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축구 해설위원 게리 리네커는 "축구는 90분 동안 22명이 공을 쫓다가 결국엔 독일이 이기는 스포츠"라고 정의했다(하지만 이 명언은 작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독일이 한국에게 0-2로 패하고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면서 무색해 지고 말았다). 이를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의 여자프로농구(WKBL)에 대입하면 "WKBL은 10명의 선수가 바구니에 공을 넣다가 결국엔 신한은행이 이기는 게임"이라고 정의할 수 있었다.

실제로 2007년 겨울리그부터 2011-2012 시즌까지 이 말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팩트'였다. 전주원, 정선민, 하은주, 최윤아, 강영숙, 김단비 등 국가대표 팀이나 다름 없는 화려한 선수구성을 자랑하던 신한은행 에스버드는 한국 프로스포츠 최초로 6연속 통합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다(그리고 신한은행의 뒤를 이어 받은 우리은행 위비도 2012-2013 시즌부터 2017-2018시즌까지 통합 6연패에 성공했다).

우리은행이 신한은행의 뒤를 이어 왕조를 건설하는 사이 신한은행은 조금씩 하락세를 탔다. 급기야 지난 시즌에는 35경기에서 단 6승을 올리는 부진 끝에 승률 .171로 2005년 겨울리그 이후 무려 14년 만에 최하위로 추락하는 수모를 경험했다. 지난 시즌을 끝으로 신기성 감독이 사임한 신한은행은 이번 시즌부터 지난 시즌까지 OK저축은행 읏샷을 지휘했던 정상일 감독을 선임해 명예회복에 나선다.

외국인 선수와 에이스의 부상, 창단 후 역대 최저 승률 수모
 
 김단비는 지난 시즌에도 국내 선수 득점1위,리바운드3위,어시스트2위,블록슛2위를 기록하며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김단비는 지난 시즌에도 국내 선수 득점1위,리바운드3위,어시스트2위,블록슛2위를 기록하며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신한은행 에스버드

 
신한은행은 지난 시즌 최하위로 추락하며 망신을 당했지만 사실 신한은행에게서 몰락의 징조가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2015-2016 시즌부터였다. 정선민 은퇴 이후 사실상 김단비의 원맨팀이 된 신한은행은 2015-2016 시즌 5위로 추락했다. 그리고 시즌이 끝난 후 신정자와 하은주가 나란히 은퇴를 선언하면서 신한은행의 김단비에 대한 의존도는 더욱 심해졌다. 하지만 '천하의 김단비'도 혼자 신한은행을 강 팀으로 만들진 못했다.

신한은행은 우리은행이 역대 최고승률 기록(.943)을 경신하며 '부익부 빈익빈'이 심했던 2016-2017 시즌에도 KB스타즈와 전적(14승21패)과 승률(.400)이 같았지만 상대전적에서 뒤져 두 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 나가지 못했다. 신한은행이 두 시즌 연속 봄 농구를 하지 못한 것은 신한은행이 현대 하이페리온을 인수한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2015년부터 2017년이 신한은행 창단 후 최대 암흑기였다는 뜻이다.

두 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신한은행은 2017-2018 시즌 17승18패로 정규리그 3위를 차지하며 세 시즌 만에 플레이오프에 복귀했다. 하지만 당시 신한은행은 카일라 쏜튼과 르샨다 그레이(으리은행)라는 좋은 외국인 듀오를 거느리고 있었고 삼성생명의 외국인 선수 엘리사 토마스가 시즌 초반 부상으로 결장하는 호재도 있었다. 5할에도 미치지 못하는 승률(.486)로 '명가재건'을 했다고 하기엔 부족함이 많은 시즌이었다.

신한은행은 2017-2018 시즌이 끝나고 FA가드 이경은을 영입했고 외국인 선수로는 WKBL 경험이 풍부한 쉐키나 스트릭렌을 지명했다. 하지만  KDB생명(현 BNK 썸) 시절부터 잦은 부상에 시달리던 이경은은 신한은행 이적 후에도 단 15경기 출전에 그쳤고 과거보다 체중이 늘어난 스트릭렌 역시 단 2경기 만에 해스트링 부상으로 교체됐다. 설상가상으로 에이스 김단비마저 허리와 무릎 통증으로 7경기에 결장했다.

6승 29패 승률 .171. 굳이 과거 기록을 찾아볼 필요도 없는 신한은행 농구팀 창단 후 최악의 성적이었다. 초호화 멤버를 자랑하던 '레알 신한'이 7년 만에 상대에게 간단히 승리를 헌납하는 '동네북'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세 시즌 동안 신한은행을 이끌었던 신기성 감독은 지난 3월 팀에서 사퇴했고 박성훈 코치가 고교 시절 폭력사태에 연루되면서 친형이자 새 감독으로 선임된 박성배 감독과 함께 팀을 떠났다.

FA 김이슬-한채진 가세, 신한은행의 봄은 올까
 
 이경은의 부상 공백을 주로 메울 김이슬은 본인의 부상방지에도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이경은의 부상 공백을 주로 메울 김이슬은 본인의 부상방지에도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신한은행 에스버드

 
신한은행은 지난 시즌이 끝난 후 곽주영과 김규희, 윤미지 등 무려 5명의 선수가 현역생활을 마감했다. 그 중 신한은행에서 7시즌 동안 활약하며 골 밑에서 몸싸움과 리바운드를 책임지고 공격에서는 긴 슛거리를 자랑하던 '블루컬러 빅맨' 곽주영의 은퇴는 제법 충격이 컸다. 한때 최윤아를 이을 포인트가드로 많은 주목을 받았던 김규희 역시 잦은 부상으로 재능을 꽃 피우지 못한 채 만27세의 젊은 나이에 코트를 떠났다.

지난 4월 OK저축은행을 이끌었던 정상일 감독을 선임한 신한은행은 FA시장에서 뛰어난 패스워크를 갖춘 포인트가드 김이슬과 10년 만에 친정으로 돌아온 한채진을 영입했다. 경기운영능력이 뛰어난 김이슬은 매 시즌 부상에서 자유롭지 못한 이경은과 함께 팀 공격을 조율할 예정이다. 2008년 금호생명 이적 후 전성기를 맞았던 한채진은 36세의 노장이 돼 신한은행의 외곽 라인에 힘을 보탤 예정이다.

드래프트에서 지명했던 호주 국가대표 앨라나 스미스가 부상으로 개막전에 뛸 수 없게 된 신한은행은 193cm의 장신 빅맨 비키바흐를 대체 선수로 영입했다. 2012-2013 시즌부터 2015-2016 시즌까지 KDB생명과 KB스타즈에서 세 시즌 동안 활약했던 비키바흐는 통산 73경기에서 9.89점 6.74리바운드를 기록한 바 있다. 하지만 골밑 장악 능력과 마무리 능력을 갖춘 만큼 풀타임으로 활약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다.

곽주영이 부상으로 빠진 토종빅맨 자리에는 프로 4번째 시즌을 맞는 김연희의 성장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187cm의 좋은 신장을 갖추고 있는 김연희는 198cm의 박지수(KB스타즈)를 제외하면 국내 선수 중 높이에서는 거의 적수가 없다. 정상일 감독은 지난 여름 박신자컵 MVP와 9월 아시아컵에서 대표팀 선발로 자신감을 끌어 올린 김연희가 비키바흐와 함께 신한은행의 골밑을 지켜 주길 원하고 있다.

정상일 감독은 지난 10일 미디어 데이에서 최하위라는 예상에 "자존심이 상한다"며 목표를 크게 잡아 최소 플레이오프 진출, 최대 우승까지 노리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신한은행의 이번 시즌 현실적인 목표는 최하위 탈출이 될 것이다. 여자프로농구에서 연속 시즌 꼴찌를 하게 되면 약체로 이미지가 굳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국 프로스포츠 역대 최초의 6연속 통합우승에 빛나는 신한은행에게 2연속 꼴찌는 결코 용납되지 않는 성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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