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상블> 예수정 유승락

<앙상블> 예수정 유승락ⓒ 극단 산울림

 
"아들 미켈레는 햇살처럼 아름다운 인류예요. 그런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게 하는 기회가 너무 좋았어요."
 
연극 <앙상블> 프레스콜에서 배우 예수정이 이같이 말했다. <앙상블>은 지적 장애를 가진 아들 미켈레, 그를 돌보는 엄마 이자벨라, 이들의 곁을 떠났다가 10년 만에 돌아온 딸 산드라의 이야기다. 지적 장애를 둔 가족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 아닌, 우리 모두가 공감할 만한 가족의 단편을 그렸다.
 
미켈레는 5살 때 사고로 지적 장애를 앓게 됐다. 그는 엄마의 말을 따라하는 장난도 치지만, 심부름을 하고 모은 돈으로 엄마가 갖고 싶어하는 가방도 선물할 줄 안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마냥 웃는 것 같지만, 엄마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일자리를 구하기도 한다. 이처럼 속 깊고 햇살처럼 따뜻한 미켈레를 맡은 배우 유승락을 지난달 23일, 서울 마포구 산울림극장 2층에서 만났다.
 
"정말 쉽지 않은 과정이었어요. 너무 무거워도 안 되고 가벼워도 안 돼서, 그 정도를 표현하는 과정이 어려웠죠."
 
미켈레라는 인물의 이야기가 펼쳐지자마자, 유승락은 쉽지 않은 과정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많은 이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미켈레'가 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연출이 제 전작을 보고 제안을 주셨는데, 막상 오디션은 보지 않았어요. 그러면서 '내 촉만 믿어봐' 하셨죠. 연습할 때도 작품에 여러 방향으로 다가가갈 수 있게 기회를 열어주셨어요. 한 장면을 두고 반복하는 게 아닌, 흐름을 밟았죠. 배우들을 신뢰했기 때문에, 이런 '앙상블'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앙상블> 유승락

<앙상블> 유승락ⓒ 극단 산울림

 
극 중 엄마이자, 선배 예수정 역시 유승락을 믿고 기다려 줬고, 이는 '이자벨라 아들 미켈레'로 활약할 수 있는 힘이 됐다. 뿐만 아니라 예술감독, 극장장을 비롯해, 극장 스태프 모두, '신뢰'로 똘똘 뭉쳤다고.
 
"예수정 선생님이 진짜 아들처럼 편하게 대해 주셨어요. 그냥 작품에 녹을 수밖에 없게 말예요. 항상 '네가 고민해봐'라며, 인물에 다가가길 기다려 주셨어요. 그런 점이 작품에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힘이 됐고, 미켈레라는 인물이 화초처럼 쑥쑥 자랄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모두에게 본인의 기준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런 것을 '강요'하지 않아서 '앙상블'이 발휘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덕분에 스스로의 기준을 세우지 않았고, 자연스러운 미켈레가 표현될 수 있었던 거죠."
 
하지만 지적 장애를 가진 인물이기에, 무대에 올라가는 데에는 많은 고민이 뒤따랐다. 대본 이해를 위해, 이탈리아 문화도 공부했다. 정신과 전문의와 함께 장애를 표현하는 과정이 희화 화 되지 않게, 또 관객들이 불편하지 않게 대본 리딩, 말투, 행동 등에 대해 가깝게 다가갔다.
 
"<앙상블>이라는 작품이 개인적으로 어마어마한 배움으로 다가왔어요. '앙상블'의 의미에 대해서도요. 개인과 가정에 대한 얘기도 있지만, 제가 생각한 것은 '개인의 앙상블'이었어요. 제 안에도 두려움, 수치스러움 등 '미켈레의 장애'가 있어요. 누구나 그러겠죠? 누군가에게 판단되고, 지적의 대상이 되고, 누군가의 입에 오르내릴 수도 있어요. 그런 마음이 조바심이 되기도 하고, 제 행동을 위축시키기도 하죠. 경직되고 날이 서게 되요. 커리어, 생김새, 학력, 직업 등 자신을 담는 잣대가 많으니까 두려움이 생기죠, 남들과 비슷하게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저만 부족한 거 같고. 이런 감정도 장애의 일부라고 생각했어요."
 
유승락은 미켈레를 '장애'를 가진 인물로 그리고 싶지 않았다. 누구의 마음 속에 자리한 자신의 '결핍' '부족함' '숨기고 싶은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표현했다. 이는 결국 '사랑'으로 포용할 수 있는 감정이었다.
 
"결국은 불편함이잖아요. 그 불편함을 끌어안아 버리는 거죠. 제 안의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부분을 끊어버리고요. 그러면 더 자유로워질 수 있고, 용기낼 수 있는 거죠. 물론 쉽지 않은 과정이죠. 극 중 미켈레도 시설에 가잖아요. 약도 받고 치료도 하지만, 결국 사랑이거든요. 있는 그대로는 받아들이는 거죠. 작품에서 주는 큰 의미라고 생각해요."
 

인물에 다가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을 터.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해야 하는 배우이기데 드는 감정이지만, <앙상블>을 통해 유승락은 또 '성장'할 수 있었다. 미켈레가 되면서 자신의 마음을 마주하고, 어루만질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앙상블>에 오르면서 인물에 대한 두려움을 처음 느꼈어요. 겁이 나더라고요. 그런 순간이 저를 옭아맸어요. 제 부족함만 보이고, 이렇게 연기하면 안 될 거 같았죠. 불안하고 슬펐어요. 그때 아내가 '인물을 경험하고 있는 게 아닐까'라고 말해줬어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거 같았어요. 눈물이 확 나더라고요. '아, 내가 아니라 인물의 마음이구나. 미켈레의 마음이구나. 난 왜 거부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감정을 끌어안았는데, 그 때부터는 무대에서 눈물이 흐르더라고요."
  
 <앙상블> 배보람 유승락

<앙상블> 배보람 유승락ⓒ 극단 산울림

 
'앙상블'에 대한 생각 역시 다시 하게 됐다. 관계의 '앙상블'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자신'에게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앙상블'인가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자신과도, 앙상블을 맞춰가며 살아가야겠구나. 사회의 기준에 맞춰, 선입견에 맞춘 게 아니라, 불완전한 제 모습을 받아들이는 거죠. 하지만 우리는 이미 충분히 완전한 존재 아닌가요? 아기만 봐도 그렇잖아요. 너무 행복하고 아름답잖아요. 그런 완전함이 부족함이 되고, 완벽이라는 개념을 좇다보니 불행해지는 거 같아요. 지금에 살지 못하고 나중을 살고, 과거를 후회하고 열등감에 힘들어 하고요.

저도 어렸을 때부터 '약하다' '이러면 안 돼' '부족해' '조심해야 돼'라는 말을 자주 들었어요. 그 문제라는 개념에 빠지는 순간, 갇히는 순간 진짜 장애가 되는 거 같아요. 불편한 게 장애가 아니라, 그 시선으로 바라보고, 문제 있다고 생각하고, 온갖 좋은 것들로 결핍을 채우려고 하고, 그걸 행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진짜 행복을 잊게 되는 거 같아요. 스스로를 어떤 기준이 아닌 있는 그대로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자벨라 처럼요. 엄마잖아요. 개인, 가족, 사회 모두가 중첩된 이야기예요. 정말 멋져요. <앙상블>은 제게 선물과도 같은 작품이에요."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이라는 생각이에요. 모든 것을 녹여버리죠. 다른 사람도 인정하게 하고요. 중요한 것은 내 자신부터 인정하는 거예요. 견디기 힘들어서 타인을 바꾸려고 하는 게 가장 힘든 거 같아요. 자신을 바꾸는 게 사랑이고, 또 성장이죠. 변해야 큰 사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함께 살아갈 '앙상블'이 발휘되는 거죠."
 
지적 장애를 겪고 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표현이 쉽지 않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정신과 전문의의 자문도 구했지만, 인물의 특징을 살리는 과정은 유승락에게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지적 장애를 겪는 인물을 관찰하는 과정을 거쳐, 미켈레의 '인생'을 바라봤다.
 
"제 안에서 출발해도 되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제 안을 내 놓았죠. 그러면서 제가 저를 분별없이 바라보려고 했어요. 물론 지적 장애를 겪는 분의 모습도 관찰했어요. 근데 그 모습 안에 갇힐 수 같아, 더 이상 보지 않았어요. 5살 때 다친 거라는 그의 이야기에서 감각을 찾고 조율했죠.

제 감정, 감각으로 저를 통제하고, 표현하려고 했다면 힘들었을 거예요. 몸뚱이의 표현에 흐름이 끊길 거 같아서, 인물의 경험, 느낌, 움직임, 말투 등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도록 판단 없이 받아들였어요. '이건 맞아' '이건 아닌 거 같아'라고 규정을 짓지 않고 몸이 가는 데로 해보고 느꼈죠. 몸을 악기라고 생각하고 객관화된 시선으로 잘 보고, 잘 다루려고 했어요. 내면과의 앙상블에 집중했어요."

 
때문에 마지막 장면 역시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다. 오지 않을 것 같던 산드라가 등장, 함께 생일을 맞이한다. 앞으로도 이들이 매일 웃을 일이 가득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과의, 가족과의 <앙상블>을 맞춰가며 살아가지 않을까.
  
 <앙상블>

<앙상블>ⓒ 극단 산울림

 
"아버지가 안 온다는 것을 결국에는 인정하잖아요. 기다린 동생도 오고요. 그리고 맞는 생일이 참 아름다워요. 매일이 제 생일이잖아요. 매일 생일파티 하고 있어요. 관객들과 함께요."
 
유승락은 이미 미켈레 그 자체였다. '햇살'같이 웃어 보이는 모습부터, 작품에 더없이 순수하게 다가가는 마음이 그랬다. 자신과 같은 미켈레를 만난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을까.
 
"나한테 와줘서 너무 고마워, 정말 사랑해. 우리 계속 춤추자. 춤추는 사람이 없을 때까지..."
 
이자벨라는 예수정, 미켈레는 유승락, 산드라는 배보람, 클로디아는 한은주가 분한다. 오는 20일까지 소극장 산울림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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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전문 프리랜서 기자입니다. 연극, 뮤지컬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 전해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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