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매트릭스> 포스터.

영화 <매트릭스> 포스터.ⓒ 워너브라더스코리아

 
1999년, 20년 전 세기말의 기대와 불안에 직면한 우리들에게 당도한 역대급 영화들이 생각난다. 수많은 영화들이 자리하고 있겠지만, 단연 우리나라엔 <쉬리>가 할리우드엔 <매트릭스>가 대표적이다. <쉬리>는 흥행 신기록은 물론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신기원을 열어젖혔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으로, 이후 한국영화 20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해도 무방하다. 

<매트릭스> 역시 20세기를 마무리 짓고 21세기를 화려하게 열여젖힐 SF 영화의 신기원으로 평가 받는 작품으로, 이후 20년 동안 영화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20년 전이라고 믿기 힘들 만큼 정교하고도 상상력 풍부한 SF적 영상을 선보인다.

<존 윅>으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키아누 리브스의 대표작으로, 로렌스 피시번과 휴고 위빙 등이 눈에 띈다. 성 전환 수술을 통해 남매가 되었다가 이젠 자매가 된 당시 워쇼스키 형제는, 이 영화로 당대 최고의 감독이 되었지만 이후 실패를 계속했다. 지난 8월 <매트릭스4> 제작이 확정되며 워쇼스키 자매의 복귀가 잡혔는데, 위대한 트릴로지 <매트릭스> 시리즈를 어떤 식으로 이어갈지 기대 반 걱정 반인 상태이다. 한편, 지난 2016년 재개봉 이후 개봉 20주년을 맞이해 4DX로 재재개봉하기도 해 새삼 인기를 실감했다. 

인간과 AI, 그리고 매트릭스

1999년, 네오는 낮에는 평범한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직원으로 일하고 밤에는 온갖 범죄를 저지르는 해커로 활동 중이다. 그는 오랫동안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껴왔다. 어느 날 트리니티라는 여인이 접근해 위험에 처해 있다고 알린다. 얼마 후 모피어스라는 남자의 전화를 받고 알 수 없는 요원들의 접근에서 도망치려 하지만 포기한다. 요원들이 그를 잡아 자기들을 도와 모피어스를 위시한 테러리스트들을 잡자고 제안하지만 네오는 거절한다. 그러자 그들은 알 수 없는 벌레 기계를 네오 몸속에 넣는데, 네오가 잠에서 깨어난다. 

다시 한 번 모피어스에게서 전화를 받고는 트리니티 일행과 함께 만나러 간다. 와중에 진짜였던 벌레 기계를 몸속에서 빼낸다. 모피어스를 대면하게 되는 네오, 진실을 알고 싶은 마음에 그가 건네는 파란 약 아닌 빨간 약을 먹는다. 곧 그의 크루들이 모인 방으로 가서는 진실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가 맞닥뜨린 진실은 1999년의 인간 세상이 아닌 AI가 인간을 지배하고 재배하는 2199년 세상이었다. 

모피어스는 그에게 진실을 알려준다. 21세기 초 인간에 의해 탄생한 AI, 인간은 언제인지 누가 먼저 시작한지 모를 전쟁에서 지고는 AI에게 지배된다. 곧 그들의 에너지원으로 재배되기 시작한다. 1999년 인간 세상, 즉 매트릭스는 AI가 만들어낸 꿈의 세계이자 가상현실인 것이다. 모피어스와 일행들은 능력자에게 풀려나 밖으로 나올 수 있었고 진실을 알게 되었고 인간의 구원과 자유를 위해 반란을 꿈꾼다. 그들은 예언된 능력자의 재림을 기대하며 오랜 세월 매트릭스에서 '그'를 찾았고, 네오가 그라고 판단한다. 그들은 네오를 훈련시키며 전쟁의 종식을 준비한다. 

진짜 보다 진짜 같은 가짜의 철학적 세계관

영화 <매트릭스>는 철학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만든 세계를 바탕으로 온갖 문화 요소들을 섞어 만든 SF 사이버펑크 비쥬얼 블록버스터이다. 한 마디로 축약하기가 매우 힘든 영화인데, 세계관과 영상 액션이 가장 눈에 띈다. 영화 속에서도 잠깐 등장하는 바,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이 주장하는 '진짜 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가 세계관이다. 앤더슨은 당연히 현실을 현실로 받아들였지만 사실 너무나도 정교한 가상현실이었고, 정작 네오는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현실에 경악하는 것이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사는 지금 이 순간의 세상이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져 속속들이 지배당하고 있다는 생각 또는 누군가의 꿈 속의 한낮 등장인물에 불과하다는 생각 또는 내가 내 삶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생각 또는 다른 차원이나 장소에 또 다른 내가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 <매트릭스>의 세계관은 이와 다를 수 있지만 궁극적으론 다르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진짜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이 가짜라면 일순간 모든 게 무너져내릴 수 있지 않겠는가. 

하여, 영화 속 모피어스 일행이 해왔고 하고 있고 하고자 하는 게 다분히 이해가 간다. 비록 진짜와 진배 없는 곳에서 아무런 문제 없이 생산적인 일을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알고 보니 AI의 숙주로 모든 걸 빼앗기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보면 말이다. 누군가는 '모르면 약이요, 아는 게 병'이라면서 괴로워하겠지만, 나로선 '아는 게 힘이다'라는 생각을 우선시 하겠다. 자유를 갈망하고 되찾겠다는 것이다. 

영화는 이처럼 자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현대사회의 병폐라고 할 수 있는 '가상'을 비판한다. 가상 자체가 비판받아야 마땅한 건 절대 아니겠지만, 사람들로 하여금 진짜와 가상을 구분 못하게 하고 나아가 진짜 보다 가상을 더 떠받들게 되는 상황에 직면한 지금엔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매트릭스> 속 진짜 같은 가상현실에서 살며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진실을 알게 되더라도 굳이 바꾸려 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는 이 철학적 함의를 현실적 상상력 풍부한 세계관에 훌륭히 접목시켜 보여주었다. 

혁명적 영상 액션

<매트릭스>를 '혁명적'이라 말하는 건 비단 철학적으로 상상력 풍부한 세계관을 내보였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런가 하면, 모피어스 일행이 혁명을 수행하고자 하는 게 주요 내용의 골자인 이유 때문만도 아니다. 영상 액션의 혁명을 이룩했기 때문이기도 한 것이다. 액션 자체로선 이 영화 말고도 신기원을 이룬 영화들이 많지만, 영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액션의 경지를 선보였다. 이 영화 이후 이 정도의 혁명적 액션을 보여준 건 <와호장룡>이나 <본> 시리즈, 그리고 최근의 <업그레이드>같은 류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매트릭스> 정도의 파급력과 영향력을 가진 영화는 찾아볼 수 없다. 이 영화에서 크게 4장면에 걸쳐 선보인 특수 시각효과 '타임 슬라이스 포토그래피'는 경이로운 비쥬얼을 선사하는 데 절대적으로 공언했다. 이 기법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스틸카메라에 의해 동시에 촬영된 이미지들을 연결해 카메라가 정지된 시간 속에서 움직이는 듯한 효과를 낸다. 도입부에서 트리니티가 경찰들을 상대해 공중으로 떠 발차기를 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공중으로 떠올라 발차기를 하기 직전 멈추고 카메라가 360도로 한 바퀴 도는 것이다. 20년이 지난 지금엔, 그동안 곳곳에서 너무나도 많이 봐온 장면이기에 생소하거나 충격적이지 않지만 당시로선 충격 그 자체였다. 

이보다 훨씬 더 인상적이다 못해 머릿속에 박혀버린 장면이 있다. 중·후반부, 잡혀간 모피어스를 구하기 위해 매트릭스에 잡입한 네오와 트리니티. 네오가 날아오는 총알들을 피하는 장면이다. 도입부 공중 발차기 장면처럼 카메라가 360도 도는 건 똑같지만, 네오는 90도 각도로 허리를 뒤로 젖히고 총알을 피하는 것이다. 어떻게 찍었을지 도무지 상상이 안 되는 동시에, 입이 벌어져 다물어지지 않는다. 120대의 스틸카메라가 동원되어 편집의 힘으로 나왔다는 이 장면, 지금 봐도 훗날 봐도 언제나 멋있는 장면일 테다. 

타임 슬라이스 포토그래피라는 시각효과 기법은 1980년대에 나와 지금까지도 쓰이고 있다고 한다. 즉, 기술자라면 누구나 아주 잘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평범하다면 평범할 수 있는 기술에 상상력을 불어넣어 비쥬얼 쇼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건 또 다른 차원일 테다. 이 영화의 영상 액션 혁명은 상상력으로 이루어졌다. <매트릭스>는 상상력의 산물인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형욱 시민기자 개인 블로그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冊으로 策하다. 책으로 일을 꾸미거나 꾀하다. 책으로 세상을 바꿔 보겠습니다. 책에 관련된 어떤 거라도 환영해요^^ 영화는 더 환영하구요. singenv@naver.com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