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미니 맨> 포스터

영화 <제미니 맨> 포스터ⓒ 롯데엔터테인먼트

 
누구나 젊은 시절을 지나 나이가 들면 은퇴의 기로에 선다. 모든 사람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면서 대부분은 그것을 잊고 지낸다. 나이가 어린 시절엔 새롭게 경험하는 즐거움에 빠져 두려움을 잊고 그저 앞으로 직진한다. 그러다 자신의 삶을 유지시켜줄 일을 만나게 되면 그 일을 하면서 자신을 만들어간다. 한 걸음, 한 걸음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한 경험이 쌓이면 어느 순간 높은 위치에서 아래를 바라보는 순간이 온다. 그 정상에서는 진행해왔던 모든 일들이 잘 보이고 어떤 식으로 해 나가야 하는지 해결 방법이 쉽게 보인다. 또한 아래에서 바지런히 올라오고 있는 다른 사람들도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높은 위치를 차지한 이후엔 다시 내려올 것에 대비해야 한다. 그리고 그동안 잊고 지냈던 죽음의 문턱에 서서 다시 그 죽음을 직시하게 된다. 그저 달리기만 했던 삶의 한 복판에서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봤을 때 달리기를 처음 시작했던 자신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흰머리가 많아지고 이마엔 주름 서너 개가 자리 잡고 있다. 자신감 넘치던 어깨는 조금 쳐져있고, 그 어깨너머로 자신의 일을 배우던 후배들은 어느덧 자신의 턱밑까지 쫒아 올라왔다. 판단력은 점점 무뎌지고 전속력 달리기에 도취되어 느끼지 못했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커진다. 그래서 더욱 은퇴라는 문을 열고 걸어 나가길 바라게 된다. 아니 제2의 삶을 연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자신의 실패를 돌아보며 그런 실수들을 반복하지 않게 하기 위해 자신의 뒤에 있던 수많은 후배들을 향해 조언을 던지기도 한다. 그 뒤에 있던 존재들을 향한 안타까움은 은퇴 이후의 삶에서도 자신의 일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게 만든다.

은퇴하는 암살자 헨리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제미니 맨>
 
 영화 <제미니 맨> 장면

영화 <제미니 맨>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제미니 맨>은 주인공 헨리(윌 스미스)의 은퇴 이야기다. 수십 년간 뛰어난 전문 암살자로 이름을 날린 그는 달리는 열차 안에 있는 존재도 한 번에 죽일 수 있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 나이가 들었지만 뛰어난 실력을 뽐내던 그는 자신이 정확히 원하는 대로 타깃을 명중시키지 못하자 자신의 늙은 모습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여전히 그가 가진 실력을 따라올 자가 아직 나타나지 않았지만 완벽주의자인 그는 자신의 실수가 높아지는 상황을 그대로 둘 수 없다.

반면에 헨리는 차가운 암살 요원의 삶을 살아왔지만 그가 믿는 진정한 친구들을 아낄 줄 아는 감정적인 면도 가지고 있다. 영화 초반 그가 미션을 수행하는 장면과 그 미션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성공하지 못한 이후 비치는 헨리의 얼굴에는 당황스러움과 피곤함이 묻어있다.

영화는 헨리가 어떤 태도로 삶을 살아왔는지를 그의 친구들과의 관계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과거 같이 일했던 잭(더글라스 호지)과 배런(베네딕트 웡)은 그를 전적으로 믿고 친구로서 의지할 수 있는 존재다. 그들은 헨리의 상황을 진심으로 걱정하며 그에게 도움이 되는 어떤 일도 손을 내밀 줄 아는 존재들이다. 은퇴 이후에도 그들은 헨리의 주변 상황에 대한 조언과 의견 교류를 잊지 않는다.

그가 암살자의 삶을 살았더라도 그의 과거 삶을 알고 같이 보냈던 시간을 기억하는 그들은 영화 속에서 충분히 믿음을 주는 존재들이다. 마치 보통의 은퇴자들이 옛 친구들을 만나 과거의 추억을 이야기하듯이 영화 내내 그들은 기꺼이 헨리와 그들 자신의 추억을 소중하게 꺼내어 본다.

헨리와 비슷하게 생긴 암살자가 헨리를 쫒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액션 장르물로서 보여 줄 수 있는 멋진 액션을 보여준다. 배우 윌 스미스가 보여주는 액션 장면들은 긴박감이 넘치고 꽤 멋지다. 1인 2역으로 젊은 모습을 한 주니어(윌 스미스)까지 연기한 그가 펼치는 장면들은 실제로 전성기 때의 그와 현재의 그가 액션 연기 대결을 펼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안 감독은 둘이 맞붙는 액션이 똑같은 스타일로 보이도록 액션의 합을 아주 똑같이 맞추어 놓고 같이 오토바이 액션으로 맞붙는 다던가 총을 이용한 추격전을 붙여 마치 진짜 자신과 싸우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미 익숙한 이야기 속에 담긴 뛰어난 액션 연출 
 
 영화 <제미니 맨> 장면

영화 <제미니 맨>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사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복제인간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가 이미 수차례 봐 왔던 내용이다. 그 이야기만 놓고 봤을 때 이 영화를 새롭게 느끼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야기의 중심을 은퇴자와 그 뒤를 따르는 젊은 세대로 본다면 조금은 새로운 느낌이 든다. 잘 짜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연출에 일가견이 있는 이안 감독은 복제인간에 대한 이야기와 논쟁을 최대한 축소하면서 헨리와 그의 특성을 그대로 가진 젊은 존재의 대결을 통해 신구 세대 갈등을 이야기하고 있다.

최근에 나이 든 세대와 젊은 세대 갈등은 전 세계의 문제다. 그들은 자신들이 왜 그렇게 대립각을 세워야 하는지 정확히 인지 하지 못한 채 서로에게 칼을 겨눈다. 그저 떨어뜨리고 쓰러뜨려야 하는 상대방의 존재를 이해하려 하기 전에 일단 싸움을 통해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직장에서 젊은 사원들은 그저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일을 하기 마련이다.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두려움을 억누르며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 임무에 집중하는 그들은 그 일이 자기와 닮은 선배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한 때 이름을 날렸던 영화 속 헨리 같은 존재들은 나이가 들어가며 새로운 헨리들에게 자리를 내준다. 어떤 이들은 아무런 교류 없이 대체되기도 하고 다른 이들은 서로 교류하면서 자연스럽게 넘어가기도 한다. 최근 '꼰대'라고 불리는, 나이 든 사람들의 조언은 젊은 세대에게는 듣기 힘든 고역이다.

영화 속 헨리는 이야기한다.

"내가 해봐서 아는데, 니가 나와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길 바라서 하는 말이야."

이에 주니어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그 실수도 해보고 싶어요. 이건 내 삶이니까요."

아무리 우리와 똑같은 존재일지라도 각자가 하는 실수들은 다르다. 심지어 DNA가 같은 존재라고 할지라도 각자가 겪는 경험과 실수의 포인트는 다르다. 그런 과정을 통해 본인이 가지게 되는 삶을 만들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뒤에 서있는 세대들을 향해 건네는 은퇴 세대들의 구체적인 조언은 어쩌면 불필요한 것일 수 있다. 영화 속에서 헨리가 경험하는 젊은 주니어는 완벽하게 자신의 모습을 하고 있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만 그 실수를 막거나 변화시킬 권리는 헨리에게 없다.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려는 헨리의 모습에서 지금의 은퇴자 위치에 있는 인생 선배들이 보인다. 그 선배들의 조언을 듣는 후배들은 자신의 삶에 영향을 주고 싶어 하는 느낌 때문에 거북함을 먼저 드러낸다. 그래서 자신과 똑같은 상황에 처한 모습을 보고 조언을 하는 선배들은 '꼰대'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영화는 내내 그런 위험성을 이야기한다. 선배들은 자신과 똑같은 상황의 후배들을 보고 당황스러움을 느끼지만, 이내 걱정으로 변한 그 관점은 결국 쓸데없는 참견으로 변해 나간다.  

은퇴자로서 자신의 위치를 잘 아는 헨리의 선택
 
 영화 <제미니 맨> 장면

영화 <제미니 맨> 장면ⓒ 롯데엔터테인먼트

 
무엇보다 영화 속 헨리는 굉장히 감성적인 사람이다. 그는 그를 공격하는 주니어를 설득하기 위해 자신을 돕는 여자 요원 대니(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와 함께 감성적인 설득을 하고 나선다. 예를 들어 동료로서 신뢰감을 형성하고 있는 그들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헨리 자신이 다칠지언정 함부로 주니어를 공격하지 않는 모습 등을 통해 조금씩 주니어의 마음을 움직인다. 헨리가 주니어에게 존중받을 수 있는 건 그런 조심스럽고 감성적인 접근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는 자신의 뜻하지 않은 조언을 멈출 줄 아는 사람이다. 상대방이 느낄 거부감을 빠르게 알아채고 그  조언을 그만둔다. 그렇게 주니어를 믿으면서 그가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기를 기도한다. 

헨리는 영화 내내 은퇴의 삶을 선택한 자기 자신에 대한 존중이 가득하다. 은퇴라는 길에 들어섰지만 그것에 대하 후회하지 않는다. 그리고 바쁜 일과에서 벗어나 주변을 챙기려 애쓴다. 그가 가장 사랑하던 일에서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친구를 만나고 대화하는 모습을 통해 은퇴자로서의 긍정적인 태도가 그대로 드러난다. 그가 자기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그 자신을 존중하듯 그와 같은 모습으로 뒤를 따르는 젊은 그 자신의 모습도 충분히 존중한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어쩌면 액션 장르영화로서 꽤 낡은 이야기 안에 갇혀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안 감독은 이야기의 주제를 살짝 돌려 마치 은퇴 이후의 주인공이 젊은 시절 자기 자신의 모습을 한 번 돌아보는 느낌으로 이야기를 구성했다. 그래서 영화가 마치 자기 자신과의 독백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이안 감독은 훌륭한 액션 장면들을 시각적으로 잘 구현했다. 윌 스미스의 1인 2역 연기도 자연스러우며 그들이 똑같은 방식으로 액션의 합을 주고받는 모습은 박진감이 넘친다. 액션 장면 조차 서로의 거울을 보는 듯 구현된 연출에서 이안 감독의 시각적 구현 재능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액션 연출과 함께 은퇴자 헨리의 재미있는 제2의 삶이 열리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충분히 흥미로운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윌 스미스는 그가 여전히 얼마나 훌륭한 액션 배우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여전히 에너지가 넘치는 그의 모습은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되면서 중후함까지 묻어나 연기의 무게감을 느끼게 한다. 영화 내내 윌 스미스를 중심으로 구성된 영화에서 보조적인 역할을 맡은 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는 신입 요원으로 등장해 꽤 훌륭한 액션을 소화했다. 무엇보다 단발머리의 무표정한 그의 얼굴은 과거 여성 액션을 보여주었던 시고니 위버가 겹쳐 보이기도 한다.  영화 후반부에는 결국 보조적인 역할을 하게 되지만 초반에 보여주었던 액션 장면은 꽤 훌륭하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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