운데, 말레피센트의 종족인 '다크 페이'가 등장하면서 요정과 인간은 거대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든다.  

디즈니 성의 측면을 보여주는 오프닝 로고. <말레피센트>(2014)를 봤을 때 가장 먼저 눈을 사로잡은 장면이었다. 마치 빌런(악당)을 주인공으로, 빌런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풀어가겠다는 야심찬 선언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말레피센트2>(2019) 오프닝에서 디즈니 로고가 정면으로 나오자마자 뭔가 잘못됐다고 느꼈다.

디즈니 고유의 오프닝 로고가 등장한 후, 15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말레피센트2>는 이야기의 동력을 상실한다. 영화 내에서 서스펜스를 일으킬 요소가 대부분 사라지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서스펜스는 등장인물과 관객들의 정보 격차에 의해 생기는 긴장감으로 스토리 전개의 원동력이 된다. 등장인물만 혹은 관객들만 아는 정보가 각각 적절히 주어질 때 관객들은 인물을 걱정하기도 하고, 인물들의 행위를 궁금해하기도 하면서 영화에 몰입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이러한 서스펜스가 매우 약하다.
 
 <말레피센트2> 스틸컷

<말레피센트2>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말레피센트2>는 정보를 애써 숨기려고 하지 않는다. 말레피센트가 "다시 빌런이 되었다"는 초반부의 내레이션이 무색하게 영화는 곧장 잉그리스 왕비의 정체와 계획을 숨김없이 보여주고 말레피센트와 오로라에게는 피해자 이미지를 덧입힌다. 관객들은 러닝타임이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갈등 구도, 조력자와 적대자, 빌런의 계획 등 영화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패를 다 알게 된다. 관객은 모든 것을 알고 인물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일방향적인 서스펜스가 러닝타임을 지배하는 것이다. 

그 결과 인물들의 대사나 행위가 답답하게 느껴지고, 자연히 영화의 긴장감이 떨어졌다. 잉그리스의 계획을 뻔히 아는 상황에서 오로라가 음모를 파헤치는 장면이 스릴 넘칠 리가 없다. 게다가 출생의 비밀, 주인공의 좌절과 조력자의 희생을 통한 각성, 전편에서 보여준 가족이라는 진정한 사랑까지 이 영화의 전개에는 '클리셰'가 가득하다. 

평이한 영화의 구조를 의식해서였을까. <말레피센트2>는 양적인 측면에서 영화의 재미를 살리기 위한 시도를 한다. 원래 주인공들에 '다크 페이'라는 새로운 요정을 추가한다. '코널(치웨텔 에지오프)'과 '보라(에드 스크레인)' 등 다크 페이 종족, 잉그리스 왕비와 필립 왕자의 호위 대장 등 더 많은 인물들을 등장시켜 스토리의 공허함을 채우려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시도는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러닝타임은 한정되어 있는데 다루어야 할 내용이 늘어나다 보니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를 제대로 구축하지도 못했고, 기존 주인공들의 변화와 성장도 보여주지 못했다. 관객들이 감정적으로 영화에 이입할 여지는 사라질 수밖에 없다. 영화에서 인물들이 울고, 절규하고, 죽어가는 와중에도 그 감정이 스크린 밖으로는 전해지지 않는다. 말레피센트는 전편만큼 매력적이지 못했고, 엘르 패닝과 미셸 파이퍼처럼 뛰어난 배우들이 배역을 맡았음에도 오로라나 잉그리스 모두 극 중에서 인형처럼 느껴졌다.
 
 <말레피센트2> 스틸컷

<말레피센트2> 스틸컷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하이라이트 전투 시퀀스와 영화의 결말부에는 늘어난 인물들로 인해 생긴 문제가 집약되어 있다. 영화는 전투 장면에서 스펙터클, 오로라와 필립의 성장, 말레피센트의 카리스마, 왕비의 사악함, 요정과 인간 간의 화해, 가족애 등 너무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하다가 정작 중심이 되어야 할 말레피센트를 놓친다. 이렇게 중심이 사라진 채 서로 다른 캐릭터들이 장면들을 느슨히 이어 붙이다 보니 마지막 하이라이트마저도 그저 심심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메시지와 미장센의 디테일만은 분명 인상적이다. <말레피센트2>는 오로라-말레피센트, 오로라-왕비의 관계를 대비시키며 진짜 가족의 의미를 묻는다. 진짜 가족은 아니지만 뿔을 숨기지 않으면서 있는 그대로 챙겨주는 것이 진짜 가족인지, 아니면 가족이 됐지만 화려한 보석과 장신구로 치장해가면서 철저히 이용하는 것이 가족인지를 묻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전통적 가족 개념의 붕괴가 적절히 반영된 대목이자, 전작에서 일방향적으로 제시되었던 오로라와 말레피센트의 관계가 보다 입체적으로 제시되는 부분이다.
 
말레피센트2 영화 <말레피센트2> 스틸컷.

영화 <말레피센트2> 스틸컷. ⓒ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또한 흑과 백을 대조시키는 색상의 활용 면의 디테일은 역시 디즈니라는 감탄을 불러내기 충분하다. 흑과 백을 대조시키면서 잉그리스나 왕비와 말레피센트의 캐릭터를 암시하기 때문이다. 왕비의 경우 개인 공간을 검은색으로, 외적으로 드러내는 의상은 흰색으로 표현하면서 선한 척하는 빌런임을 드러낸다. 반대로 말레피센트는 정체성과 힘을 되찾는 공간을 흰색으로, 겉으로 드러나는 의상을 검은색으로 묘사하며 악한 것처럼 보이는 선역임을 암시한다. 이처럼 선역과 악역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색상을 뒤섞은 시각적인 다채로움은 충분히 즐길만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원종빈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영화리뷰 말레피센트 디즈니 안젤리나 졸리 엘르 패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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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읽는 하루, KinoDAY의 공간입니다. 서울대학교에서 종교학과 정치경제철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고,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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