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 2019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 2019 ⓒ 프라이빗 커브

 
지난 10월 5일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 2019'(이하 슬라슬라)이 열리는 올림픽 공원 88 잔디마당을 찾았다. 서울재즈페스티벌을 주최한 기획사 프라이빗 커브(Private Curve)가 만든 이 페스티벌은 올해로 3회차다.

한스 짐머와 '라라랜드'를 내세웠던 1회 때만 해도 영화음악 콘서트 콘셉트로 차별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지금은 서울재즈페스티벌의 가을 버전처럼 자리 잡았다. 스탠딩존이 존재하긴 하지만, 대부분의 관객들이 피크닉존에서 맥주를 마시며 음악을 즐긴다. 돗자리와 맥주. 우리나라의 페스티벌 문화는 이러한 트렌드 가운데에 있다.
 
슬라슬라는 가을에 개최되는 페스티벌 중 가장 인상적인 라인업을 들고 나왔다. 첫날에는 '전설' 스팅(Sting)이 헤드라이너로 나섰고, 이적, 칼리 레이 젭슨, 갈란트 등 국내외의 젊은 뮤지션들이 다수 섭외되었기에 라인업의 균형이 좋았다. 무대가 한 개였고, 공연과 공연 간의 대기 시간이 1시간 정도로 긴 편이었지만, 관객들은 맥주와 음식으로 지루함을 달랬다.

공연의 문을 연 주인공은 백예린과 재즈 피아니스트 윤석철이었다. '야간비행'을 제외하면 최근 작인 < Our Love Is Great >의 수록곡들을 연주하지 않았다. 오히려 'Lullaby Of Birdland' 등 재즈의 오랜 명곡들을 윤석철과 함께 재구성하는 데에 집중했다. 영화 < 라라랜드 >에 나오는 재즈 클럽을 야외무대에 옮겨 놓은 듯한 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계절과 음악의 조화

'Run Away With Me'를 부르며 등장한 칼리 레이 젭슨(Carly Rae Jepsen)은 관객들을 파티장으로 인도했다. 빌보드에서 9주 연속 1위를 차지한 'Call Me Maybe'는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울려퍼졌다. 많은 사람들에게 칼리 레이 젭슨은  틴팝스타의 이미지로 기억되고 있지만, 지금의 칼리 레이 젭슨은 신스팝 싱어송라이터로 거듭났다.

전작 < Emotion >과 이번 앨범 < Dedicated > 역시 전문가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칼리 레이 젭슨은 이번 공연에서 몽환적인 신시사이저 사운드에 맞춰 몸을 흔들고, 록 뮤지션처럼 과감한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깔끔한 노래 솜씨는 기본이었다.
 
앞선 내한으로 국내 팬들에게 친숙해진 덴마크 밴드 루카스 그레이엄(Lukas Graham)은 페스티벌의 분위기를 뜨겁게 달아오르도록 했다. 심지어 한글로 '루카스'라고 적힌 모자를 쓰고 있었다. 루카스 그레이엄의 가장 큰 장기는 관객과의 소통이었다. 공연 내내 익살스럽고, 친숙하게 관객들과 어울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노래 'I'm Not There', 'Drunk In The Morning' 등, 훌륭한 라이브를 이어가던 이들은 빌보드 싱글 차트 2위에 오른 '7 Years'로 마무리되었다. 밤하늘이 꽤 어두워졌을 무렵, 아일랜드의 얼터너티브 록 밴드 코다라인(Kodaline) 'High Hopes', 'The One' 등 가을 정취에 맞는 감성적인 곡들을 연주했다. 보컬 개리 멀리건의 목 컨디션이 좋지 않았는지, 실수가 잦았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변하지 않는 그 이름, 스팅
 

밤 8시를 조금 넘긴 시간, 스팅이 환호 속에 무대에 올랐다. 그의 공연은 < My Songs > 투어의 일환으로 펼쳐졌다. 스팅의 신보 < My Songs >는 폴리스(The Police)의 명곡 'Message In A Bottle'을 부르며 한국팬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는 멘트를 최소화하고 노래에 집중했다. 수십 년의 음악 인생을 성실하게 요약한 90분이었다. 폴리스 시절의 명곡과 스팅의 솔로곡들이 골고루 섞여 있었다. 특히 <레옹>의 엔딩곡 'Shape Of My Heart'과 'Englishman In New York'은 그를 잘 모르는 젊은 세대들마저 열광하게 만들었다.

별 다른 무대 장치가 없어도, 스팅은 존재만으로 관객을 압도했다. 그가 박수를 치면 모든 관객들이 박수를 쳤다. 주술적인 분위기의 'Desert Rose'가 연주될 때 두 손을 들자, 관객들도 그에 맞춰 손을 들었다. 신흥 종교의 교주가 따로 없었다. 'Walking On The Moon'에서는 특유의 성량을 과시하며 음을 길게 끄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폴리스의 명곡 'Next To You'를 마지막으로, 18곡의 대장정이 끝났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날의 이 공연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팅은 고향 뉴캐슬에서부터 시작해, 흐트러짐없이 수십 년을 걸어온 뮤지션이다. 다양한 음악 세계에 발을 내딛으면서도 목소리만큼은 빛을 잃지 않았다.  The Police 시절의 날카로움, 중견 뮤지션의 저력. 그 모든 것이 있었다. 사람의 목소리가 세월이 지나면서 퇴색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스팅은 세월 앞에서 퇴색되지 않았다. 나이테의 굵기만큼이나 짙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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