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부 243cm, 여자부 224cm의 네트를 사이에 두고 경기를 벌이는 배구에서 키와 높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신체조건이 좋은 중국이나 유럽 팀들이 세계 무대에서 유독 강세를 보이는 비결이다. 지난 9월에 있었던 여자부 신인 드래프트에서 KGC인삼공사가 선명여고의 정호영을 지명한 이유도 정호영이 그 어떤 후천적 노력으로도 만들 수 없는 190cm라는 축복 받은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업배구 시절 장소연과 정대영(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을 앞세워 겨울리그 5연패를 달성했던 현대건설 힐스테이트는 지난 2014년 출산 후 잠시 배구계를 떠나 있던 김세영을 영입했다. 기존의 양효진과 함께 '190cm 트윈타워'를 구축한 현대건설은 2014-2015 시즌부터 2017-2018 시즌까지 4시즌 연속 팀 블로킹 부문에서 독보적인 1위를 차지했다. 지난 4년 동안 배구팬들에게 현대건설은 언제나 '높이와 블로킹의 팀'이었다.

하지만 FA자격을 얻은 김세영은 작년 5월 6개 구단 중 블로킹 수치가 가장 낮은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로 이적했다. 그리고 현대건설은 외국인 선수의 부진과 낮아진 높이의 약점을 극복하지 못하고 개막 11연패를 당하며 5위로 추락했다. 그나마 새 외국인 선수 밀라그로스 콜라(등록명 마야)의 활약에 힘입어 후반기 성적을 많이 끌어 올렸던 현대건설은 전력을 알차게 보강한 이번 시즌 다시 강팀의 지위를 되찾으려 한다.

김세영 이적과 베키 조기퇴출, 개막 11연패로 출발한 현대건설
 
 양효진은 손가락 부상에도 3개 부문에서 1위에 오르며 V리그 최고 센터의 위용을 과시했다.

양효진은 손가락 부상에도 3개 부문에서 1위에 오르며 V리그 최고 센터의 위용을 과시했다.ⓒ 한국배구연맹

 
지난 2014년 출산을 이유로 은퇴했던 김세영이 현대건설로 복귀했을 때만 해도 그를 주목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김세영은 인삼공사 시절 3번의 우승을 이끌었을 때도 뛰어난 블로킹 높이에 비해 파워가 부족해 공격력이 약하다는 약점이 분명한 선수였기 때문이다. 현대건설 팬들 역시 김세영에게 팀의 중앙을 책임지고 있는 양효진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역할 정도를 기대했다.

하지만 '김세영 효과'는 현대건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컸다. 김세영은 복귀 후 네 시즌 연속 블로킹 부문에서 3위 안에 포함되는 맹활약을 펼치는 노익장을 발휘하며 양효진과 함께 현대건설의 위력적인 '트윈타워'를 구축했다. 현대건설은 김세영 복귀 후 네 시즌 동안 한 번의 우승(2015-2016 시즌)을 포함해 세 번이나 봄 배구 무대를 밟았다.

김세영은 2017-2018 시즌이 끝난 후 FA자격을 얻었지만 현대건설은 안타깝게도 30대 후반의 베테랑 센터 김세영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현대건설과의 협상이 결렬된 김세영은 흥국생명으로 이적했고 최대 약점으로 꼽히던 높이를 보강한 흥국생명은 2018-2019 시즌 챔프전 우승을 차지했다. 김세영은 이적 후에도 블로킹 3위(세트당 0.68개)에 오르며 명불허전의 기량을 과시했다.

문제는 현대건설이었다. 보상 선수로 정시영을 지명하고 신인 드래프트에서 정지윤을 선택했지만 김세영의 공백을 메우기엔 역부족이었다. 김세영의 빈자리에 외국인 선수 베키 페리의 조기퇴출 악재까지 겹친 현대건설은 개막 11연패로 시즌을 시작했다. 시즌 중반 새 외국인 선수 마야를 오른쪽에 고정하고 센터 정지윤, 레프트 고유민을 투입하며 라인업이 안정된 현대건설은 후반기 15경기에서 8승을 거두며 선전했음에도 5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단 22경기만 뛰고 득점 6위(504점)에 오른 외국인 선수 마야의 활약도 돋보였지만 지난 시즌 현대건설 최고의 수확은 중앙 공격수 정지윤의 발굴이었다. 사실 정지윤은 센터로서 다소 작은 신장(180cm) 때문에 경남여고 시절까지만 해도 선명여고의 박은진(인삼공사), 원곡고의 이주아(흥국생명)에 비해 높은 잠재력을 인정 받지 못했다. 하지만 정지윤은 신인 선수 중 유일하게 200득점을 넘기며 이주아, 박은진을 제치고 생애 한 번 뿐인 신인왕을 차지했다.  

공수 겸비한 '알짜FA' 고예림 영입, 봄 배구 복귀 노린다
 
 비시즌 동안 국제대회에서 많은 경험을 쌓은 이다영 세터의 성장은 현대건설에겐 뜻밖의 수확이다.

비시즌 동안 국제대회에서 많은 경험을 쌓은 이다영 세터의 성장은 현대건설에겐 뜻밖의 수확이다.ⓒ 한국배구연맹

 
끔찍했던 전반기와 희망의 조짐을 느꼈던 후반기를 보낸 현대건설은 비 시즌 동안 또 하나의 수확을 얻었다. 바로 대표팀에 선발돼 많은 국제대회 경험을 쌓은 이다영 세터의 기량이 부쩍 성장한 것이다. 여기에 프로 입단 후 경기 출전 기회가 거의 없었던 백업세터 김다인도 컵대회에서 주전세터로 활약하며 현대건설의 우승을 이끌며 라이징 스타상을 수상했다. 주전 세터와 백업세터가 V리그 개막을 앞두고 자신감을 끌어 올릴 수 있는 계기를 찾은 것.

외국인 드래프트에서 발렌티나 디우프(인삼공사)를 비롯해 수준 높은 선수들이 대거 V리그의 문을 두드렸지만 현대건설은 마야와의 재계약을 선택했다. 마야는 지난 시즌 뒤늦게 합류했음에도 경기당 22.9점을 책임지며 현대건설의 주공격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지난 시즌 올스타 서브퀸에 선정됐을 정도로 한국배구를 받아 들이는 자세도 진지하다. 이도희 감독은 국내 선수들과 마야의 익숙한 호흡에 이번 시즌 승부를 건다.

FA시장에서는 지난 시즌 IBK기업은행 알토스에서 319득점과 48.75%의 리시브 효율로 공수에서 맹활약한 윙스파이커 고예림을 영입했다. 고예림은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 시절부터 절친한 선후배 관계였던 황민경과 함께 현대건설의 왼쪽을 책임질 예정이다. 고예림은 지난 9월 컵대회 결승전에서 26득점을 올리며 MVP에 선정되며 공격에서도 한층 성장한 기량을 선보인 바 있다. 

지난 시즌 막판 왼 손가락 인대를 다치며 시즌을 일찍 마감한 양효진은 여전히 현대건설의 기둥이다. 양효진은 지난 시즌 10년 연속 블로킹 부문 1위(세트당 0.88개)를 비롯해 공격 성공률(47.79%)과 오픈공격(47.59%) 부문에서도 1위에 오르며 V리그 최고 센터로서 건재를 과시했다. 신인왕 정지윤이 2년 차 징크스에 시달리지만 않는다면 날개 공격수들이 든든해진 이번 시즌에도 양효진의 존재감은 크게 빛날 것이다.

흥국생명의 박미희 감독은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 한 번씩 선수들을 크게 혼내기도 하지만 현대건설의 이도희 감독은 작전타임 때 좀처럼 선수들을 다그치는 법이 없다. 이런 지도 방식은 성적이 좋으면 '엄마 리더십'으로 포장되지만 성적이 나쁘면 '무능력'으로 보이는 게 사실이다. 어느덧 부임 3년째를 맞고 있는 이도희 감독에게는 이제 봄 배구 그 이상의 성적이 필요하고 알찬 보강에 성공한 이번 시즌은 분명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적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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