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의 삼성 라이온즈는 2011년부터 2014년까지 통합 4연패의 금자탑을 세웠다. K리그의 수원삼성 블루윙즈도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2번의 리그 우승과 2번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슈퍼리그 8연패와 V리그 8회 우승에 빛나는 배구의 삼성화재 블루팡스가 세운 업적은 따로 강조할 필요도 없다. 이렇듯 '1등 기업'을 내세우는 삼성은 스포츠에서도 언제나 최고를 추구했다. 

여자프로농구의 삼성생명 블루밍스 역시 삼성 계열의 스포츠 구단이다. 1977년에 창단한 삼성생명은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8번이나 우승을 차지하며 최고의 명문 구단으로 군림했다. 프로 출범 후에도 정은순, 유영주, 박정은, 이미선, 김계령, 변연하 같은 국가대표 선수들을 앞세워 WKBL 출범 후 4년 동안 4번의 우승을 차지했다(2007년까지 WKBL은 여름리그와 겨울리그로 나눠 1년에 두 번씩 열렸다).

하지만 삼성생명은 박정은과 이미선, 변연하, 이종애가 활약하던 2006년 여름리그를 끝으로 무려 13년 동안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삼성생명이 주력 선수들의 이적과 은퇴로 고전하는 동안 신한은행 에스버드와 우리은행 위비가 왕조를 건설하며 WKBL을 주름 잡았기 때문이다. 지난 시즌 정규리그 3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해 준우승을 차지했던 삼성생명은 이번 시즌 KB스타즈와 우리은행 위비의 양강구도를 깰 수 있는 1순위 후보로 꼽힌다.

우리은행의 7연패 도전을 좌절시킨 최대 이변의 주인공
 
 김한별은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우리은행을 탈락시킨 일등공신이었다.

김한별은 지난 시즌 플레이오프에서 우리은행을 탈락시킨 일등공신이었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삼성생명에게 2017-2018 시즌은 큰 아쉬움을 남긴 시즌이었다. '역대 최고'로 불리는 타미카 캐칭 이후 가장 다재다능한 외국인 선수로 불린 엘리사 토마스를 보유하고도 정규리그 4위에 머물며 플레이오프조차 나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토마스는 2017-2018 시즌 득점(22.63점), 리바운드(15.19개), 어시스트(5.47개), 스틸(3.06개) 부문에서 모두 1위에 올랐지만 삼성생명은 신한은행 에스버드에게 1경기 차로 뒤지고 말았다.

WKBL은 2017년까지 외국인 선수의 재계약을 1회로 규정하고 있었다(그나마 외국인 선수 재계약 제도는 작년에 다시 폐지됐다). 하지만 토마스는 삼성생명에서 이미 두 시즌동안 활약했고 삼성생명은 규정상 토마스를 붙잡을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토마스는 작년 WKBL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 신청을 하지 않으면서 2018-2019 시즌에 뛸 수 없게 됐다(현재 토마스는 WNBA 코네티컷 선에서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다). 

삼성생명은 작년 외국인 드래프트에서 WKBL 경력이 있는 191cm의 빅맨 티아나 하킨스를 지명했다. 하지만 하킨스는 WNBA 시즌을 치르면서 무릎 부상을 당했고 삼성생명은 하킨스가 아닌 아이샤 서덜랜드와 시즌을 시작했다. 삼성생명은 서덜랜드,카리스마 펜,하킨스로 이어지는 3명의 외국인 선수가 정규리그 35경기를 나눠서 활약했지만 누구 하나 돋보이는 선수를 찾긴 힘들었다.

그럼에도 삼성생명은 지난 시즌 4위 OK저축은행 읏샷에게 6경기 앞선 3위를 차지하며 한 시즌 만에 플레이오프 무대에 복귀했다. 플레이오프 상대는 통합 7연패를 놓친 후 챔프전 7연패 만큼은 놓칠 수 없다며 KB에게 설욕을 꿈꾸던 우리은행. 하지만 1차전을 81-90으로 패한 삼성생명은 2, 3차전을 차례로 승리하며 우리은행을 챔프전 문턱에서 탈락시켰다. 비록 챔프전에서는 KB에게 3연패를 당했지만 삼성생명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시즌이었다.

삼성생명 봄 농구의 영웅은 단연 혼혈 선수 김한별이었다. 김한별은 우리은행과의 플레이오프 3경기에서 내외곽을 넘나들며 평균 25.3득점으로 맹활약했다. 단기전에서 상대 에이스를 막는 탁월한 전술을 선보이던 우리은행의 위성우 감독조차 "김한별은 막을 방법이 없었다"며 혀를 내둘렀을 정도. 그만큼 김한별은 삼성생명의 봄을 환하게 빛나게 한 일등공신이었다.

적절한 신구조화의 삼성생명, WKBL의 춘추전국시대를 꿈꾼다
 
 이주연은 프로 데뷔 3년 만에 삼성생명의 주요 선수로 자리 잡았다.

이주연은 프로 데뷔 3년 만에 삼성생명의 주요 선수로 자리 잡았다. ⓒ 한국여자농구연맹

 
정규리그에서 우리은행을 상대로 5연승을 거두며 우리은행의 정규리그 7연속 우승을 저지한 팀은 KB였지만 우리은행을 플레이오프에서 탈락시키며 챔프전 진출을 좌절시킨 팀은 바로 삼성생명이었다. 우리은행의 독주가 6년 넘게 이어지던 여자프로농구에서 '우리은행을 탈락시킨 팀'이 주는 상징성은 결코 가볍지 않다. 삼성생명이 더욱 자신감을 갖고 이번 시즌을 치를 수 있는 이유다. 

삼성생명은 지난 시즌이 끝난 후 FA자격을 얻은 베테랑 포워드 최희진이 KB스타즈로 이적했다. 삼성생명은 최희진에 대한 보상 선수로 프로에서 7번째 시즌을 맞는 김한비를 지명했다. 180cm의 신장을 가진 포워드 김한비는 프로 데뷔 후 통산 출전 경기가 40경기에 불과하지만 2017-2018 시즌 퓨처스리그 MVP에 선정될 만큼 잠재력이 풍부한 유망주다.

외국인 드래프트에서는 193cm의 센터 리네타 카이저를 지명했다. 지난 2012-2013 시즌 KB스타즈에서 활약한 바 있는 카이저는 11경기에서 18.55득점 11.73리바운드로 활약했지만 태업 논란에 시달린 끝에 조기 퇴출된 바 있다. 6년 만에 다시 WKBL에 도전하는 카이저가 성숙한 자세로 팀에 헌신한다면 배혜윤과 함께 지킬 삼성생명의 골밑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양인영, 윤예빈, 이주연 등 20대 중반 이하 유망주들이 지난 시즌을 통해 부쩍 성장한 것도 임근배 감독을 흐뭇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김한별과 박하나, 배혜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삼성생명이 포인트가드부터 스몰포워드까지 소화가 가능한 젊은 선수를 3명이나 보유했다는 점은 시즌을 운용할 때 상당히 큰 장점이 될 수 있다. 물론 프로경력 15년의 베테랑 김보미 역시 수비와 외곽에서 팀의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해줄 것이다.

삼성생명은 지난 시즌 정규리그에서 KB에게 2승5패로 뒤졌다. 챔프전 3경기에서도 양 팀의 평균 점수 차이는 무려 17.7점이었다. 하지만 두 번의 승리가 있었다는 것은 삼성생명에게도 분명 파고들 틈이 있다는 의미다. 임근배 감독이 그 틈을 찾아내 이번 시즌을 착실하게 준비했다면 삼성생명도 2006년 여름리그 이후 14년 만에 챔프전 우승을 노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시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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