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이엠히어> 스틸컷

영화 <#아이엠히어>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이 영화를 한국관광공사가 좋아할 것 같다.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 월드시네마 섹션에 초청된 영화 < #아이엠히어 > 이야기다. 지난 5일 부산 해운대구 CGV 센텀시티에서 전 세계 최초로 상영된 이 영화는 지난해 가을과 올해 봄 한국에서 촬영을 마쳤다.

< #아이엠히어 >에는 한국의 아름다운 계절, 서울의 신구 건물 조화, 인천공항 구석구석이 외국인의 시선으로 담겨 있다. 이 때문에 영화를 보면, MBC에브리원 예능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프랑스 편이나 영화 <터미널>이 떠오르기도 한다. 관람 내내 외국인들에게 비쳐지는 한국의 이미지가 이렇구나 생각했다. 남에게 무심하고, 바쁘게 사는 사람들로 보이기도 하나보다. 그 부분은 약간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무료한 일상에 지친 중년의 무작정 한국 여행

두 아들과 소통이 어려운 스테판(알랭 샤바)은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만난 수(배두나)와 개인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남프랑스에서 레스토랑을 하는 스테판에겐 새로울 게 없는 따분한 일상이다. 최근 가족들에게 소외 당한다고 여기는 스테판은 수와 SNS로 대화하며 살아있다는 느낌을 받고 그녀가 그린 그림까지 구입하기에 이른다. 어쩌면 사랑을 다시 시작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다시 젊어진 것처럼 이 순간이 행복하다.

그러던 어느날, 수가 보낸 '벚꽃 피는 서울의 봄'이란 사진을 보고 그의 마음이 동요한다. 이 사진이 왠지 자신을 부르는 것 같아 설렌다. 그렇게 레스토랑을 아들에게 맡기고 충동적으로 서울행을 택한다. 너무도 빠른 결정 같지만 인생은 갈팡질팡하다가 떠나는 기차와도 같다. 지금 잡지 않으면 언제 또 다시 돌아올지 모른다. 지금 바로 행동해야 한다.

일사천리로 그는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이륙 전 급하게 도착시간을 수에게 알린다. 수는 알겠다며 마중 나오겠다고 한다. 멀고 먼 한국,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나라. 11시간이나 날아서 인천공항에 내리는 스테판은 입국장 앞에서 사진을 찍고 해시태그 #iamhere를 남긴다. 하지만 약속한 시간이 한참 지나도 수는 오지 않는다.

수를 직접 만난 적도 없고, 한국의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는 스테판은 무작정 공항에서 기다리기 시작한다. #아이엠히어를 달아 '나 여기 있어요'라고 표식을 남기면서 말이다. 연락이 되지 않으니 여기 있다고 말한 장소를 뜰 수 없다. 이발도 하고 한국 음식도 먹는다. 쪽잠을 자다가 청소 아주머니의 손에 이끌려 찜질방도 체험한다.

공항의 다양한 문화행사나 공연, 멋진 홀로그램도 누린다. 무엇보다 소주가 빠질 수 없다. 공항에서 마추친 사람들과 만나며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그렇게 열 하루를 공항에서만 보낸다. SNS에서는 이미 #프렌치러버로 유명하다. 사랑을 찾아 무작정 비행기에 오는 남자, 꽤 로맨틱한 사랑꾼 아닌가.

시작하는 데 맞는 나이란 없어
 
 영화 <#아이엠히어> 스틸컷

영화 <#아이엠히어> 스틸컷 ⓒ 부산국제영화제

 
여행은 인생의 예행연습과도 같다. 싫든 좋든 체류하는 동안에는 익숙하지 않은 문화와 음식, 삶의 방식에 적응해야 한다. 여행을 하다보면 그 나라와 사랑에 빠지는 일종의 마법같은 순간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나 늘 즐겁고 행복한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간혹 발생하는 불편이나 불만을 감수하다 보면 어느새 그곳의 일부가 되어 있다. 그게 바로 여행의 묘미다. 나와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는지 알 수 있는 값진 경험이다.

무엇이든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들 말한다. 가보지 않은 나라를 직접 경험하고, 감정에 매료돼 행동하는 스테판의 모습은 중년이란 나이가 무색해 보인다.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랫말도 있지 않나. 이 영화는 해보지도 않고 '나는 안 될 거야, 내 나이에 무슨'이란 말을 달고 사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충고나 조언이라고 해도 좋다.

최근 남프랑스에서 스테판은 부쩍 가족간에 서먹해졌다고 느낀다. 가족이라도 말 못 할 일이 있고, 소외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스테판은 그 미묘한 서운함을 가족에게서 느꼈고 이러한 감정은 지구 반대편의 만난 적도 없는 사람과의 교감으로 이어졌다. 그 어떠한 장벽도 뛰어넘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몇 번 메시지나 통화를 주고받지 않았지만 충분히 마음을 나눴다고 믿었다. 그 감정을 확인하러 그는 무작정 떠난 것이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SNS 동상이몽

영화는 서로 다른 문화, 성별, 나이, 직업을 가진 사람 간 소통의 부재를 SNS를 통해 보여준다. 스테판은 기다리다 지쳐 수가 보낸 사진 속 건물을 찾아 공항 밖으로 나간다. 수와 우여곡절 끝에 만나지만 오히려 핀잔을 듣게 된다. 수는 그냥 SNS상 친구로 머물렀어야 했다고 속내를 털어놓는다.

드디어 마법이 풀리는 순간이다. 눈치는 외국에는 없는 우리나라만의 고유하고도 복잡 미묘한 감정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남이 뭘 원하는지 알아서 기분을 해석하는 일이다. '프렌치러버'로 SNS의 인기 스타가 됐지만, 정작 원하는 한 사람의 부름을 받지 못한 눈치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스테판은 실망하지 않는다. 수의 진짜 일상을 조금이라도 공유할 수 있음에 만족한다. 드디어 공항을 떠나 한국을 여행하게 된다.

< #아이엠히어 >는 관계에 대해 말하는 영화다. 인터넷상에서 인적 관계를 구축하는 사회관계망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소재로 삼았다. SNS의 친구는 일상을 공유하지만 업로드한 콘텐츠나 감정도 진짜가 아닐 수 있다. SNS에는 기쁘고 행복한 일들만 올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때로는 꽤 친하다고 생각한 사람도 실제로 만나보면 달라 실망하기도 한다. 내가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거나, 가짜 계정일 위험성도 있다.

영화는 보이지 않는 관계를 쫓다가 소원해진 가족 간의 사랑을 확인하는 일종의 해프닝이며, 한 중년이 새로운 자아를 찾아가는 성장과정이기도 하다. <미라클 벨리에>를 연출한 에릭 라티고 감독과 프랑스의 대표 배우 알랭 샤바, 할리우드를 접수하고 프랑스로 진출한 배두나의 시너지가 좋은 영화다.

부산에서 배두나는 프랑스 대사관이 주관하는 '에뜨왈 뒤 시네마(Etoile du Cinéma)'를 수상했다. '에뜨왈 뒤 시네마'는 한국에서 프랑스를 알리는 데 기여하거나, 한국과 프랑스의 우정을 증진시키는 역할을 한 한국 영화인들에게 수여한다. < #아이엠히어 >는 오는 2020년 2월 5일 프랑스 개봉 예정이다.
아이엠히어 배두나 알랭 샤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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