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이 15일 오후 5시 30분부터 평양 김일성경기장(5만명 수용)에서 북한과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H조 3차전을 무관중 경기로 치르고 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대표팀이 15일 오후 5시 30분부터 평양 김일성경기장(5만명 수용)에서 북한과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H조 3차전을 무관중 경기로 치르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못갔노라, 못봤노라, 못이겼노라.' 29년만의 평양 원정으로 치러진 남북 축구 대결은 양측 모두에게 씁쓸한 여운만 남긴 채 허무하게 끝났다. 취재진도 응원단도 생중계도 없었던 경기는 경기 상황을 대한축구협회(KFA) 공식 채널에 의한 문자 중계에 의존하여 파악하는 촌극 끝에 0-0 무승부로 막을 내렸다.

대한민국과 북한이 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에서 한 조가 되면서 오랜만에 성사된 남북 대결과 평양 원정 성사 여부에 많은 이들의 시선이 쏠렸다. 남북한 축구 국가대표급 경기가 평양에서 열리는 건 친선대회인 1990년 통일 축구 대회 이후 29년 만이었다. 남북한은 2008년 남아공월드컵 아시아예선에서도 3차와 최종예선에서 모두 한 조가 되었으나 북한이 자국 홈경기에서 태극기 게양과 애국가 연주를 끝내 불허하며 두 번의 북한 원정경기가 모두 제3국 개최로 대체된 바 있다. 당시에는 보수 정권 하에서 남북 관계가 한창 경색되고 있던 분위기라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2019년 아시아지역 2차 예선에서 양측이 다시 한 조에 편성됐을 때는 상황이 달라보였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북한과의 대화 분위기가 형성되는 데는 스포츠를 통한 적극적인 교류가 큰 몫을 담당했다. 남북은 2018 평창 올림픽과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일부 종목에서 단일팀을 출전시키는데 성공했고, 최근에도 우리 정부가 차기 여자 월드컵과 하계 올림픽 남북 공동 개최 추진 의지를 보이는 등 스포츠 교류에 대한 의지를 이어가는 듯 했다.

하지만 이번 평양 원정은 여전히 정치적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남북 스포츠교류의 현 주소를 확인했다는 평가다. 북한은 애국가와 태극기 게양은 수용했지만 한국 취재진과 응원단의 방북은 끝내 불허했다. 대표팀은 결국 선수단과 축구협회 일부 임직원들만 평양으로 향할 수 있었다. 심지어 우리 선수단은 직항으로 몇 시간 거리에 불과한 평양 원정을 위하여 중국 베이징을 경유하여 먼 거리를 돌아가야만 했다. 선수들의 개인 용품 반입이나 유니폼 교환도 철저히 금지되는 등 각종 통제도 심했다. 최근 북핵 문제가 답보 상태에 빠지면서 남북 관계가 다시 경색된 것을 감안하더라도 지나치게 비협조적이었던 북한의 태도는 국제 스포츠 대회에 임하는 최소한의 상식에도 맞지않는 것이었다.

북한도 홈팀 프리미엄을 포기했다. AFC와 대한축구협회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이날 평양 김일성경기장에는 북한 홈관중도 한 명도 입장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 경기가 원정 팀들에게 큰 부담을 줬던 이유가 북한 홈팬들의 열렬한 응원이었음을 감안하면 자발적인 무관중 경기는 극히 이례적이다.

북한이 한국 응원단의 방북을 불허하며 국제 여론의 비판을 받는 것을 의식하여 형평성을 맞춘 것인지, 아니면 애국가와 태극기를 북한 축구의 성지인 김일성경기장에서 자국민들에게 노출시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는지, 그도 아니면 전력상 열세인 한국을 상대로 패할 경우에 대한 부담을 의식한 것인지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지만 북한은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월드컵같은 국제 대회 경기를 개최하는 입장에서 비상식적인 결정이라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럴 바엔 차라리 10년 전처럼 제3국 경기를 치르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북한으로서는 어쨌든 객관적 전력에서 앞선 한국을 상대로 홈에서 귀중한 무승부를 거두며 승점 1점을 확보한 것은 나름 성공적인 결과라고 할만하다. 하지만 FIFA(국제축구연맹)나 해외 언론에는 북한이 여전히 폐쇄적이고 스포츠 대회에서 언제든 정치 논리를 개입시킬 수 있다는 좋지못한 인상만 확인시켰다.

국내에서도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다시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급증한 것은 앞으로의 스포츠 교류를 추진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한국은 지난 평창올림픽 당시 북한 선수단에 대승적인 차원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정작 이번 월드컵 예선전에서 우리 선수단은 북한의 비협조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여론이 악화됐다. 특히 축구대표 팀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뜨거운 대한민국의 분위기를 감안할 때 스포츠로나 외교적으로나 북한의 태도는 우리 국민 정서를 쓸데없이 자극한 패착이었다. 

한편으로 우리 대표팀은 대표팀대로 숙제를 남겼다. 원정에서 얻은 승점 1점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가뜩이나 부담감이 큰 남북대결, 여러모로 비정상적인 환경에서 처리진 평양 원정 경기임을 고려하면 그나마 선수들의 부상이나 다른 큰 사건사고없이 무사히 경기를 마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반응도 있다. 하지만 전력상 한 수아래로 평가받는 북한을 상대로 최정예 멤버를 출전시키고도 승점 3점을 얻지 못한 것은 조 선두는 지켰지만 아쉬운 결과라는 것도 사실이다.

벤투 감독의 플랜에는 여전히 의문부호가 붙는다. 생중계나 취재진이 없어서 경기 내용을 세부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일단 벤투 감독이 스리랑카전과 달리 주전 멤버들을 투입시켰다는 것은 분명하다. 대표팀은 지난 스리랑카전에서는 손흥민 정도를 제외하면 김신욱, 이강인, 권경원 등 그동안 많이 활용하지 않았던 멤버들 위주로 로테이션을 단행했다. 북한전에서는 지난 투르크메니스탄전에서 출전했던 황인범, 나상호, 김승규, 김영권 같은 멤버들이 출전한 것으로 확인했다. 북한전이 사실상 벤투호의 베스트 라인업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벤투호는 이번에도 '플랜 A'로 원하는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스리랑카전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줬던 이강인은 출전하지 않았고, 최근 골감각이 절정에 달했던 황희찬은 후반에야 투입되었으며 밀집수비를 공략하는데 최적화된 장신 공격수 김신욱도 마지막 10분 남짓을 소화하는 데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팀이 어떤 식의 경기 운영을 펼쳤을지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스리랑카전은 전력차가 워낙 커서 논외로 하더라도 투르크메니스탄전과 북한전에서 한국이 전력의 우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고전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벤투 감독은 부임 이후 그동안 점유율을 강조하는 축구를 추구해왔는데 일정 수준의 밀집수비와 거친 플레이를 구사하는 팀을 상대로 고전하는 모습을 반복하고 있다. 북한전 무승부가 벤투호에게 있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한 결과라면 대표팀은 앞으로 남은 월드컵 예선이 더욱 험난해질수 있다. 결과도 과정도 이래저래 개운하지 못한 뒤끝만 남긴 북한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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