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거짓말

모두의 거짓말 ⓒ OCN

  이윤정 피디가 돌아왔다.

지난 12일 첫 선을 보인 OCN 토일드라마 <모두의 거짓말>에 지금 가장 어울리는 수식어는 이게 아닐까. 일찍이 풋풋한 젊음을 열정적으로 그려낸 <태릉 선수촌> <커피 프린스 1호점>으로 청춘 로맨틱코미디물의 대명사가 된 이윤정 피디. 그는 2014년 MBC를 떠나 tvN에 둥지를 튼 뒤 <치즈 인 더 트랩>(2016)으로 '이윤정 청춘 월드'의 건재함을 알렸다.

하지만 2017년 이윤정 피디가 들고 온 작품은 뜻밖에도 진실을 향한 '탐사 보도 고난기' <아르곤>이었다. 이를 통해 이윤정 월드는 질적인 변화를 추구했다. 그로부터 2년여가 흐른 2019년, 그는 또 다시 장르물 <모두의 거짓말>을 들고 시청자들을 찾아왔다.

'대기업 족벌 경영 체제 철폐'를 주장하던 청렴한 국회의원 김승철(김종수 분)을 아버지로 둔 김서희(이유영 분)의 남편은 아이러니하게도 재벌가 JQ의 외아들 정상훈(이준혁 분)이었다.

1회가 시작하자마자 한 여성이 건물 옥상에서 스스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한다. 그녀의 죽음이 알려진 뒤 자신의 방에서 몸부림을 치던 상훈은 장인인 김승철을 찾아가 "그녀의 죽음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지 않냐"고, "도대체 그녀를 희생해서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이냐"라고 다그친다. 그러면서 그는 "진실을 밝히지 않으면 내가 나서서 이 모든 것의 '진실'을 밝히겠다"라고 선언한다. 방에서 뛰쳐나온 상훈은 방문 앞에서 그 모든 것을 듣고 있던 김서희와 마주친다. 김서희는 아버지가 던진 책에 맞아 피를흘리는 상훈을 걱정하지만 상훈은 아내를 외면한 채 떠난다.

이 장면에서 떠오른 건 '위선'이다. 시청자들은 청렴한 정치인으로 존경받던 김승철이 한 여성을 희생시키며 지키려 했던 '진실'은 무엇일까 의문을 가지며 드라마를 지켜보게 된다. 하지만 그런 의문도 잠시, 외딴 도로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김승철 의원은 유명을 달리하고, 김승철 의원과 싸운 정상훈 또한 연락이 끊긴다.

그런데 김승철 의원이 죽자마자 소속 당에서는 그의 지역구에 딸인 김서희를 내세우려 한다. 김승철 의원의 지역구에선 JQ의 신재생 에너지 사업이 진행될 예정이었던 터라, 죽은 김승철 의원의 딸이자 JQ의 며느리인 김서희가 가장 적절한 인물이라 여긴 것이다.

하지만 남편과 독일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카페를 운영하는 김서희에게 '정치 입문'은 날벼락과도 같은 일이다. 그런데 그녀의 어머니는 뜻밖에도 죽은 아버지를 물어뜯으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살 길을 도모해야 한다"며 김서희의 출마를 기정사실화 하려 한다. 그럼에도 선뜻 결정을 하지 못하는 김서희 앞으로 남편의 잘린 손과 그 손을 자르는 영상, 그리고 국회의원에 출마하라는 협박 메시지가 도착한다.
 
 모두의 거짓말

모두의 거짓말 ⓒ OCN


김서희는 어떻게 해서든 남편을 찾으려 하고, 그의 고군분투에 힘을 더하는 건 아픈 어머니를 위해 서울 생활을 접으려 하는광역수사대 경위 조태식(이민기 분)과 그의 팀원들이다. 사고사인 듯했던 김승철 의원 교통사고가 자꾸 미심쩍은 꼬리를 드러내며 귀촌하려는 조태식의 발길을 붙잡는다.

사고를 당한 차량은 하루 만에 폐차되고, 차 안에 있었다던 블랙박스도 사라졌다. 또 현장에선 누군에게 의해 의도적으로 스키드 마크가 제거됐다. 처음엔 사고인 줄 알았던 사건이 자꾸 살인사건의 모습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죽은 김 의원과 당일 말다툼을 벌였다던 사위 정상훈이 사라졌다. 이후 그의 잘린 손은 김 의원 추모식 당일 날 광장에 놓여진다. 조태식이 발을 빼려하면 할수록 사건이 그를 잡아끈다. 

<아르곤>과 <모두의 거짓말>은 '진실'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아르곤>은 자극적인 기사와 가짜 뉴스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HBC에 남은 유일한 탐사 보도팀이 '진실이 산화되는 것'을 막고자 고군분투 하는 모습을 다뤘다. 반면 <모두의 거짓말>은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 김승철 의원의 죽음과 정상훈의 실종이라는 사건을 배경으로 그 속에 담겨진 진실을 찾아가는 광수대 조태식 경위와 그의 동료들, 그리고 본의 아니게 국회의원이 되어야 할 운명에 놓인 김서희의 이야기이다. 

<아르곤>, 그리고 <모두의 거짓말>

두 작품 모두에서 '가짜'가 범람한다. 각자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 개인적 이해관계를 위해 편의적으로 조작되거나 사라지는 가짜뉴스와 싸우는 이야기가 <아르곤>이라면, <모두의 거짓말>은 아직 다 드러나진 않았지만, '청렴'한 국회의원이 자신의 지역구에서 진행되는 사업을 토대로 정경유착이 이뤄지고, 그 이해관계가 만들어낸 '가짜'들을 김서희와 조태식이 쫓는다.

<아르곤>과 <모두의 거짓말>에는 극의 중심을 잡아주는 인물이 있다. 바로 김백진(김주혁)과 조태식이다. 김백진은 '사실'을 통하지 않고서는 진실을 향해 갈 수 없다는 기자 겸 앵커다. 아내가 죽은 순간에도 '생방송'을 떠날 수 없었던 그는 자신을 던져 '아르곤'을, '진실을 향한 탐사 보도'를 살려내기 위해 노력했다.
 
 모두의 거짓말

모두의 거짓말 ⓒ OCN


그런가 하면 <모두의 거짓말>의 조태식은 '사이코'라 불릴 정도로 완벽주의인 김백진과는 결이 다르다. 한때 똑똑하고 촉도 좋고 몸도 잘 쓰던 조태식은 이제 시골 파출소가 유일한 꿈이 된 사람이다. 하지만 '사건'이, 한때 똑똑하고 촉도 좋은 조태식을 소환한다. 그는 '진실'이 가려지는 장막 속에서 여전한 촉을 빛내며 그곳을 더듬어 어느덧 사건의 중심에 선다. 

두 작품 모두 그런 우직한 진실주의자와 함께 뛰며 '성장'하는 여성들이 있다. 지방 시사 주간지에서 전전하다 해고된 기자들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특채된 '용병' 이연화(천우희 분). 별 볼 일 없지만 그래도 자신의 온몸으로 굴러 살아온 그녀의 '호기심'어린 열정은 이연화를 어엿한 기자로 성장시킨다.

<모두의 거짓말>에는 '잘한 것이라곤 JQ 며느리가 된 것밖에 없다'는 평가를 받는 김서희는 자신을 누구보다 아껴주었던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된 의혹을 파헤치고자, 국회의원일나 이름값을 기꺼이 받아 든다. 그렇게 그녀는 남편을 찾아, 아버지 죽음의 진실을 찾기 위해 뛰어든다.  

주목 되는 인물 중 조태식의 오른팔 강진경(김시은 분)도 빼놓을 순 없다. 육상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으로 "머리로 하는 건 좀 부족해도 몸으로 하는 건 자신있다"는 강형사는 첫 발령을 받았던 대구서 서장의 조카를 뺑소니범으로 잡은 이래 예의 '단무지'적인 마인드로 달려든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아르곤>의 이연화가 오버랩된다.

<모두의 거짓말>은 장르물이지만, '청춘 로코의 명장' 이윤정 피디 특유의 정서적 색감이 각 장면의 분위기를 한껏 살린다. 특히 매력적이었던 건 단 2회 만에 각 인물의 캐틱터가 돋보였다는 점이다.

한없이 무력하고 연약한 듯하지만 사랑하는 이를 위해 그 어떤 위험도 감수할 것 같은 김서희, 나른한 퇴직 형사의 분위기를 보이지만 순간순간 예리한 눈빛을 선보이며 여전한 촉을 드러내 보이는 조태식... 이들이 이후 등장하는 인간 군상들과 앞으로 어떤 갈등과 조합을 이뤄나갈 것인지 궁금하다.

비록 시청률은 높지 않았지만, <아르곤>은 8부의 시간동안 그 어떤 작품보다 '언론'이 가야 할 '진실'에 대해 혜안을 보여주었다. <타인은 지옥이다>의 바통을 이어받은 <모두의 거짓말> 역시 첫 술에 배부르진 않았다. 그래도 첫 회 1.375%에 이어 2회 2.163%로 두 배에 가까운 상승을 보여주며 '위선'을 뚫고 진실을 향해 당당히 걸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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