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동료이자 연인과도 같은 정진우 감독과 김지미 배우가 지난 6일 오후 남포동에서 열린 부산영화제 토크쇼에 함께하고 있다.

오랜 동료이자 연인과도 같은 정진우 감독과 김지미 배우가 지난 6일 오후 남포동에서 열린 부산영화제 토크쇼에 함께하고 있다.ⓒ 성하훈

 
"김지미 배우를 부르는 호칭이 5번이 바뀌었다."
 
지난 6일 오후 남포동 야외무대에서 정진우 감독의 옛 이야기에 관객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정진우 감독은 데뷔했을 당시 17세 고등학생이었던 배우 김지미가 자신을 '오빠'라고 불렀다며, 이후 홍성기 감독과 결혼하면서 '사모님'이 됐고, 대학 선배인 배우 최무룡과 결혼하면 '형수님', 연하 가수와 살 때는 '제수'씨, 이후 '김 여사' 등으로 호칭의 변천사를 설명했다.
 
정 감독은 "김지미가 연애 장면을 촬영할 때 키스를 하던데 속에서 열불이 나더라"며 "김지미 배우를 사랑했다"고 말했고, 김지미는 "이 나이에 뒤늦게 고백을 듣게 된다"며 즐거워했고, "감독이 배우를 사랑하지 않고서는 영화가 예쁘게 나오지 않는다"고 사랑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화해와 화합 상징 역할한 김지미
 
 부산영화제 개막식에서 오거돈 시장과 레드카펫을 걷는 김지미 배우

부산영화제 개막식에서 오거돈 시장과 레드카펫을 걷는 김지미 배우ⓒ 부산영화제

 
올해 부산영화제의 화제는 남포동이었고,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관객이 몰리는 초반을 장식한 김지미였다. 80세이 다 된 배우가 3일 동안 4번의 토크쇼를 강행한 것은 다소 무리였는데, 관객들의 사랑에 보답해야 한다는 의미로 김지미는 열정을 다했다.
 
개막식에서 "다양한 문화와 가치를 공유하는 세상'과 '차별이 아닌 차이', '화합'을 강조한 올해 부산영화제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김지미는 응답했다. 개막 선언 때 이용관 이사장과 전양준 집행위원장, 오거돈 부산시장과 오석근 영진위원장과 함께 김지미와 원로 감독들이 함께 개막선언을 한 모습 등은 갈등과 분열을 넘어 화합을 강조한 영화제의 취지에 부합했다.
 
개막식 레드카펫은 오거돈 시장과 함께 밟았는데, 원래는 이용관 이사장이 모시고 들어가려고 했으나 김지미와 함께 들어가고 싶다는 오거돈 시장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함께 포토월에 섰던 이용관 이사장과 배우 안성기는 오거돈 시장과 김지미의 뒤를 따라 걸으며 두 사람을 예우했다.
 
 3일 부산국제영화제 개막리셉션에 만난 문성근 배우와 김지미 배우

3일 부산국제영화제 개막리셉션에 만난 문성근 배우와 김지미 배우ⓒ 성하훈

 
김지미는 개막 리셉션에서 예전에 심한 갈등을 빚었던 배우 문성근, 명계남 등과도 조우했다. 국내 영화계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당시 젊은 영화인들과 갈등을 빚었더 김지미는 이후 미국으로 떠났는데, 시간이 흘러서인지 서로를 불편해하기보다는 인사는 나누며 안부를 주고받았다.
 
김지미는 예전에 갈등하던 분들과 함께 한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말하자 이렇게 답했다.
 
"영화에는 좌우가 없는 거다. 모든 것을 포괄하고 끌어안을 수 있는 게 영화다. 내가 오늘 다른 파티에 가는 것도 영화인들이 있고 내가 영화인기 때문이다"
 

100년 역사 중 60년 이상을 공헌해 온 분
 
올해 부산영화제 행사 준비를 협의하기 위해 김지미는 지난 7월 말에 정진우 감독과 함께 부산영화제를 찾았었다. 이때 영화진흥위원회도 방문해 환대를 받았는데, 예전에 영화계 문제로 심하게 대립했던 김혜준 공정환경조성센터장을 만났다.
 
 지난 7월말 영화진흥위원회를 방문해 환영을 받은 김지미 배우와 정진우 감독. 김지미 배우 뒤가 김혜준 공정환경조성센터장

지난 7월말 영화진흥위원회를 방문해 환영을 받은 김지미 배우와 정진우 감독. 김지미 배우 뒤가 김혜준 공정환경조성센터장ⓒ 영화진흥위원회

 
김혜준 센터장은 이 순간을 소셜미디어에 이렇게 공개했다.

'멋진 배우로 기억될 분이 근무지에 오셨다. 마침 부산에 있어서 뵐 수 있었다. 과거에 있었던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기억하는 게 사람의 본성인 것 같다. 나를 보시더니 "이 사람 때문에 내가 고생 꽤나 했지!" 하신다. 나는 얼른 반갑게 꼭 껴안아 드렸다. 이분, 우리 큰 누이뻘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럼 없이 이렇게 친숙함을 나타낼 수 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물론 아니다. 세월이 흘렀고, 20년도 훨씬 지난 일의 시시비비를 따져서 무엇하겠나 싶어서다. 이분 처지에서는 분명 당신을 불편하게 했던 존재였던 것도 사실일 테고.
 
김대중 대통령과의 인연에 대해서, 영화진흥 재원 조성의 배경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그랬다. 이 눈치 저 눈치 볼 것 없이 당당했던 배우가 만년 야당의 후보를 지지했었고, 그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그 인연으로 멋졌던 배우는 공직에 나섰고, 그 선택이 자신과 젊은 세대를 한 때 서로 불편하게만들었다.
 
어쨌든 이분은 지금도 당당하시고 멋지시다. 공직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그냥 직장 다니는 게 아니라 스스로도 영화인임을 명심하라고 말씀하신다. 과연 귀 담아 들었을까? 부디 그랬기를! 100년의 역사를 만들어온 한국영화. 그 길에 60년 이상 기여해 온 분들을 인정하지 않고 어떻게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 할 수 있겠는가?'
 

"부산시민의 영화 열정이 가장 높아"
 
김지미는 지난 2010년 부산영화제 당시 회고전을 했다. 영화인들과의 갈등으로 인해 마음이 상해있던 상태에서 김동호 당시 집행위원장의 미국으로 찾아가 설득한 결과였다. 올해는 한국영화 100년을 맞아 한국영화에서 가장 오래된 배우로서 이를 기념하는 행사를 만들겠다는 부산영화제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부산영화제 이용관 이사장 역시 한국영화 역사에서 60년 이상 영화인으로 살아온 정진우 감독과 김지미를 모시기 위해 공을 들였다. 지난 5월 한국에 들어온 김지미를 6월 정진우 감독의 주선으로 만났고 이후 올해 부산영화제 행사를 제안해 허락을 받은 뒤, 7월부터 본격 준비에 들어갔다. 8월 초 미국으로 들어가려고 했던 김지미 선생이 8월 중순으로 출국을 늦췄, 다시 한 달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김지미 토크쇼를 보기 위해 몰려든 관객들

김지미 토크쇼를 보기 위해 몰려든 관객들ⓒ 부산영화제

  
부산영화제의 한 관계자는 "남포동 쪽에서 김지미 선생을 보고 싶다는 의견을 전한 것도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용관 이사장은 "지난해 영화제 때 남포동에서는 야외무대에서 외국영화를 상영했는데, 나이 드신 분들이 외국영화보다는 한국 고전 영화를 보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다"며 "김지미 선생을 모시는 만큼 특별전처럼 출연한 영화들을 중심으로 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6편의 작품은 남포동 무대에서 사랑 고백을 했던 정진우 감독이 김지미가 가장 잘 나온 영화들을 중심으로 추천했고, 이 중에서 디지털 상영이 가능한 작품을 추렸다. <장희빈> <춘희> 등 김지미의 젊은 시절이 나온 영화는 노장년층이 몰려들며 남포동의 흥행을 이끄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김지미는 "지금껏 다녀본 곳 중 부산시민의 영화 열정이 가장 높다는 말로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를 받기도 했다.
 
해운대에 있던 한 영화제 관계자는 "나이든 분들이 오셔서 김지미 배우 행사 장소를 묻더라"며 "나이든 분들에게 옛 향수를 크게 자극한 것이 커뮤니티비프의 성공으로 이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영화제는 올해 김지미의 활동을 밀착 카메라로 담았는데, 김지미에 대한 다큐멘터리 제작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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